동생과 나눈 이야기
다른 곳에서보다 브런치에서는 뭔가 멋지고 글을 잘 써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그냥 쓰기로 했다.
일단 쓰고 나중에 수정하거나 다듬자. 일단 써야 해.라는 게 요즘의 생각
요즘 이상하게 감정이 동하고 있다.
나는 딱히 한 계절을 탄다는 느낌은 없는데, 이상하네.
아니면 작년 겨울부터 쭉 받고 있는 상담이 뭔가 코어에 다다르면서 내가 감정적으로 말랑거리는 시기인 걸까?
다른 사람의 사연에 뭉클해져 버리고 어떤 노래를 듣다가, 어떤 생각을 하다가 사연 많은 여자처럼 문득 눈물이 나온다.
작년부터 받는 상담은, 직업관련해서 배신감과 허무함, 좌절감을 느낀 사건에서 시작되었는데
결국 모든 관계의 뿌리는 애착에서 온다는 걸 발견하고(새로운 발견은 아니지만 어쨌든)
내가 또 언제 애착으로 상담받아보겠어, 이만큼 판김에 끝까지 파보자! 는 마음으로 계속하고 있다.
상담사선생님이 내가 스스로에 대해 알려고 하는 태도가 있고 또 통찰력도 꽤 있으니 매주까지는 필요 없고 2-3주마다가 어떻겠냐는 말에 그렇게 하고 있다.
불렛저널에 이런저런 생각을 쓰고,
아침마다 조깅하면서 생각하고 운동삼아 걸으면서도 생각하고 있다.
누군가는 아무 생각 안 하려고 운동한다는데 나는 운동하면 생각이 더 나는 것 같다.
가끔 낡은 편지들을 모아둔 바구니를 꺼내어 읽는데, 며칠전이 그 타이밍이었다.
국민학생 때 아빠가 직장에서 경상도로 발령받아 떨어져 계셔서
아빠에게서 전보도 받았고 편지도 받았다.
방학이면 엄마랑 동생이랑 아빠한테 가서 지냈고 그러면 서울에 계신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가 나에게 편지를 써주셨다.
그리고 생일이나 크리스마스에도 카드를 받곤 했다.
그 편지들을 잊어버릴 수도 있었겠지만, 국민학교 4학년 때 무언가를 스크랩하는 게 방학숙제였다.
뭘 해야 하나 하다가 편지들을 붙였다. 그래서 지금까지 알림장에 앞뒤로 잔뜩 붙은 편지지들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것이다.
상담을 받으며 이런저런 말을 하다 보면, 나는 가족들에게서 관심도 사랑도 많이 받았다.
그런데 내가 필요했던, 받고 싶었던 결의 사랑은 아니었던 것 같다.
세심하고 마음 여린 나에게는 괜찮다는 말이 필요했고, 천천히 해도, 그냥 너 그대로의 모습이어도 괜찮다는 그런 느낌이 필요했을 것 같은데
내가 느끼기로는 내 작고 일상적인 고민을 들어주고 공감하기엔 다들 너무 바빴고 다들 너무 훌륭했다.
편하게 비빌 어른이 없었던 것 같은 느낌.
그렇게 편지들을 하나하나 보는데
나는 외할아버지의 편지를 제일 좋아한다. 왜냐하면 뭔가 철학이 담겨있다는 느낌인데 어릴 때는 와닿지 않던 내용들이었던 것들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날아와,
할아버지가 지금의 나에게 해주시는 말 같아서 신기한 느낌으로 읽고 또 읽는다.
매년 읽어도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내가 어떤 상황에서 어떤 일을 겪는지에 따라서.
외할머니 편지는 동시를 써주시거나, 이렇게 해야 한다 저렇게 하면 안 된다는 내용이 있어 얼마 전까지 읽으면서도 ‘아이고.. 할머니 ㅎㅎ’ 이런 생각이 들었고
아빠의 편지는 어린 나에게 맞추어 일상적인 말을 써주셨다. 동생이랑 싸우지 말고, 티브이 적게 보라는 잔소리와 함께.
며칠 전에 여러 장의 편지들을 살살 펼쳐가면서 읽는데 눈물이 터졌다.
당연한 건데, 알고 있는 건데 새로운 느낌으로 새롭게 발견한 것 같을 때가 있다.
외할아버지는, 본인의 가치관과 철학을 중심으로 나에게 애정과 관심을 주신 거고
아빠는 내 나이에 맞춘 내용으로 일상을 공유하며 마음을 전달한 거고
외할머니도 어떻게 해라 뭐는 하지 마라고 하신 그 당부의 말에 내가 잘 크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으신 거구나..
자꾸만 나를 믿는다고 해서 부담스러워 제일 어려워하는 엄마의 편지도 나한테 안 맞아서 그렇지 그것도 사랑의 모습이다.
조부모님들은 이제 다 돌아가셨지만, 부모님도 그렇고 조부모님도 내가 나에게 함부로 하는 사람들에게 적절히 반응하지 못하면 얼마나 속상해하실까를 생각해 봤다.
이혼하고 나서는 할 말은 하고 대항도 해보게 되었지만
여전히 가까운 사람일수록 말을 삼킨다. 나는 나를 더 믿고 수용해주어야 할 것 같다.
외국에 살고 있는 여동생에게 편지들을 공유하면서 이렇게 보냈다.
우리가 사랑받은 건 맞아.
그리고 덧붙였다.
그러니까 우리한테 함부로 하는 사람은 가만히 두지 말자고. 누구든지 간에.
그러면 우리를 사랑한 사람들이 마음이 너무 아플 것 같다고.
클리어파일을 샀다.
오래된 편지들이 너무 얇아서 잘 보관하고 싶어 졌기 때문이다. 스크랩북에서 살살 떼어 한 장씩 잘 보관해야지.
내 마음속 깊은 곳에 다가도.
인스타도 다시 시작해봐야겠다.
예전 그림도 다시 그려야하고(새로운 도전을 위해) 2년동안 있던일을 그려봐야지.
인스타그램의 글과그림은 아들에게 보내는 나의 편지나 다름없다. 나중에 책으로 엮어서 선물해주고싶다는 마음에서 시작한거다.
가족들의 편지가 나에게 몇십년간 울림을 주듯, 내 편지인 그것들도 아들에게 친구가 되어주길.
나한테 집중하는 시간을 보내고싶다. 나를 위해 운동하고 나를 위해 그리고 쓰고.
다른사람일에는 에너지를 덜쓰려고 노력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