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소아비만이었다

꾸준함에 대하여

by 현솔

나는 소아비만이었다
어릴 때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덩치 하난 남들에게 뒤지지 않았다
어떤 이는 내게 돌잡이 때 숟가락을 잡았냐고 묻기도 했다
(사실 이 말은 두고두고 어이없다. 돌상에 수저가 있을 리 만무하지 않은가)

그의 예상과는 달리 나는 연필을 잡았다.
하지만 자라면서는 수저를 더 자주 들었나 보다.
내 덩치는 늘 또래보다 컸고

나를 키워주던 할머니는 내가 보지 못하는 곳에

음식을 숨기시기까지 했다.
지금도 기억이 나는 걸 보면
그때도 꽤나 서러웠나 보다

한 번도 날씬해본 적이 없으니 체력은 늘 약했고
체육시간이 있는 날이면 전날부터 스트레스를 받았다

사실 그냥 운동을 싫어했던 거다

그중에서도 가장 혐오했던 건 오.래.달.리.기
뙤약볕 아래에서 숨을 헐떡거리며 참 오래도 달렸다

진작에 끝낸 친구들은 운동장 계단에서
쉬고 있는데, 바퀴 수를 다 채우지 못한 나는

계속 달려야 했다

점점 줄어드는 친구들.
결국 나 혼자만의 레이스가 된 오래 달리기
자연스레 모든 시선과 관심은 내게 집중됐다
뛰는 것도 힘든데
부담스러운 시선들까지 받아야 한다니
그야말로 고역이었다

이미 꼴찌로 달리고 있는 것만 봐도
체력 검증은 다 된 것 같은데
계속 달리게 하는 선생님은 또 무슨 심보인가

그런데 그 레이스에도 결국 끝은 있더라
죽을힘을 다해 마지막 바퀴를 뛰었고
친구들과 선생님은
결승점에 들어온 내게 박수를 보냈다

그때의 나는 달리기를 '끝낸 것만으로도'
박수를 받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런 나에게도 장점은 있었다
바로... 무식할 만큼 꾸준하다는 것.

스무 살, 처음 경험한 짝사랑은
내가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게 만들었다

인생 첫 다이어트를 결심한 나는 걷고 또 걸었다

당시 학교에서 집까지의 거리는
차로 약 1시간, 걸어서는 약 5시간이 걸리는 거리였는데

난 그 거리를 걸어 다녔다

물론 그전에는 의학의 힘을 빌리기도 했다
살을 잘 빼준다는 유명 내과에서
약을 처방받기도 하고 한의원도 가봤다
그런데 쉽게 얻은 건, 역시 금세 사라지더라

하지만 5시간을 걸어 다니니
그 걸음이 아까워서라도 자연스레
먹지 않게 되었고, 살은 쭉쭉 빠졌다
덕분에 짝사랑은 성공적이었지만
그때 뺀 살은 임신과 출산으로 다시 제자리를 찾았다

일도 마찬가지였다
내 직업은 특성상 한 곳에서 오래 일하는 게
쉽지 않다. 남은 이보다 떠나간 이가 더 많은 곳.
그런 곳에서 나는 10년을 버텼다
비록 프리랜서이기에 소속된 몸은 아니지만
출산과 육아로 인해 잠시 쉰 것 외엔 참 오래도 다녔다

그런데 이때까지만 해도 그냥
이건 나에게 당연한 일이었지
특별한 장점이 아니었다
내가 나를 달리 보게 된 건 채 1년이 지나지 않았다

지난해에 개최된 파리올림픽.
그 무렵 나는 올림픽 경기를 챙겨보는 것이
낙이었는데 (운동은 싫어해도 보는 건 즐길 수 있다)

대회 끝 무렵 마라톤 경기를 마주했다
거의 2시간 가까이 뛰면서도 조금 더 나은
기록을 내기 위해 젖 먹던 힘을 쥐어짜던 선수들.
그렇게 달리면서도, 어느 누구 하나 찡그리지 않던 표정들.
사람들의 박수를 받으며 속도를 내던 막판 스퍼트,
휘청거리면서도 결승선을 들어오며 번쩍 들어 올렸던 두 팔까지.

그리고 다음 날 나는 아파트 헬스장을 찾았다
한번쯤은 나도 그렇게 살고 싶어졌다
2시간 가까이 뛰는 레이스는 아니더라도
그들처럼 달려보고 싶었다

그렇게 헬스장을 찾았고
러닝 (정확히 말하면 슬로우 조깅...)은
내 새로운 취미가 되었다
그렇게 지속한 지도 벌써 1년.

나는 25kg가 빠졌으며 체력은 강인해졌다
그리고 또 다른 믿음 하나를 얻었다

"비록 느릴지라도
나는 언제든, 어떻게든 해낸다"

그러니 지금 설령 꼴찌라고 해서 좌절말자
당신에겐 당신도 모르는 능력이 있을 수 있으니

(아래는 2024년 운동 기록, 투명하게도 올림픽 이전엔 숨쉬기 운동만 했다.
또 다른 다이어트 스토리는 천천히 풀어볼 예정이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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