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말 판독 연재
몸말 판독 제1장 - 죽음과 잔향
1. 얼마 전, 처남이 돌아갔다.
25년 동안 술벗이자 말벗이자 삶의 벗이었던 사람,
검사로, 변호사로 살며, 세상을 ‘예쁘게’ 그리던 처남이,
갑작스러운 위암 말기 판정, 치료 한 번 못 받고, 호스피스 병원에서 세 달 만에 돌아갔다.
병원에서 처남을 보고 돌아오는 길, 마음이 여러 겹으로 흔들렸다.
사건은 발생하지만 종결되지 않는다.
죽음이라 부르는 순간조차, 존재의 흐름과 울림 속에서 계속 전이된다.
처남이 떠난 것은 끝이 아니다. 삶의 흔적이란 죽음 뒤에 남겨진 그 무엇이 아니다. 살아서의 흔적이 침전 되어 유지되고 있는 거다.
그 침전은 흔적들 속에서 언제든 새로운 탄성으로 되돌아온다.
흔적에 대한 재판독은 단순한 기억의 재생이 아니다.
새로운 떨림 속에 되살아 오는 거다.
판독은 그런 의미에서 되살림이다.
그것이 그대로 머무는 일이든,
조금씩 달라지는 일이든,
겉으로는 끝처럼 보이는 일이든.
나는 ‘끝’이라는 말이 얼마나 성급한지 다시 생각했다.
아마도 우리가 끝이라고 부르는 자리는,
다른 방식으로 이어지기 시작하는 문턱일지도 모른다.
2. 편지 - 처남에게
나는 처남이 돌아가기 전 처남에게 편지를 보냈다.
처남
그날 병원에서 처남을 보고 돌아오는 길,
마음이 여러 겹으로 흔들리고 울렸네.
그 순간들 하나하나가 그냥 흘러가는 게 아니라,
마음속에 두께처럼 남아 서로 겹치고 얽히는 느낌일세.
우리가 함께했던 술자리와 웃음,
나누었던 철학과 정치 얘기,
밥보다 술을 더 좋아하던 습관까지—
모든 것이 서로 맞물려 내 안에서 하나의 리듬을 만들고 있다네.
서로 다른 생각을 극단적으로 펼치던 순간도,
지금 보면 그 리듬 속 한 부분이더군.
처남이 “엄마한테도 쉽게 설명할 수 있어야지” 하며 웃던 모습,
그리고 예쁜 삶을 바라보던 따뜻한 시선—
이런 것들이 내 마음 속에서 울림이 되고,
내 삶의 여러 순간과 겹치면서 계속 퍼져 나가네.
편지를 쓰는 지금 이 순간도,
그 울림과 겹침을 마음속에 담는 과정일세.
말로 다 전하지 못한 마음, 느낀 감정, 함께한 기억들이
글을 통해 조금이나마 남고,
서로에게 스며들기를 바라는 마음이지.
죽음 앞에서도 시간은 흐르지만,
우리가 남긴 순간들의 두께는 사라지지 않아.
그 속에서 처남과 내가 함께한 모든 순간이 계속 이어지고,
나와 처남이 서로에게 남긴 흔적이 이렇게 편지로 다시 살아나네.
막걸리 한 잔 하며 웃던 그 날처럼,
오늘도 마음속에서 서로의 울림을 느끼며 편지를 보내네.
늘 고맙네,
처남.
처남은 답장을 보내지 않았지만, 나는 그의 답신을 그가 돌아간 뒤 처남댁에게 들었다.
3. 편지 - 처남댁에게
처남이 돌아간 뒤 처남댁에게 편지를 보냈다.
오늘 그대가 내 꿈에 왔구려.
처남은 무슨 일인지 오지 않았다오.
꿈에서 깨어 시 한 수가 떠올라 적어봤다오.
影終雖已畢 (영종수이필) : 영화는 비록 이미 끝이 났으나
餘香未謂盡 (여향미위진) : 그 잔향은 다했다 말할 수 없구려.
君安我亦安 (군안아역안) : 그대가 평안하다면 나 또한 평안하다오.
心中彼亦安 (심중피역안) : 우리 마음속 그 또한 평안하다오.
처남댁의 답신이다.
저에겐
가슴아프게
불쌍한
사람으로
남아있는데,,,
그가
평안하다면,,,
다
되었어요.
그러면
되었습니다
그 마음을 받아들이는 순간, 전이는 강제로 닫히지 않고 열린 채로 이어졌다.
4. 처남의 ‘예쁘게’와 청와의 ‘아름답게’의 사중주(四重奏)
삶과 관계의 흔적, 침전은 다시 떨림으로 재판독되며 새로운 울림을 만든다.
말은 이미 끝났다고 생각될 수 있지만, 울림은 계속되며, 판독은 멈추지 않는다.
몸말 판독은 처남이 남긴 ‘예쁘게’라는 지향과 청와의 ‘아름답게’가 만나는 공명(Resonance)에서 이루어진다.
4.1. 알음답게 (認知): 앎의 투명함
처남이 "엄마한테도 쉽게 설명할 수 있어야지"라고 했던 그 마음은, 지식을 권위로 쓰지 않고 상대를 향해 투명하게 건네는 ‘알음’의 태도이다. 청와 1.0의 날 선 정의(얼)가 2.0의 따뜻한 시선과 만나, 세상의 이치를 명료하면서도 다정하게 알아가는 과정이다.
4.2. 안음답게 (包容): 존재의 품
변호사로서 세상을 예쁘게 그리려 했던 처남의 노력은, 타인의 고통과 사정을 자신의 품으로 ‘안음’으로써 가능했을 것이다. "그가 평안하다면 다 되었다"는 처남댁의 답신처럼, 상대를 내 안으로 모셔 들여 그 존재의 무게를 함께 견디는 넉넉한 작동이다.
4.3. 앓음답게 (痛症): 상처의 승화
청와 1.0이 남긴 상처와 처남의 갑작스러운 투병, 그리고 그를 떠나보낸 슬픔은 모두 ‘앓음’이다. 몸말판독에서 아름다움은 고통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그 앓음을 회피하지 않고 정직하게 통과하며 얻어지는 존재의 깊이이다. 앓아야만 비로소 잔향(餘香)이 남는다.
4.4. 알움답게 (生長): 새로운 움틈
죽음이라는 문턱에서 멈추지 않고, 그 잔향이 편지와 시로 다시 태어나는 것은 ‘알움(움트다)’의 역동성이다. 처남의 ‘예쁜 시선’은 청와의 판독을 통해 새로운 생명력을 얻어, 이 연재라는 움을 틔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