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의 의미

찰나는 아닐지라도..

by 하루

한순간.

그 시점에.

그 타이밍에.

마법처럼 그 특정 시점이 지나버리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것들도 있다.


찰나의 순간이라고 하면 유명한 앙리브레송의 이 사진이 생각난다.

바로 그 순간의 포착.


30대에 대학원을 다닐대, 집 근처 지하철 역 앞을 지나고 있었다. 바람도 좋았고 옷도 뭐였는진 기억나지 않지만 맘에 들었던 것 같다.


주말이지만 과제 때문에 몇 명이 캠퍼스에서 모여 어떤 동영상을 찍고 돌아오던 길이었다.

영어 교수법에 대한 수십 가지 이론이 담겨있는 책이었는데, 그중 하나를 실제로 적용해 보고 그 수업을 동영상으로 찍어서 제출하는 과제였다.


수많은 학자들이 어떻게 언어가 습득되는가, 언제가 최적인가 효율적인 방법은 무엇인가 등에 대해 고민하고 가설을 세워서 수십 가지의 교수 방법이 그 전공서적에 담겨있었다.

물리적 실체가 없이 현상을 본 후에 그걸 가지고 이런 수십 가지의 다양한 가설이 나오다니.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과, 우리 조가 맡은 가설을 영어가 아니라 내가 제안해서 학생 대부분이 모르는 일본어로 그럴듯하게 시연했다는 그 기쁜 마음에 갑자기 전율이 머리끝까지 일었다.


길거리에서 그 이론서적을 품에 꽉 안고 너무 기쁘고 사랑이 넘치는 마음이라고 해야 하나 어쨌든 최강의 희열감을 느끼고 그 순간이 지나갔다.


20대 언젠가에도 비슷한 순간이 있었는데

그날도 날씨가 좋았고 바람이 불고 치마를 입고 있었다. 치마가 바람에 팔랑 흔들렸고 기분이 좋았다. 아마도 가을이거나 봄이었겠지. 그 순간 나는 마돈나의 Celebraion 노래를 듣고 있었는데 노래가 너무 멋있게 들리면서 예술가들에 대한 존경과 애정이 폭발하는 마음이 들었다.


와 도대체 예술가들은 이런 걸 어떻게 만드는 거야. 저런 끼도 대단하고 자신의 생각을 예술로 표현하고 그걸 관철해 나간다는 게 너무 멋있잖아. 미친 예술가들..

할 수 있는 모든 걸 그리고 쓰고 노래 불러줘. 내가 다 들어주고 보고 읽어줄 테니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또 머리끝까지 희열감으로 그 자리에서 잠시 굳었다.


지금 그 노래를 듣고 그 전공서적을 보아도 그런 느낌은 들지 않는다. 예전에 내가 그랬지 하는 기억뿐.


그 순간이 지나면 돌아오지 않는 것도 있다.

희미한 감정의 흔적과 기억만 남아 그 순간을 떠올려볼 수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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