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 우체통

1년 뒤의 나에게 보내는 편지

by 하루

아이와 함께 김녕 미로공원에서 한 시간이나 빙빙 돌다 헤맨 끝에 겨우 나왔다. 그저 출구를 찾아 나오려고 했다면 그 보다 훨씬 일찍 나올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7개의 스탬프를 찾아(선물을 준대서 포기할 수가 없었다) 다리를 건너 빙글빙글 길을 따라 돌아 들어갔다가 빙글빙글 돌아 나오길 여러 번. 그렇게 전체 미로를 몇 번이고 돌고 나서야 스탬프를 완성하고 바깥으로 나왔다. 출입구 근처의 작은 매점에 들러서 음료수를 먹다가, 1년 뒤의 나에게 쓰는 엽서가 있길래 아이에게 써보겠냐고 물었다.

아이는 흔쾌히 하겠다고 답하였다.


네가 이 엽서에 1년 뒤의 너에게 쓰고 싶은 것을 쓰면 돼. 이 엽서가 1년 뒤에 배달 올 거래


아이는 엽서 위에 글씨를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궁금한 마음에 들여다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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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나는 1년 전의 너야. 너는 이곳에 와서 되게 힘들어했어


아이의 이 편지를 보고 나는 웃음이 나왔다. 뭔가 색다른 느낌이 들었고 미래에 보내는 편지에 내가 지금 현재에 힘들다는 얘기만 한다는 게 일반적이지 않아서였을까.

웃고 나서 혼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생각해보았다. 몇 주 전 받았던 부모교육 수업내용이 떠올랐다.


지금 현재에 얼마큼 머물러계시죠? 10이 만점이라고 할 때 어느 정도인지 숫자로 말씀해보세요


사람들이 몸은 여기에 있지만 정신중 일부는 미래에, 과거에 보내 놓고 일부만이 현재에 와있는 경우가 빈번한데, 그렇다면 분명히 강의는 귀로 듣고 있지만 다른 생각이 들 거라고 하셨다.


내가 1년 뒤의 나에게 편지를 쓴다면 아마 매우 전형적으로 쓸 것 같다.


안녕 1년 뒤의 나야. 나는 현재 이런저런 어려움이 있어 그래서 마음이 속상하지. 하지만 난 잘하고 싶은데 왜 안되는 걸까 1년 뒤의 너는 뭔가 잘 헤쳐나깄길 바래. 나는 널 믿어.

뭐 이런 틀이지 않으려나 싶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는 현재의 내가 해결하지 못한 일을 미래의 나는 할 수 있을 거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미래에는 어떻게든 해결했을 거라고 1년간 성장한 나는 그럴 능력이 있을 거라는 기대 속에 말이다.

그리고 이 편지의 틀에는, 1년 뒤의 나에게 깨달음을 주려는 듯 훈계를 하고 있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아이의 편지를 다시 되짚어본다. 아이는 현재의 감정에만 정말 충실하구나. 미래의 나에게 당부도, 훈계도 기대도 없이 그저 지금 내가 힘들었다는 것을 다 담아서 표현하는 것을 보니, 아이는 미래나 과거에 자신을 나누지 않고 현재에 온전히 머물러있나 보다.


미래의 나에게 보내는 편지.

현재의 내가 미래의 나에게 하고 싶은 말.

1년 뒤에 이 엽서가 배달 오면 아이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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