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리와 생리: 처절해서 더 아름다운 동적평형의 기록

몸말판독 12장

by 청와

​⧖ 몸말 판독 12장

​병리(病理)와 생리(生理): 처절해서 더 아름다운 동적 평형의 기록


​1. 병(病)은 마귀가 아니라 '굳어버린 습관'입니다


​병은 어느 날 갑자기 담을 넘어온 불청객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라는 뭉치가 살아남으려고 애쓰며 반복해온 특정한 작동 방식이 층층이 굳어버린 결과입니다.


어떤 문제(\Delta)를 풀려다 그 방식이 유연함을 잃고 고착될 때, 흘러가야 할 에너지(잔여, R)가 고여서 딱딱한 지층(S)을 만듭니다. 결국 병이란, 한때는 나를 지켜주었던 과거의 연산 방식이 이제는 현재의 나를 가로막는 '고집 센 습관의 흔적'인 셈입니다.


​2. 살려는 힘과 고치려는 힘의 줄타기


​우리 몸속에서 생리와 병리는 따로 노는 두 세계가 아닙니다. 하나의 나선 위에서 '유지(M)하면서 변형(T)'하려는 처절한 줄타기입니다.


병리는 뭉치가 감당할 수 없는 과부하 속에서 '어떻게든 죽지 않으려고 선택한 고통스러운 변신'입니다. 즉, 병리는 생리가 겁에 질려 잠시 멈춰선 자리이고, 생리는 병리가 용기를 내어 다시 흐르기 시작한 상태입니다. 우리는 그 팽팽한 경계선 위에서 살아갑니다.


​3. '통(痛)'은 비명이고, '고(苦)'는 그 비명을 읽는 마음입니다


​병마의 현장은 뭉치를 이루는 몸(넋)과 정신(얼)이 동시에 비명을 지르는 압착 지대입니다.


아픔, ​통(痛)은 몸이 감당할 수 없는 차이를 만났을 때 내뱉는 날것의 비명입니다.


괴로움, ​고(苦)는 그 통증을 판독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마음의 무너짐입니다. 잔여(R)가 공포와 절망이라는 언어로 굳어질 때 우리는 괴로워합니다.


​중요한 것은 고통에 '읽히는(대상화)' 존재로 남지 않는 것입니다. 고통을 나의 연산 안으로 초대해 "이것은 나의 살아있는 떨림이다"라고 선언할 때, 뭉치는 비로소 고통의 주인으로서 주권적인 '앓음'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4. 함께 곁을 지킨다는 것: 외벽이 되어주는 공명


​아픈 이의 곁을 지키는 것은 서로의 침전에 개입하는 가장 숭고한 중첩입니다.

환자가 통증 때문에 스스로를 판독할 힘을 잃었을 때, 곁에 있는 뭉치가 "당신은 여전히 존엄한 주권자입니다"라고 대신 읽어주며 무너지는 외벽을 지탱해 주는 것입니다. 나의 뭉치가 상대의 아픈 잔여(R)를 나누어 받아 함께 가라앉히는(S) 것, 이것이 바로 몸말이 말하는 윤리적 안음(O)입니다.


​5. 맥(脈)이 풀릴 때, 기록은 우주가 됩니다


​처절했던 평형 연산이 멈추고 찾아오는 마지막 안정은, 역설적으로 생명이라는 연산의 종결을 의미합니다.

차이(\Delta)도 없고 잔여(R)도 발생하지 않는 완벽한 고요는 낱뭉치로서의 마침표입니다. 평생 써 내려온 그 처절한 연산 기록들은 비로소 '나'라는 좁은 울타리를 벗어나 우주의 거대한 지층으로 돌아갑니다.


​12장 최종 판독


"병은 살기 위해 쌓아온 습관의 흔적이며, 앓음은 그 굳은 지층을 다시 생명의 흐름으로 돌려놓으려는 처절한 분투입니다. 생명은 오직 이 떨림 속에만 있으며, 맥(脈)이 풀리는 순간 우리는 자신의 모든 기록을 우주의 품으로 되돌려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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