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촌 6개월 차, 지방에서 1인사업을 하며 깨달은 점 3가지
눈 떠보니 연말이라는 게, 점점 빠르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1년 후에 서울을 떠나야겠다, 호기롭게 다짐했던 그 청년은 결국 서울을 떠났다.
여러 차례 브런치에 글을 쓰고 싶었는데, 초반 3개월은 너무 바빴고.
이후 3개월은 현실에 때려 맞아 일어나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그래도 2025년에 중간 소식을 적을 수 있어 감사할 따름.
퇴사의 결심은 2024년 말에 했지만 갑작스러운 전세*기로 멘탈이 흔들려 암흑길을 걸었고
2025년 4월 더 이상 미루면 안 된다는 생각에 퇴사를 했다.
한 달 정도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6월에 전북 완주군 고산으로 내려왔으니, 현재 귀촌 6개월 차라고 볼 수 있다.
6개월간 아버지가 하시던 우유 요거트 가게를 리모델링하고 재계약을 하고.
(일을 같이 하다가 가족의 연을 끊을 뻔했다.)
서리태 두유 요거트 신상품을 개발하고, 론칭하고.
두 번째 신상품인 유자맛을 론칭하고, 마케팅을 했다.
그리고 지금 행복하냐고? 반반의 마음이다.
드라마 멜로가 체질에서 "꽃 길은 비포장도로야"라는 대사처럼 나의 행복도 비포장도로 한가운데에 있다.
사실 이 부분은 "어떤" 분야에서 사업을 하려는지가 중요하다. 그리고 5천만 원이면 정말 정말 작은 돈이긴 하다. 하지만, 돈이 없어서 사업을 못한다는 말은 잘 통하지 않는 크리에이티브의 시대이기도 하니 최소한의 금액 목표를 정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나는 부모님이 기반을 마련한 곳으로 귀촌을 했고, 일을 시작하면 바로 팔릴 수 있는 판로를 가지고 있는 듯했으나~ (예상하지 못한 부분들이 계속해서 등장하는 바람에) 맨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 왔다.
제대로 된 BM(비즈니스 모델) 정립도 안한채 믿을 구석만 믿고서 내려왔다. 경솔했기도 했고, 모든 일들이 계획처럼 흘러갈 것이라는 바보 같은 믿음도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경솔하지 않았다면 내가 시골로 내려올 수 있었을까? 하는 질문에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모든 일은 양면성을 가지고 있고 나는 그 두 가지를 모두 누렸으니.. 불평이나 후회할 사건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꼭 당부하고 싶은 말은. 대한민국은 예창패(예비 창업 패키지)라는 훌륭한 창업 지원 프로그램들이 많이 있으니 무턱대고 사업자등록증 내지 말길.. 그리고 국가 지원 사업은 1~3월에 열리기 시작하니 기틀은 11월부터는 마련해야 한다.
친구나 가족이 없다면 귀촌 생활은 정말 상상보다도 더 심심하다. 차가 없다면 그 반경은 더 줄어들고(거의 생활이 어려움) 맛집 탐방이나 쇼핑, 밤거리 산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귀촌 생활은 정말 비추다. 그럼에도 귀촌 생활을 하고 싶다면 주말 농장이나 촌캉스 정도로 만족하길.
나는 서울에 살면서도 주말에는 집콕하는 시간이 길었던 사람이기 때문에 사람에게서 오는 외로움은 잘 못 느꼈지만. 부모님이 이사를 가고 난 후부터는 2주 가까이 마땅히 대화할 사람도 없이 지내는 일이 다반사가 되며 이것이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구나.. 하는 걸 느끼기 시작했다.
가끔 손님이 오프라인으로 오시면 사람과 대화하는 게 익숙지 않아 말을 더듬기도 한다...
밤 8시만 되어도 길거리에 사람이 없고, 음식점 배달? 새벽배송? 나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가 된다. 맛있는 커피와 빵(!!)은 서울 올라갔을 때만 누릴 수 있게 되는 호사로 변하게 된다.
특히 시골은 겨울이 되면 '농한기'에 접어들면서 거리에 사람이 더 적어지는데. 해도 짧아지며 자연스럽게 집에서 보내는 시간들이 늘어난다. 이때 주변의 이웃이나 친구가 없다면 넷플릭스 보면서 맥주 마시는 시간이 자연스럽게 늘어난다(내 얘기다.)
귀촌을 결심했다면 그 지역의 "귀촌 프로그램"에 적극 참여하는 걸 추천한다.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 혹은 나이대가 비슷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나는 부모님과 함께 지낼 요량으로 내려왔지만... 나를 두고 상경해 버린 부모님 때문에 졸지에 외톨이가 되었다 ㅎ
친구들이나 가족들에게 제일 많았던 질문은 "서울이 그립지 않아?"였다. 그 질문을 받았을 때, 서울이 나에게 갖는 의미에 대해 생각해 봤다.
나에게 서울은 1) 소비와 도파민, 2) 익명성 그리고 혐오, 3) 맛의 집결지로 정리가 되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파트는 "소비"라고 생각한다. 그 많은 문화들을 향유하기 위해서는 결국 "소비"를 해야만 한다.
<시골에서의 소비>
시골에서는 서울만큼 돈을 쓸 "일"이 없다. 밥 값도 저렴한 펀이지만, 그마저도 잘 안 하게 되는 이유는 늦게까지 하는 식당이 없다(고깃집이나 치킨집?). 지역 마트 혹은 시장에서 제철 재료들을 저렴하게 사기도 용이하고, 농사짓는 분들에게 선물 받는 일도 빈번해서 자연스럽게 요리를 하게 된다.(나도 이런 내가 놀랍다)
무엇보다 그런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함께 소비를 하지 않는 분위기가 된다. 예를 들면 보통 모임은 포틀럭파티를 하지, 브런치 카페에 가서 값비싼 커피를 사 먹는 맛집 모임은 안 한다.(서울보다 맛이 없으니까 돈을 쓸 맛이 줄어드는 걸지도!)
<시골에서의 익명성>
내가 가장 두려워했던 부분이기도 하다. 익명성과 다양성을 존중받기 힘들다 생각한 것. 실제로 관계가 좁기 때문에 건너 건너 다 아는 사람들이고 일부러 뒷말이 나올까 봐 나를 내비치지 않는 선택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내가 사는 완주의 특성일 수도 있지만) 생각보다도 열린 마음으로 나를 받아들여주는 어른들과 사람들이 있다. 실제로 주민 단톡방에서는 싸움 비슷한 고성이 오가기도 하지만 그 말들을 막지는 않는다. 자유롭게 소통하는 분위기를 준다고 할까.
하나의 잘못으로 인해 구덩이로 파묻어버리는 그런 선동은 생각보다 자주 일어나진 않는다.
무엇보다도 내려와서 대충 입고 맨날 같은 옷을 입고 다녀도 뭐라고 하는 사람들이 없다. 외적인 관리에 있어서는 확실히 남의 눈치를 보는 게 덜하게 되었다.
<계절의 변화, 오토바이 소리 없는 밤>
제일 좋은 파트다. 시골에 내려와서는 계절의 변화가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마트에만 가도. 아침에 산책만 가도. 해가 짧아지고 온도가 떨어지고, 낙엽이 물들고.. 하는 일련의 변화들이 공기로, 향으로, 눈으로 느껴진다.
장날에 할머니들이 가지고 나오신 바구니만 봐도 지금 수확하는 작물이 뭔지도 한눈에 알 수 있다.
특히 밤에 배달 오토바이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게 얼마나 좋은지! 9시만 돼도 고요한 밤이 찾아와서 매일 저녁 멍하니 하늘을 보는 게 일과가 되었다.
생각보다도 자연에서 위로를 많이 받고 있는 요즘이다.
마무리를 하며
주절주절 길게 이야기했지만 이 글에서 50%의 행복을 얘기했다면 나머지 50%의 불행은 시작도 못했다.
시골에서 벌어먹고 살기란... 생각보다도 더 치열하고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요즘 나는 "생존"을 고민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시골 자립 프로젝트라고 홀로 명명하였는데, 과연 2026년 나는 생존을 할 수 있을지.
혹은 현실에 순응하고 다시 서울로 돌아가게 될지.
알 수 없지만 최선을 다해보는 수밖에.
이번에는 기필코 연재를 해보기로 마음을 먹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