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나는 빵집에서 엄마와 헤어졌다. 이게 내 유년 시절의 첫 기억이다
그때의 풍경은 어렴풋하지만, 나름 선명하다. 당시 우리 동네 근처엔 지하철역이 있었고
그 옆에는 꽤 큰 규모의 빵집이 있었다. 빵집이 즉 만남의 장소였던 시절이었다.
커다란 테이블과 촌스러운 빨간색 의자가 강렬하게 놓여있던 공간
그 자리엔 아빠와 나 그리고 엄마가 있었다
당시 엄마의 모습이 어땠는지, 또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이렇게 쓰고 보니 평범하기 짝이 없는 순간인데
그때의 그 순간은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오랜 시간 남아있다.
잔상처럼 남아있지만, 불현듯 떠오르는 기억.
아마 그때가 엄마와 나의 마지막 순간이었기 때문일까?
어렸을 적 아빠와 엄마는 사이가 좋지 않았고
나는 아빠와 떨어져 제주도에 있는 엄마의 집에서 몇 해를 보냈다
훗날 아빠에게 들은 이야기로는, 그곳은 제주 구좌읍이었다
그 집엔 초록잎이 무성한 나무가 있었고, 따듯했던 할머니가 있었다
그 할머니가 나의 외할머니인지 아니면 엄마의 또 다른 가족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기억이 희미하다는 건, 그 시절이 평온했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그날 그 빵집에서 엄마와 헤어진 후, 나는 아빠와 새로운 도시에서 자랐다
놀랍도록 평범하게, 그것도 잘.
엄마가 보고 싶다고 울거나, 찾아가겠다고 떼를 쓴 기억도 없다
그렇게 어린아이가 그럴 수 있었다고? 그게 가능하다고?
맞다.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그 나이는 ‘이별’이라는 걸 모르는 나이니까
단지 어린 나를 지키기 위해 아빠가 했던 거짓말을 철썩같이 믿었을 뿐이다
“지금 아빠 옆에 있는 이 사람이 진짜 네 엄마야
제주에서 함께 지낸 그 사람은 고마운 이모일 뿐이야”
어린아이에게 부모의 말은 전부라서
사실과 거짓을 따질 이유도, 필요도 없다
그걸 따져 묻는 건 어른의 방식이겠지
그런데도 그 어린 시절의 기억은 왜 그리도 오래 남아있는 걸까
왜 어떤 일은 희미해지고, 어떤 순간은 오래도록 따라다니는 걸까?
이가 궁금해 한 뇌과학자의 연구를 찾아봤다
‘조지프 루드’라는 그의 말에 따르면
‘감정과 연결된 사건들은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사실 그의 연구엔 편도체니, 신경전달물질이니 어려운 용어가 잔뜩 나왔지만
내게 와닿는 건 그 한마디였다
더불어 유년 시절의 기억이 자아를 형성한다든지, 성격적인 부분에 영향을 미친다든지
솔직히 그런 거창한 부분까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아, 물론 그 자체를 부정하진 않는다, 여러 심리 서적에서 반복적으로 사용되는 연구인 만큼
그 또한 세계의 많은 연구자들이 무수한 증명을 통해 밝혀낸 사실일 테니까.
다만, ‘감정과 연결된 사건은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는 것’
이 당연한 얘기를 과학적으로 밝혀낸 그의 연구는 내게 확실히 더 와닿았다
내가 그때 그 촌스러운 빵집에서의 일화를 아직까지 기억하는 이유.
그 이유의 답도 거기에 있지 않을까?
아마 내가 그때 배웠던 감정은 상실과 이별이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