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독서
암막커튼 드리운 캄캄한 방 안에 어슴푸레 빛이 보인다. 심해 같은 어둠 속에서 전자책 화면이 홀로 빛을 내고 있다. 곤히 자고 있는 아이 옆에서 소리 없이 페이지 넘긴다. 눈꺼풀이 무게를 못 이기고 훅 떨어지는 순간까지 읽고 또 읽는다. 단어와 단어 사이는 상상력과 생각들로 메꿔져 탄탄한 벽돌이 되고 그 벽돌을 차곡차곡 쌓아 올려 머릿속에 집을 짓는다.
여느 집과 같이 우리 부모님도 책만큼엔 돈을 아끼지 않으셨다. 덕분에 어린 시절 언제나 책과 함께였다. 그러나 인생에서 책을 가장 오래 멀리했던 기간이 있다.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를 반복하며 수능이라는 목표를 향해 내달리던 시절이다. 일요일에도 혼자 학교에 나가 자습을 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수학 문제가 영 눈에 들어오지 않던 그날, 친구의 책상 위에 소설책 한 권이 보였다. 무슨 책인지만 보려던 것이 그만 책 속에 빠져 수학 공부는 공을 치고 말았다.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향수라는 책이었다. 대학만 가봐라. 이 세상 모든 책을 다 읽어주마. 하고 별렀다.
스무 살 이후 책은 다시 나의 제일 좋은 친구가 됐다. 책으로 가득 찬 곳이라면 가슴 설렜고 같은 책을 읽은 사람을 만나면 벽이 무너졌다. 쿵쾅쿵쾅 울리는 클럽의 음악소리보다, 신나게 술잔 돌리던 우이동 엠티 보다 조용한 내 방에서 읽는 책 한 권이 더 좋았다.
책은 무조건 종이책이다. 책장을 넘기는 손맛을 포기할 수 없다. 이렇게 외치며 종이책을 고집하던 나는 결국 전자책에 곁을 내줬다. 덕분에 나의 어깨는 짓누르던 종이책 무게로부터 해방됐고 더 이상 비좁은 출근길 지하철 안에서 책 펼치는 공간을 확보하지 않아도 됐다. 기다리기 답답한 엘리베이터 안에서 전자책은 숨구멍이 되어줬다.
전자책이 조연에서 주연으로 거듭나게 된 것은 엄마가 되고 나서다. 종이책을 대면하기 위해선 정좌를 할 시간과 자리가 마련되어야 한다. 그러나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그럴 틈이 주어지던가. 시간도 시간이지만 종일 아이를 안아 올렸던 내 손목은 책을 들 힘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그리하여 잠자는 아이 옆에 누워 전자책을 읽기 시작했다. 아기띠를 하고 자장가를 흥얼거리면서도 내 손과 눈은 전자책 넘기기에 바빴다. 복직 후에는 출퇴근 길과 점심시간에도 전자책을 연다.
책은 잠시 멀어졌다가도 어느새 다가와 내 곁에 있다. 때론 잉크 냄새를 풍기며, 때론 화면 안에 빛을 내며.
오늘 밤도 잠든 아이에게 이불을 덮어 주고 전자책 앱을 연다. 그리고 고요한 방을 문장들의 속삭임으로 채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