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간 걱정 거리두기 캠페인

고민은 셀프로, 한숨은 분리수거 통에. 코로나19 베트남 일상

by 마미태

재택근무하는 삼식이 (feat.에너지 브레이커)


남편이 재택근무를 시작한지 어느덧 한 달이 넘었다. 처음엔 집에 삼식이가 둘이라며 농담 섞인 말로 주부로서의 고충을 내비치곤 했으나, 내심 다행이다 싶었다. 1월 말부터 개학해 학교로 돌아갔어야 할 이곳의 아이들과 학부모들은 '휴교 2주 연기, 2주만 더 연기, 더 연기, 다시 연기'를 수차례 당하다 보니, 희망고문에 감정이 무감각해진지 오래다. 5월 3일 즈음에는 개학을 할 수 있다는 소식이 들리지만, 이미 한 학기 일정은 물건너 간데다 누구 하나 "어머 드디어? 잘 됐다!!!" 라고 다시 희망을 되찾은 이 없이 그저 지켜보자는 반응이다.


한국의 확진자 증가폭이 수그러 들고 스페인과 이탈리아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지면서 부터였다. 유럽에서 입국한 사람들 중 확진자 수가 갑자기 생겨나면서 베트남 정부는 긴장했고, 마스크 없이 손잡고 데이트를 즐기던 당당하던 서양인들도 마스크 안 쓴 사람을 보기 힘들 정도로 조심하는 분위기였다. 이 지역의 핫플레이스인 한 백화점에 다녀가는 사람들의 숫자도 눈에 띄게 줄어들었고, 급기야 4월 초 확진자 수가 가장 몰리는 하노이와 호치민, 다낭 등 고위험 지역을 중심으로 사회적 거리두기 정책이 이루어지면서 모든 학원시설, 식당, 카페, 마사지숍 등 서비스 업종이 문을 닫았다. 그나마도 인근 보습학원을 보내며 아이들 공부의 맥이 끊이지 않도록 간신히 관리해오던 것마저 모두 다 내려놓아야 했을때, 엄마들의 한숨은 바닥 끝까지 깊어졌다.


남편의 회사는 셔틀밴을 타고 40분 거리를 가야 하는 거리에 있다. 밀폐된 공간에서 여러 명이 다닥 다닥 붙어 긴 시간을 함께 있어야 한다는 것이 걱정스러웠으나, 아침 잠이 많은 현명한(?) 남편은 아예 출근하지 않는 편을 택했다. 이런 격리 분위기가 아니었더라도 남편은 종종 출근을 하지 않고 재택근무를 하곤 했다. 출장이 잦아 어차피 한 달에 일주일 정도는 회사에 나가지 않았고, 어디서 일을 해도 상관없는 업무 형태이기 때문이다. 앉은 김에 드러눕는다고, 깔끔하게 가지 않기로 결정하고 나니 남편의 일과 생활은 더욱 찰지게 믹스되어, 회사 구성원도 아닌 나의 세포까지 긴장하게 만들었다.


그리하여 내 삶에 진득하게 자리 잡은 삼식이들과의 일상. 뒤돌아 서면 밥 할 시간, 뒤 돌아 서면 잘 시간이 다가오는 하루는 왜 이렇게 쏜살 같은지. 집 안에만 있어도 이렇게 바쁜데, 도대체 본인 업무를 성실히 해내면서 언제들 그렇게 아이를 보며 인스타로 장사를 하고 유튜브 콘텐츠를 만드는 건지.. 시간이 많으니 이 기회가 바로 독서할 타이밍이라고, 밀린 넷플릭스를 볼 타이밍이라고 추천해주는 영상들이 나에게는 딴 세상 얘기들인 것만 같다. (리스펙!!!)




님아, (고민 들고) 그 문지방 넘지 마오!!


사업을 하는 사람들, 자영업을 하는 사람들에 비하자면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우리 가족에 주는 타격이 뼈를 깍는 고통 정도는 아니지만은, 속속들이 비교하자면 한도 끝도 없는 법이니 그 세계의 사연은 잠시 내려놓고, 몇일 내내 신경과민에 시달리고 있는 내 상태를 돌아보았다.


남편의 회사는 비상경영체제를 돌입하며 이틀에 한번 꼴로 컨퍼런스 콜을 하는데, 한번 시작하면 끝날지 모르는 릴레이 회의라서 나는 아침, 커피, 간식, 심지어 점심도 쟁반에 곱게 받쳐 날라주는 셔틀 신세를 면치 못하게 됐다. 책상에서 식탁까지 스무 걸음, 아니 열 걸음도 안되는 그 거리를 직접 나올 수 없어 말이다. 남편은 컨퍼런스 콜이 끝나면 낮에 하지 못했던 업무 처리, 다음 회의때 제출해야 할 자료 준비 등으로 아침 눈 떴을때부터 눈 감을때까지 격무에 시달리고 있다. 일을 하는 동안 아이가 방에 들어가 방해가 될까봐 문을 꼭 걸어잠그고 일을 하는데, 볼일을 보러 나올 때나 뭔가 필요한 물건을 찾을 때만 잠갔던 문을 '파바바바팟' 소리를 내며 세차게 열고 나온다.

그렇게 보내는 하루를 옆에서 고스란히 지켜보며 나는 또 어둑해질 즈음 저녁을 차린다. 저녁을 먹으면서도 그의 머릿속에 일 생각으로 그득해서, 기어이 입 밖으로까지 어떤 일을 하고 있으며 무슨 문제가 있는지 쏟아내버리곤 한다. 그저 보고용으로 만들어야 하는 의미 없는 자료들을 왜 해야 하느냐며 말투의 끝자락을 물음표로 던지면, 그 식탁의 유일한 성인인 나는 뭔가 해결책 내지는 위로꺼리를 찾아줘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러시아에 있는 그노무시키, 중동에 있는 저노무시키들을 들먹여가며 썰을 푸는 그. 그 입 다물라!!!! 라고 나는 속으로 되내인다. 말 할 기운마저 없어 구체적인 얘기를 하지 않는 날엔 가느다란 한숨이 대신 그 자리를 채운다. 처음엔 그런 남편을 격려하며 기운을 잃지 않도록 나의 에너지를 탈탈 털어 주었건만, 너무 다 털어 주었는지 이제는 내가 너무 지치는거다. 내겐 그에게 쓸 에너지 말고도 매일 매일 홈스쿨링을 해주고 놀아줘야 하는 기운 찬 7세 삼식이 한 명이 더 있는데, 그는 자꾸 잊는 모양이다.


(아물론, 남편은 최근의 이런 일 외엔 굉장히 배울 점도 많고 의지가 되어 주는 고마운 사람이다! 내 베프)



+

게다가 해외에 나와 있다는 핑계로 세입자 관리를 잘 챙기지 못했고, 계약 만기가 임박해서 재계약을 하기로 구두로 약속했던 세입자들은, 계약서 사인본을 회신해주지 않은채 일방적으로 이사를 나가겠다고 통보해버렸다. 공사할 때부터 원격으로 일을 진행시키다보니 현장을 면밀히 볼 수 없었고, 세입자들이 지내는 동안 자질구레한 문제들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비가 오면 바닥에 물이 새고, 주차장 바닥이 패이는 등 잊을만하면 카톡으로 전송되어 지는 건물 하자 사진들. 그때마다 현장으로 바로 달려갈 수 없는 상황이 남편과 나의 발을 동동 구르게 했다. 세입자가 나간 이 참에 손을 보면 좋으련만, 하필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기도 위험한 상황이다.


이 일이 터지고 나서 한 동안 우리의 유행어는 "아~ 어떡하지?" 였다. 어쩌긴! 하나씩 할 일을 제거해냐가면 될것을 속상한 맘에 한탄을 늘어놓는 것이 습관이 되버렸다. 월세를 받아 충당하던 한국의 보험료 등 지출문제도 한숨거리였고, 추가로 공사비가 얼마나 나올지도 모를 일이었다. 변액이며, 주식이며 투자처에 담아 둔 돈들은 밤 낮으로 출렁이는 주가와 함께 우리의 기분도 널을 뛰게 만들었으니, 마음이 평온할 리 없는 날들이었다.




엄마, 나도 의견이 있거든요?


그러는 사이, 엄마 아빠의 감정 기복 틈에서 조용히 숨죽이고 있는 우리 아들. 아빠가 방에 있다 벌컥 문을 열고 나올 때마다 조용히 뭔가 사고를 치고 있던 현장에서, 아빠에게 혼날까봐 날쌔게 어디론가 숨어버리는 아들. 엄마의 가느다랗고 날카로운 정신줄을 용감하게 즈려밟고 '지금 공부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에 대해 아주 비논리적으로 반항해대는 아들!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보면 나는 또 폭풍처럼 그 작은 아이에게 내 화를 쏟아붓고 있고, 그러고도 나서도 마음이 진정되지 않아 어떻게 하면 이 거지같은 기분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머리를 쥐고 한숨을 몰아 쉬곤 했다. 지금의 이런 본능에 충실한 무책임한 행동들이 나중에 사춘기가된 아이로부터 그대로 돌려 받을 것이란걸 예감하면서도.


대부분의 엄마들이 그러하듯, 아이가 귀여운 얼굴을 하고 잠이 들면 동네방네 고요한 회개시간이 찾아오고... 우울함의 정점을 찍어던 어젯 밤, 잠자기 전 마셨던 맥주 한캔이 나의 숙면을 방해해, 잠든지 고작 두 시간 만에 눈을 번쩍 뜨이게 하는 처벌이 내려졌으나, 무시하고 누워서 잠을 다시 시도해봤다. 실패다. 꼬르르 잠이 들려다가 지난 며칠 동안 시달린 무기력함의 원인이 문득 문득 생각나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이럴바에 글이나 쓰자 싶어 남편의 책상에 앉아 그간의 스트레스를 쏟아 붓듯 다다다 타자를 치고 있다. 여기 이 백지 공간만큼은 내 얘기를 끊거나 판단하지 않고 그저 들어주기만 하니까.



+

제 아무리 살을 맞대고 사는 가족이라도 서로간에 지켜야 할 물리적인 거리는 필요한 법인데,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움직임도 없이 한 공간에 있는 생활이라니! 듣지 않아도 될 한숨 소리, 걱정 소리, 반항 소리를 듣는 빈도가 늘어나다보니 마음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갈 수가 없는 거다. 행복한 소리로 채워 이겨내도 모자랄 시국에, 우린 눈만 마주치면 그 쓸데 없는 유행어를 읊어대고 있었으니 서서히 황폐한 마음만 남아 있는 거다. 우린 함께 있을 때 시너지가 나는 가족일 수는 없는 걸까. 그러려면 일단 마음이 안정되야 하는데, 마음 편할리 없는 외부 상황을 아예 차단하고 살 수도 없는 노릇이고..그럼 어떻게 하면 마음을 다스릴 수 있을까 생각해본다. 내 마음도 내 마음이지만, 나날이 눈치가 늘어난 아이에게 어서 천진하게 편안히 뒹굴며 놀만한 집 분위기를 만들어줘야 겠다.


1. 그날 공부할 양은 아이 스스로 정하게 할 것

2. (이미 백번 넘게 다짐했지만) 큰 소리 내지 않을 것

3. 눈만 마주치면 웃어줄 것

4. 햇볕이 드는 자리에서 명상할 것

5. 결론 없는 고민 나누지 말것. 스스로의 고민은 해결책을 찾은 후에 얘기할 것.

6. 글을 꾸준히 쓸 것. 소리없이 다 받아주는 나의 유일한 공간!


또 하나,

당분간 들려오는 부정적인 이야기에 공감능력은 발휘하지 않기로 한다. 그게 내 마음을 회복하고 보호하는 최선의 길인듯 하다.



+

그리고 조금은 희망적으로 글을 마쳐보기로 한다.


기운찬 아침이여 빨리 오렴!!

날이 밝으면 지금 이 마음 가득 안고, 나의 애틋한 삼식이들에게 빅허그를 날려줄테니.

한 바탕 혼이 난 아들이 건네주고 간 편지. 엄마가 더 미연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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