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스톱 교향곡, 악장 형식에 문제 있는 거 아냐?
밥통성찰록
1. 인생의 축소판
흔히 바둑을 두고 ‘인생의 축소판’이라고 한다. 그래서 소탐대실(小貪大失)이니, 아생연후살타(我生然後殺他)니, 성동격서(聲東擊西)니 하는 말로써 삶의 어떤 상황을 두고 바둑과 비슷하다고 말한다. 바둑을 빗대서 인생을 논하는 것이 그럴 듯하기는 하다만, 바둑보다 더 그럴 듯한 것이 ‘고스톱’이다. 그야말로 인생을 빗대서 이야기하기에 고스톱만한 것이 또 있을까?
2. 얼른 떠오르는 두 가지 고스톱, 놀이와 노름
고스톱을 놀이로 치기도 하지만 노름으로 치기도 한다. 놀이로 치는 고스톱이란 그 자체를 즐기는 것을 말한다. 놀이터에서 그네를 타거나 미끄럼틀을 타는 것은 그 자체를 즐기는 것이다. 노름(일?)으로 치는 고스톱이란 고스톱이라는 게임을 통해서 다른 무엇을 얻으려는 목적이 있는 것이다.
빗대 보자. 당구를 치든, 바둑을 두든 타이틀이 걸린 것과 그렇지 않은 것 두 가지 방식이 있겠다. 글쓰기가 즐거워서 하는 것과 글쓰기를 통해서 무엇을 이루고자 하는 것이 그렇겠는가? 공부가 재미있어서 하는 사람과 공부를 해서 뭘 어쩌겠다는 사람의 경우가 또 비슷하겠는가?
더하고 덜한 정도의 차이가 되었든, 이런 재미와 저런 재미가 되었든 간에 얘기의 핵심은 재미에 있겠다. 그냥 하는 재미와 무엇 때문에, 뭔가를 위해서 하는 재미의 차이라고 해도 되겠다.
누구든 무슨 일을 할 때 습관적이거나 의지적이거나 간에 일정한 경향성과 반응양상을 보이기 마련이다. 그렇게 하는 데에는 그렇게 할 만한 재미가 있어서 그러는 거라고 보자. 우리는 어떤 재미로 고스톱을 치고 있을까? 위에서 고스톱 치는 두 가지 재미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그냥 치는 재미와 뭐를 걸고 치는 재미로 보는 방식은 그 방식대로 의미가 있다.
그런데 고스톱 치는 재미에 대해 그것과 다른 방식으로 생각해 보면 또 어떤 재미들이 있을까? 어떤 고스톱을, 어떻게 치고 있느냐는 거다.
3. 제1악장, 빌어먹는 재미로 치는 고스톱(이하 ‘빌어먹는 고스톱’)
고스톱을 치는 누구나 잔머리를 엄청 굴린다. 오죽하면 치매예방에 좋다고 추천하는 놀이가 되었겠는가? 그런데 자기 수중에 든 패에 대해서야 잔머리가 통해도 뒷장과 남의 패에 대해서 <그놈>이 어쩌나 보자.
2 매조 열 끗짜리 한 장(새 한 마리), 4 흑싸리 열 끗짜리 한 장(새 한 마리) 먹어다 놓았다. 이제 8 공산 열 끗짜리 한 장(새 세 마리)만 더 있으면 이른바 고도리(새 다섯 마리)로 5점이 나게 된다. 바닥에 8 열 끗짜리가 깔렸고 자기 앞 순서에 치는 사람이 8 광으로 치고 뒷장을 뜬다.
내 왼쪽에서 8 굉으로 열 끗짜리를 치고 뒷장을 치는 상황
바로 그 때 내 안의 그놈이 속으로 딱 요렇게 빈다.
‘싸라, 제발 싸라!’
상황 조금 바꿔볼까? 2 매조 열 끗짜리 한 장, 4흑싸리 열 끗짜리 한 장 먹어다 놓았다. 내 앞 순서에 치는 사람이 뒷장을 떠서 8 열 끗짜리를 내려놓았다. 이제 내 차례다. 내 손에 8 광이 떡하니 들려있다. 옳다구나 하고 8 광으로 치고 뒷장을 떠서 내리쳤는데 8 껍데기가 딱 붙었다. 쌌다.
바로 그 때 내 안의 그놈이 그런다.
“이런, 빌어먹을!”
내 오른쪽 놈이 속으로 그랬더란다.
‘싸라, 제발 싸라!’
그놈이 8 싼 것 먹어가서 점수가 나 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빌어먹는 고스톱이라고 하는 거다.
4. 제2악장, 짜고 치는 재미로 치는 고스톱(이하 ‘짜고 치는 고스톱’)
자기 손에 든 패만 알고 치는 게 정상인데, 자기 패만 알고 치면 병신 되는 고스톱이 있다. 바로 사기 도박판이다. 누구는 타짜에게 걸리고 싶어서 그렇게 되었겠는가? 어쩌다보니 거기까지 저도 모르게 가 있는 것 아니겠는가? 그 판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그놈의 운명은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뒷장 붙는 재미가 쏠쏠할 거다. 자기가 떡밥 문 줄 모르고 덤벼들겠지. 낚싯줄을 당겼더니 출혈이 조금 있다. 그 유명한 ‘처음처럼’이라는 문구 떠올려 본다. ‘첫 끗발이 개 끗발’이라는 ‘좋은 생각’ 놔두고 구태여 ‘본전 생각’만 한다. 패가망신이란 딱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다. 그놈이 그런다.
“이렇게까지 될 줄 누가 알았나?”
다 아는 것을 그놈만 몰랐나 보다. 그래서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 하는 거다. 그 재미가 엄청 신랄하다던데, 1, 2등 미리 정해진 시장노래자랑에 나갔다가 만원짜리 시장상품권 받고 쓴웃음지었던 ‘옛날 생각’도 난다.
5. 제3악장, 거룩한 재미로 치는 고스톱(이하 ‘거룩한 고스톱’)
이왕 치기로 한 고스톱이니 고스톱 같은 것은 치지 말라고 아무리 말해 봐야 쇠귀에 경 읽기겠다. 고스톱 치는 것 좋다. 돈 내기 하는 것 좋다. 점 당 백 원이 아니라, 점 당 천 원이라도 좋다. 그 정도 되면 도박이 아니냐고? 법적으로야 어떤지는 모르겠고, 돈이나 재물을 걸었으면 10원을 걸어도 도박은 도박이다. 위에서 그랬지 않은가? 그냥 치는 고스톱과 뭐를 걸고 치는 고스톱이 있다고. 어찌되었든 거룩한 도박 한 번 해보자는 거다. 어떻게?
한 가지 조건만 맞으면 된다. 따는 돈 전부를 기부하는 거다. 그러겠다는 사람끼리 고스톱을 치는 거다. 천 원을 따면 천 원짜리 백신을 구하지 못해 죽어가는 아이에게 천 원을 보낼 수 있다. 천 원을 잃으면 하루 천 원 미만으로 생활하는 이들에게 하루 생계비를 보내는 게 된 셈이다. 어느 놈이 딴 돈은 어느 놈이 잃은 돈이다. 그러니 딴 놈도 잃은 놈도 모두 기부 천사가 되는 거다. 똥 쌍피 먹다가 싸는 일마저 거룩한 일이 된다.
거룩한 고스톱은 거지가 되는 거지같은 고스톱이다. 가난을 자청하는 거룩한 고스톱이다. 마음이 가난해야 칠 수 있는 거지같은 고스톱이라는 거다. 마음이 가난한 자에게 복이 있나니.
6. 제4악장, 병 주고 약 주는 재미로 치는 고스톱(이하 ‘병 주고 약 주는 고스톱’)
대체로 빌어먹는 고스톱과 다를 게 없다. 그런데 결정적인 차이는 빌어먹는 고스톱이 결과에 관심이 있다면 병 주고 약 주는 고스톱은 과정에 관심이 있다.
제사를 모시러 친척들이 모였다. 자시(밤 11시에서 새벽 1시 사이)에 제사를 모시려면 기다리는 시간에 으레 화투들을 쳤다. 남자들만 그랬다고? 그건 다른 주제다. 작은 아버지가 능글거리면서 야금야금 다 따먹었다. 10시쯤 되어서 그 작은 아버지는 지방 쓰러 간다고 일어나면서 돈 다 떨어져가는 막내에게 그 돈 다 던져 주신다. 울상이던 막내 얼굴에 희색이 만면하다. 자시가 다 될 즈음에 막내 그 돈 마저 다 잃게 되었다. 사촌 형님이 제일 많이 딴 모양이다. 막내가 얼굴이 벌겋게 되었다.
제사를 모시러 가면서 사촌 형님이 막내에게 딴 돈을 몽땅 쥐어주신다. 사촌 형님 씨익 웃으신다. 막내 뻘쭘히 서 있다가 씽긋 웃는다. 그래서 울렸다 웃겼다, 병 주고 약 주는 고스톱이라는 거다.
7. 인생에 잘 빗대졌는지
이쯤 했으면 나올 만한 고스톱 치는 재미는 다 나온 것 같다. 경로당 고스톱, 찜질방 고스톱, 상갓집 고스톱, 온라인 고스톱 등 어디 장소가 문제겠는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고스톱 치고 있느냐 하는 게 중요하겠다.
고스톱 치는 네 가지 재미가 삶을 사는 네 가지 재미 아니겠는가? 네 가지 재미 가운데 어떤 맛이 더 강하게 나는 삶을 살든지, 네 가지 재미 이것저것을 섞어서 비빔밥을 만들어 먹는 삶을 살든지, 그 네 가지 재미 안에 다 들어있지 않겠느냐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