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_경단녀에세이
얼마만에 다시 글을 쓰는지 모르겠다. 반년쯤 되었나... 나는 글을 쓰는 동안 스스로 치유하고 다시 살아갈 힘을 얻곤 하는데, 그런 내가 글 쓰는 생활을 놓고 살았으니 그만큼 정리되지 못한 마음도 여기저기 흩어져 한 동안은 그 많은 생각들에 거의 압사 지경이었다.
중국에서 정이 든 인연들과 헤어지고 낯선 곳으로 옮겨와 또 어찌어찌 터를 잡고, 아이 유치원 적응을 잘 시키고 나니 밀려드는 건강문제와 우울함 때문에 혼자 있을땐 두문불출하며 여러가지 생각에 잠겨 있곤 했다. 그 동안 했던 주된 일은 아이와 남편의 빠른 현지 적응을 위해 옆에서 돕는 일, 그리고 영어공부.
나는 사람으로부터 에너지를 받고, 뭔가 일을 리드하고 성취하면서 살아있는 느낌을 받는 기질을 타고 났다. 내 생각과 달리 나는 그리 정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자고로 '가시나'는 얌전하고 조신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자라서인지, 아니면 생김새가 어딘가 진지하기 때문인지, 늘 조용할 것 같다는 평(?)을 받아 왔고, 나 조차도 그렇게 되기 위해 내 안의 똘끼를 억누르며 살아왔다. 정작 내가 이런 기질을 가지고 있다는걸 서른 중반이 되어서야 알게 됐지만, 아무튼 나는 집에서 꽁냥꽁냥 살림하고 요리하는 걸 즐기는 사람이 못된다. 그런 내가 아무 일도 벌이지 않고 정반대의 삶을 살고 있자니 꿈을 잃어버린 노인과 같은 정신상태가 된것만 같다. 게다가 허리디스크까지 재발하고 나니 몸도 마음도 늙어버린 듯한 기분이었다.
그러던 중 지난주 가족들이 다녀갔고, 조금이나마 숨통이 트이는 듯 하다. 그 약간의 기운을 발판 삼아 이제 좀 정신을 차려야겠다.
목표를 잃어버린 삶, 시작도 전에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인연, 한 없이 늘어지기만 하는 시간들. 이런 순간에 내가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것은 그저 공부뿐이다. 그 동안 소리드림 인강으로 집에서만 공부했는데, 이젠 비어있는 이 영혼을 가지고 무작정 밖으로 한번 나가보려 한다.
돈 걱정, 시간 걱정 하지 말고 그냥 한번 질러보자. 베트남어가 그렇게 어렵다며 나를 말리고 싶어 하는 주변인들의 애정 어린 잔소리를 무시하기로 했다. 호치민 중심가에 있는 인사대학교에 가서 베트남어 수업을 끊고, 사람을 만나고, 북적이는 도시에서 한 가운데서 오토바이 소음을 들으며 기운을 얻고, 그 복잡한 가운데 섞여 흘러 가는대로 살아보기로. 그곳에 가는 이유가 단지 베트남어 습득만이 아님을 잊지 말고, 제발 열심히 하지 말고, 그저 그 낯선 환경에 나 홀로 던져져 성장해보기로.
무의미하게 보내고 있는 울컥한 나의 하루 하루를 다시 감사한 마음으로, 다시 즐기며 살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