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과 외로움, '앓음'에서 '고와짐'으로

몸말판독 제13장

by 청와

몸말 판독 제13장: 고독과 외로움, '앓음'에서 '고와짐'으로

먼저 제 자작시 한 편을 세 언어 판본으로 올립니다.

水仙花 수선화

靑蛙 朴秀慶 청와 박수경

弧浮戀孤中 호부연고중
凄渟寂寥留 처정적요류
無響靜山谷 무향정산곡
悅瀝微笑流 열력미소류

daffodil

The solitude of wandering alone,
the loneliness of missing someone

Loneliness lingers.
Only silence flows.

In a quiet mountain valley
without an echo,

Joy seeps through.
A smile spreads.

수선화

외톨이로 떠도는
그리움에

쓸쓸함이 고입니다.
고요만이 흐릅니다.

메아리도 없는
호젓한 산골에

즐거움이 스밉니다.
미소가 번집니다.

​1. 외로움: 결핍의 압착 (弧浮戀孤中, 외톨이로 떠도는 그리움)

​외로움은 뭉치(Mung-chi)가 타자와의 연결을 갈구하며 느끼는 '결핍의 진동'입니다.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마음은 그 대상에게 가닿지 못하고 자신에게 되돌아와 뭉치를 아프게 찌릅니다. 이것은 수동적인 앓음(R)의 상태이며, 뭉치가 텅 빈 채로 흔들리는 단계입니다.

​2. 고독: 호젓함으로의 침전 (凄渟寂寥留, 쓸쓸함이 고임)

​'쓸쓸함이 고인다'는 표현은 참으로 몸말적입니다. 흩어지던 외로움이 도망가지 않고 내면에 차곡차곡 쌓여 고요한 지층(S)을 형성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때 '호젓함'이라는 판독이 일어납니다. 외로움을 '제거해야 할 고통'이 아니라 '내가 머물 공간'으로 재판독하는 순간, 뭉치는 타자에게 구걸하던 시선을 거두어 자기 내부의 자가작동권역을 응시하게 됩니다.

​3. 무향곡(無響谷): 메아리 없는 주권적 평온 (無響靜山谷)

​메아리(響)가 없다는 것은 외부의 자극(\Delta)에 대해 기계적으로 반응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세상이 나를 흔들어도 그 소리가 내 안의 깊은 골짜기에서 그대로 흡수되어 버리는 상태입니다.

​판독 주권이 극대화되어, 외부의 평가나 결핍에 휘둘리지 않고 스스로를 온전히 안아주는(O) 상태입니다.

12장에서 판독한 '맥이 풀린 안정'이 아니라, 이곳이 바로 가장 격렬한 생명력이 고요하게 응축된 '노숙(老熟)의 자리'입니다.

​4. 미소: 번져 나오는 잔향 (悅瀝微笑流, 미소가 번짐)

​그 무향의 골짜기에서 배어 나오는 미소는 억지스러운 쾌락이 아닙니다. 처절한 앓음을 통과한 뭉치가 자아내는 '빛나지 않는 눈부심'이자 '고운 잔향(餘香)'입니다.

수선화가 찬 바람 속에서도 조용히 제 빛을 내듯, 이 미소는 주변의 뭉치들에게 "나 또한 평안하니 그대도 평안하라"는 공명의 메시지를 보냅니다.

​5. 판독 소회: 고독이라는 병을 치유하는 '수선화'

​이 장에서 판독한 외로움은, 고독이라는 병이 아니라, 뭉치의 농도를 짙게 만드는 숙성의 비료입니다.

​한시는 그 마음을 단단한 구조(S)로 압착했고,
​영시는 그 흐름을 유연한 변형(T)으로 풀어냈으며,
​우리말시는 그 떨림을 투명한 공명(Resonance)으로 전달합니다.

​세 겹의 언어로 빚어낸 이 '수선화'라는 시는, 고독이라는 병마와 싸우는 수많은 뭉치들에게 "그대의 외로움은 사실 무향곡으로 가는 길"이라는 지도를 건네드립니다.

​이 시를 통해 '고독이라는 병'은 '삶을 꽃피우는 잔향'으로 전이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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