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2년 동안은 결혼 생활이 불행하다고 느꼈다.
육아 문제로, 살림 문제로, 생활방식의 문제로
사사건건 우린 부딪혔다.
이해득실은 왜 그렇게 따지게 되는지,
내가 조금이라도 손해 보는 게 미치게 싫었다.
맞벌이이기도 하고 벌이도 비슷했기에
가사노동이든 육아든 내가 더 많이 한다 싶으면
잠도 안 오고 억울하고 화가 났다.
한 달에 한 번씩은 “이래도 되나?”싶을 정도로
크게 싸우곤 했다.
도무지 서로 이해 안 되는 것 투성이의 나날이었다. 예민해져 날 선 말들은
공격적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었고
우리가 결혼하게 된 수만 가지의 이유들은
빠르게 아득해져 갔다.
4년 이하 신혼 이혼율이 왜 높은지 알 것 같았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내키는 대로 살다가
타인과 함께 살면서 느끼는 불편함.
그것은 상상이상이었다.
각자의 습관을 마주했을 때의 미시감은
전부 잘못된 것처럼 느껴지고
결혼하고 나서야 드러나는 단점들은
배신감마저 들게 했다.
그렇게 “넌 틀렸고 난 옳아!”라고 하는
줄다리기 같은 싸움을 꽤 오래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여전히 결혼 생활을
유지하고 있는 이유를 생각해 보면
싸운 후의 화해 과정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누군가는 얼굴 보고 대화하는 것이 좋다지만
그 당시 눈만 마주치면 싸우는 우리로서는
얼굴 보고 하는 이성적 대화가 불가능했다.
그래서 우린 싸운 다음날 각자 회사에서
분노의 타이핑으로 장문의 카톡을 쓰며
입장정리를 하곤 했다.
(이 방법이 상황을 더 악화시키는 경우도 봤다.
사람마다 다르다.)
싸우느라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던
문제점, 서운함등을
정제된 말로 명확하게 전달할 수 있었다.
그렇게 서로의 입장문을 두세 번 읽어보다
일에 잠깐 집중도 했다가
생각에 잠겼다가 하다 보면
분노가 가라앉으며 진정이 되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상대가 이해가 되기도 했다.
각자 잘못한 부분은 미안하다고 사과도 했다.
그런 나날들이 지나 어느 순간 우리도 모르게
안정이 되었던 것 같다.
헤어질 것이 아니라면
우리가 바뀌어야 한다는 것에
이견이 없었던 것이 주요하기도 했다.
노력의 필요성을 느꼈고 실행에 옮겼다.
여러 갈등을 조율하며 필요하면 맞춰주고
상대가 예민한 날은 눈치껏 행동하며
30여 년 동안 몸에 베인 습관을 고치려 노력해 보고
상대가 가사일이나 육아로 힘쓰고 있으면
미안함에 뭐라도 하려고 애쓰게 되었다.
아이가 아직 말을 못 해서
어떻게 놀아줘야 할지 모르겠다는
황당한 말을 해가며 싸우던 육아문제는
아이가 말을 하면서부터 조금씩 해소가 되었다.
(당시엔 핑계인 줄 알았는데 진짜여서 매우 놀랐다.)
지금은 1년에 한두 번 정도 싸우고
더 이상 “불행하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낯설고 미숙했던 결혼 초기의 위기를
우리는 함께 잘 버텨냈다.
그 시간 덕분에 나는
나도 완전하지 않다는 걸 인정할 수 있었고,
상대도 점점 더 존중할 수 있게 되었다.
완벽하지 않지만,
서로를 알아가려 애쓴 그 시간들 위에
지금의 우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