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 나는 화가 많은 사람이다. 그렇게 된 사연은 <한시로 쓰는 자서전>으로 돌리고 여기서는 그놈의 화를 어찌할 것인가에 대해 얘기해 보자.
청와빌라를 규탐해 보자.
101호 깍쟁이는 신경질과 짜증이라는 화를 바로바로 낸다.
102호 범부는 신경질과 짜증이라는 화를 담고 지내다가 별스러운 짓으로 풀곤 한다.
201호 건달은 치밀어 오르는 부아라는 화에 사로잡혀 휘둘린다.
202호 장부는 치밀어 오르는 부아라는 화를 대차게 내서 푼다.
301호 샌님은 끓어오르는 골이라는 화를 참다참다 못 참고 터뜨린다.
302호 군자는 자기성찰로 이러저러한 화를 곰삭힌다.
401호 도사는 이러저러한 화를 삭이지도 풀지도 못하고 삭인 척 푼 척 한다.
402호 성인은 화의 원리를 통찰함으로써 자기자신을 포맷한다.
성인은 화의 원리를 통찰함으로써 자기자신을 포맷한다고?
사실1) 누군가 어떤 짓을 했다.
사실2) 그래서 내가 화가 났다.
나를 화나게 한 것이 누군가의 어떤 짓일까? 사실1)과 사실2) 사이에 관념1)이 있다.
관념1) 그렇게 하면 안 되지,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사실1) 때문에 화가 난 것이 아니라, 관념1) 때문에 화가 난 거다. 누군가 때문이 아니라, 자기자신의 관념(생각) 때문에 화가 났다는 말이다. 그래서 성인은 누군가 덕분에 자기자신을 포맷하는 거다.
관념1)을 다음과 같이 포맷해 보자.
1단계) 그래서 그랬겠구나.
2단계) 그럴 수도 있지.
3단계) 화가 난 나를 포맷한다.
1단계)는 <역지사지, 이해, 공감이라는 프로그램>을 설치하는 거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아! 그래서 그랬겠구나.”
1단계는 섬세한 감수성을 패치하는 거다. 누군가 어째서 그랬겠는지 그 상황과 심정을 섬세하게 느껴보는 거다.
2단계) <용인, 용서라는 프로그램>을 설치하는 거다.
1-1)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1-2) 아! 그래서 그랬겠구나.
2-1) 그래도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2-2) 그럴 수도 있으니까 그렇게 된 거지, 그럴 수 없으면 그렇게 될 수 없는 거야.
1단계에서 끝날 수 있으면 좋은데, 안 되면 1단계를 더 진전시켜 2단계로 가야 한다. 2단계는 무한한 포용성이다. 모든 사실을 받아들인다는 건데, 용인, 용서가 다 된다면 누구나 성인이 되는 거다. 그런데 그렇게 하는 게 무슨 성인이냐고? 나를 못 살게 괴롭히고 ‘왕따’시키는 누군가를 보고, “그럴 수도 있지!” 그게 바보지, 이게 말이 되냐고?
내가 누군가를 용서함으로써 좋아지는 사람은 오히려 용서를 해준 나 자신이다. 왜냐고? 나 자신의 화가 사라지게 되니까. 나 자신이 더욱 성숙하게 되니까.
내 용서에도 불구하고 누군가 반성과 참회는커녕 아무것도 달라지는 점이 없다거나 내게 더 나쁘게 대할 수도 있는데 어떻게 용서를 하느냐고?
내가 용서를 하는 것은 내가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누군가가 아니다. 내가 내 마음대로 하려고 애쓸 수 있고, 그러다 내 마음대로 해서 그렇게 될 수도 있는 바로 나 자신을 용서하는 거다.
왜 자기자신을 용서해야 하느냐고? 앞에서 그랬잖아. 내가 화가 난 것은 누군가 때문이 아니라, 자기자신의 관념(생각) 때문이라고. 자기자신을 용서하고 나면 누군가를 용서하는 일은 어렵지 않겠지?
1, 2단계 설치가 끝나면 3단계 프로그램은 자동으로 실행된다. 3단계는 실행(exe) 프로그램이다.
시로써 맺는다.
這位飯桶啊 저위반통아
이 밥통아
不由厥行惹怒汝 불유궐행야노여
네가 화가 난 것은 그놈이 한 짓 때문이 아니라
汝何能這對我乎 여하능저대아호
네가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가 있어
以如是想爾發火 이여시상이발화
라고 하는 네 생각 때문에 네가 화가 난 거야
恁易思是逼厥非 임역사시핍궐비
그놈을 다그친들 화가 풀리겠어?
밥통 같은 네 생각을 바꿔야 화가 안 나지.
易思는 '역지사지'와 '생각을 바꾸다'라는 중의의 용법이다.
逼 핍박할 핍
(내가 출근길에 앉아서 글 올리는 곳을 어제 저녁 퇴근길에 맞은 편에서 찍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