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 한 그릇 ᆢ국수
창가에 앉아 하염없이 내리는 눈을 바라보다
불현듯 떠오른 국수 한 그릇ᆢ
국수는 그렇다 미리 먹고 싶은 음식이 아니고
불쑥 막 먹고 싶어 진다
내 먼 기억 속의 국수 이야기는 눈 속에 묻혀있던 항아리 속에서부터 시작된다
우리 집은 간장 국수 김치말이 국수 싱건지 국수
동치미국수 미역국수 고기국수 해물 털래기 국수
이렇게 다양한 국수들을 해 먹었다
오늘처럼 눈이 많이 오는 날에는 분가루가 당기는 법
비 오면 부침개를 부쳐먹고 눈이 오면 국수를 훌훌 말아먹는다
이런 구진 날에는 누군가가 찾아와 주어도 좋다
혼자 뒹굴거리다가 누군가 와주면 이내 꿈지럭거릴
이유가 생긴다
반찬 없이도 먹을 수 있는 짭조름한 간장 국수도 좋겠고
김치 쫑쫑 썰어 참기름 툭치고 깨소금 쿵쿵 빠서 쓱쓱
비빈 국수도 좋겠다
국수중에는 삶아서 헹궈내고 국물에 말거나 비비는
건진국수 방법이 있고 ᆢ
해물이나 김칫국 미역국에 마른국수를 그냥 넣고
끓이는 털래기 국수가 있다
난 미역 넣고 끓이는 미역 털래기를 좋아하는데
참묘 한 맛이 난다ᆢ
분기가 배어 나와 끈적한 국물이 왠지 부드럽게 목을 타고 넘어간다
어느덧 끈끈한 국물이 넘어간 목을
소주 한잔으로 깔끔하게 정리도 할 줄 아는 나를 만난다
어느새 이런 국수를 만들다 보면 술 한잔이 간절해지는 ᆢ그런 나이가 되었다는 슬픈 이야기ᆢ
나이를 먹어서 슬픈 게 아니다
인생의 맛을 알아서 슬픈 것이다
미역 털레기를 아주 잘 끓이는 내 기억에 오랫동안 자리하고 있는 그런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이 다시는 함께할 수 없기에 나의 국수 이야기는
항상 아프고 아프다 ᆢ
그래서 국수를 먹으면 언제나 목이 메고
잘 체한다 ᆢ그래도 나는 또 국수를 찾고
꾸역꾸역 국수를 넘기고 아픈 기억을 더듬는다
# 나의 처음을 알리는 음식ᆢ국수
우리네 첫 생일 돌잔치 ᆢ
아기가 태어나 조심조심 쥐면 터질세라 불면 날아갈 듯 이쁘게 일 년을 무사히 살아냈다는 알림 ᆢ첫돌
그 첫돌에 우리는 온 가족이 아기 의무병 장수를 기원하는 맘으로 정성을 다해 국수를 누르고 잔치를
한다
지금이야 건조법도 있고 냉장냉동까지 다양 해국수가 흔하지만 예전에는 평양집이던 우리 집은 국수를 눌러먹었다
우리 집은 설 대목을 앞둔 명절이나 잔치를 준비할 때면 메밀묵을 쑤고 두부를 만들고 분틀에 국수를 누르는 일들을 척척해내었더랬다
내 어릴 적 내 동무 같았던 우리 집 수자 언니 ᆢ
수자 언니는 전쟁고아로 우리 집안 어르신들께서 피난 내려올 때 할아버지가 거두어 함께
데려온 언니다 ᆢ
수자 언니는 나이가 많다 내가 어릴 때도 수자 언니는
내 친구였고 내가 컷을 때도 수자 언니는 내 친구였다
수자 언니는 내가 태어나고 클 때까지 나를 돌봐준 언니다 언니는 아버지와 아버지 형제들과도 비슷한 나이였지만 마음이 함께 성장하지는 못했나 보다
심지어 내가 태어나 성장하는 동안도 성장하지 못했으니 ᆢ그래서인지 골목길에 나서면 아이들에게 수자 언니는 금방 공격 대상이 되고 만다 늘 그렇게 당하고 있는 수자 언니를 지켜야 했기에
수자 언니 덕에 나는 아주 씩씩한 골목대장으로 성장했다 어릴 때 남자아이처럼 자라던 내게
수자 언니의 등은 참 따뜻하고 편했다
울 엄마가 자꾸 업어서 내다리 벌어지면 미스코리아(이건 그냥 순전히 울 엄마 생각) 못 나간다고
그리 야단을 쳐도 수자 언니는 나를 늘 등에 달고 다녔다 ᆢ오래된 사진 속의 수자 언니의 등에는
항상 내가 붙어있었다
어느새 커버린 나는 학교 다녀오는 길에 항상 기다리고 있던 수자 언니가 귀찮아지기 시작했다
요리조리 도망 다니는 바람에 ᆢ언니를 저녁나절까지
학교 앞에 기다리게도 했다
결국에 수자 언니를 데리러 가는 것도 내일이어서
그건 포기했다 ᆢ
어느 날 학교 앞에 수자 언니는 없었다
집으로 막 뛰어와보니 ᆢ목발을 짚은 젊은 남자가 수자 언니와 나란히 앉아 있었다
앞을 못 보는 데다가 다리도 한쪽이 절름발이였던
그 남자는 나이도 훨씬 더 많은 수자 언니와 결혼을
하러 왔단다
수자 언니는 우리 가족 모두가 언니라고 불러서 나도 언니라고 하는 거지 그때 당시 우리 아빠랑
나이가 비슷했다 정확히 자기 나이를 몰라서
우리 아빠랑은 남매처럼 지내고 우리는 언니라고
불렀다
수자 언니는 계속 울기만 했다
할아버지는 좋은 사람이니 가서 행복하게 잘 살라고 했다 ᆢ
난 이때 처음으로 할아버지가 미웠다
수자 언니의 결혼이 정해지고 우리 집 마당에
국수 분틀이 설치되고 고기를 삶고 잔치가 시작되었다
수자 언니는 자기가 시집가는 건데도 계속 나를 업고 국수를 씻어 연신 내입에 말아 넣었다 자기 입에 넣었다를 반복하며 히죽대고 있었다
성숙했던 나는 어린 나이에도 왠지 모를 서러움이
목구멍까지 차오르고 언니를 못 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데리고 도망가야 하나 ᆢ비닐하우스에 있는 우리의 비밀장소에 숨어야 하나
갈등하고 있었다
이내 잔치상이 차려지고 언니는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마당에서 간소한 혼례를 치렀다
첫날밤 소반에 차려진 주안상을 마주하고 ᆢ
수자 언니 그리고 그 남자 그리고 거기 있으면 안 되는
내가 그 방에 있었다
수자 언니는 내가 태어나서부터 그때까지 나를 울 엄마보다 더 많이 끼고 잔 터라 나를 놔주지 않아서
그 밤에 그런 우스운 꼴로 우리는 밤을 자다 깨다 했고
수자 언니는 악을 쓰면 우는 나를 어찌할까 모른 채 발만 동동대다 그 남자가 끌고 온 초록색 자가용을 타고
가버렸다 ᆢ그 초록색 자가용은 지금 생각해 보니
포니 택시였던 것 같았다
수자 언니의 손을 놓친 트라우마 일까 나는 손을 잡는 걸 좋아한다 그래서 누구의 손을 놓치는걸 힘들어한다 ᆢ
수자 언니는 내 첫돌에도 내국수를 삶았고 자기의 결혼식 잔치에도 국수를 삶았다
수자 언니의 국수는 양념을 치기 도전에 맛있다
맹물에 싹싹 씻어 둘둘 말아 내입에 쑤셔 넣고
흘러나온걸 주섬주섬 자기 입에 넣는 모양새란 ᆢ
난 물기 묻은 싱거운 국수를 쭉 빨아들이는 별거 아닌
묘기로 수자 언니가 까르르 웃는 게 좋았던 모양이다
오랜 시간이 흘러 수자 언니는 아기도 낳았다
할아버지는 내 손을 잡고 의정부 시내 나가서 부흥국수공장에 가셔서 국수를 사셨다
국수공장에 2층에 있는 건조실의 국수들은 흰 커튼처럼 뽀얀 빛을 내면서 하늘하늘
흔들리고 있었다
지금은 이전했지만 적산가옥에 있었던
부흥국수는 내 눈에 참 멋진 곳이었다
국수와 미역을 들고 할아버지와의 첫 울산여행을 떠났다 ᆢ
그곳에서 아기 업은 수자 언니와 재회를 하였으나
나 말고 다른 아기를 업은 수자 언니는 낯설었고
싫었다 이때부터인가 나는 참 시샘이 많은 아이였던 것 같다
수자 언니는 연신 나를 조물조물 대고 볼을 비비고 했지만 나는 그아기가 미워 곁을 주지 않았다
수자 언니는 할아버지와 내게 미역국수를 끓여주었다
미역국수는 할아버지가 좋아하는 국수다
어릴 때 미역을 안 먹던 나는 이래저래 골 낼일 투성이었다 ᆢ
그렇게 수자 언니와는 마지막이었다
지금은 미역을 좋아하는 나는 곧잘 수자 언니가 해주던 것처럼 미역국수를 흉내 내곤 하지만 그 맛을 유추해 내기란 어렵고 어렵다
수자 언니의 나이만큼 된 나는 오래된 기억 속의 한 끼로
수자 언니의 미역국수를 꺼내보다 눈물을 한 바가지 쏟아냈다
미역이랑 국수가 있어도 수자 언니가 없으니
다시는 맛볼 수 없는 나의 잃어버린 한 끼
살면서 우리는 수도 없이 많은 식사를 한다
그렇게 많은 밥을 먹으면서 함께한 이들을 하나둘
잊어가고 있다
내 기억 속에 아름답게 남아있는 사람은 몇이나 남을까?
당신의 잃어버린 한 끼는 안녕하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