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아줌마의 마스터셰프 코리아

아줌마의 마셰코 그 후 13년

by 밥티스트

*제2의 인생 이 시작된 2011년 11월 11일 오후


내일은 내 생일이다 혼자 조용히 선물을 기다린다

마스터셰프 코리아 도전!! 합격발표 ~

선물도착 ~꺄 아 드디어 발표 ~~ 서류합격!!

그러나 첩첩산중 3800명 안에 겨우 들었을 뿐이었다

본선 진출을 위해 일단 서울로 가서 인터뷰를 해야 했다


카메라 테스트 겸 인터뷰를 했고 첫날 이중에 400명에 들어야 하며 5:1 압박 면접에서 살아남아야 했다

심장이 터질 것 같고 숨쉬기조차 어려웠다


시골에서 몇 번 서울에 와본 적도 없는 촌 아줌마는

일단 조리복을 입고 높은 요리사모자를 쓰고 프로젝터까지

준비해 온 요리사에게 기 한번 눌리고 각종 트로피와 메달을 걸고 온사람에 게 두 번 5살 때부터 요리를 하고 경희대 수석합격했다는 화려한 이력의 요리대학 학생에게 세 번 눌렸다 그 밖에도 강원도에서 30년 식당을 운영한 고수까지

다섯 명 이 함께 들어가서 면접을 보는데 심장이 밖으로 튀어나와 얼른 주워 주머니에 넣을 지경이었다

함께 따라간 남편이 계속 속삭였다


많은 사람들을 면접해야 해서 새벽까지 이어진다는 소식에

그냥 서울구경 왔다고 생각하고 돌아갈까?

계속 칭얼댔다

다들 요리사나 요리 관련 인 들이잖아 ~

요리사가 아닌 사람은 너뿐인 거 같아 ~

나는 그 소리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어떤 면접을 보는지 예문 도 안 주고 그냥 들어갔다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고 대여섯 명의 심사 위원이

앞에 앉아 있었다

지금은 누구나 아는 강 레오 셰프 김소희 셰프 노희영

고문 님이 그 당시에 앉아 있었다

나는 바짝 졸아서 멋지게 차려입은 요리사들 뒤를

쫄래쫄래 따라 들어갔다

다섯 명 중에 단 한 명을 뽑아 100 명안에 들어가는

첫 관문인 셈이다


박소진 님 하고 누군가 호명했다

그 순간에도 나는 혼자 대뇌이고 있었다

되겠어? 되겠냐고 ㅠㅠ 나는 체념한 체 다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네에 하고 모기소리로 대답했다


그 순간 강레오 셰프님이 박소진 씨 ~ 하고 한 번 더

내 이름을 불렀다

왜 그래요? 떨려요? 하고 물었는데 눈물이 날 거 같았다

나는 떨렸지만 담담히 대답했다

이렇게 요리사들이 많이 오는 요리대회 인지 몰랐어요

너무 기가 죽어서요 했더니

노희영 고문님이

깔깔 웃으면서 요리대회인데 요리사들이 많이

오는 게 당연한 거 아니에요?

했다


김소희 셰프님이 소진 씨는 나이도 많네 세상 산

경력으로 눌러 버려라 하셨다

뭔가 그렇게 말을 걸어 주시니 조금 위안이 되었다

1번부터 자기소개와 자기 요리를 소개하고

종이 뽑기를 해서 거기 쓰여있는 식재료를 말로써 요리 레시피를 만들어 내는 미션을 진행했다

나는 다섯 번째라 앞에서 설명을 잘하는 사람들을

지켜보면서 내 마음의 큰 풍선이 쪼그라들어 탁구공

만해 지는 거 같았다


드디어 내 차례 가 되었다

강 레오 셰프님이 물었다

현재 직업이 헤어 디자이너 시네요?

네 하고 짧게 대답했다

김소희 셰프님이 경상도 사투리와 날카로운 눈빛으로 질문했다

엄마야 뭐 한다고 ~ 겁도 없이 도전했나?

하길래 요리를 좋아하는 사람이면 도전하라고

해서 ~ 하고 마셰코 카피로 대답을 대신했다

노희영 고문님이 잘 왔어요 하고 기를 살려 주셨다

어떤 요리할 거예요? 하는데

나는 뜬금없는 대답을 했다


어릴 적 마당에 큰 장독대가 있었어요

장독대는 제에게 숨바꼭질할 때 숨겨주기도 하고

때로는 열어보면 대봉시 감이 익어가고 있어 몰래

꺼내먹기도 하는 보물창고였어요

어느 날

집안이 기울어 이사를 가야 했는데 집이 작아서

장독대를 두고 간다고 했어요

이사 가는 날 장독대를 두고 가는 게 몹시 아쉬 웠어요

언젠가 저도 그런 장독대를 꼭 만들고 요리를 하는

요리사가 되고 싶은 꿈을 가졌는데 먹고살다 보니

요리사가 못되었다 그래서 이제 요리사가 되어보려고

왔다

했더니 여기는 요리실력을 겨루는 곳이지 요리를

배우는 곳이 아니다 라면서 일침을 가했다


오늘 어떤 요리 설명할 거냐 하길래 요리를 설명할 수

없어서 제가 제일 잘하는 요리를 해왔다

하고는 바리바리 싸 온 보자기를 풀었다


강레오 셰프가 질색을 하며 도로 닫으라고 손을

저었다

나는 무안해서 얼른 보자기를 싸고 들고 나오는데

강레오 셰프님이 음식 보따리는 두고 가셔야죠 했다

나는 웃으면서 보자기를 드렸다


강 레오 셰프님이 웃으면서 통은 담에 닦아서 드릴게요 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합격 힌트였다


새벽에 청주집으로 돌아오는데 차에 타자마자 기절했다

남편이 막 흔들어 깨웠다

갑자기 허기가 밀려들어 근처 24시 해장국집에 가서

평소 잘 먹지도 않던 해장국을 때려 넣었다

하루종일 한 끼도 못 먹었다 남편도 거기서 나눠준 도시락과

간식으로 허기를 달래면서 나를 기렸으니 우리 둘 다

허겁지겁 식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


*인생 2회 차 시작 한 달 후 12월 어느 날


눈이 종아리까지 내렸다

나는 엄마와 동생을 청주로 불러서 부업으로 식당을 했었는데 엄마와 동생이 집으로 돌아간다고 해서

가게를 접어야 했다


산속에 있던 식당은 며칠째 눈은 쌓이고 손님도 없고

재료는 다 버려야 했고 할 수 없이 부동산에 내놨는데

갑자기 가게를 인수한다는 연락이 왔다


하필 이렇게 눈 오는 날 차도 못 올라가는데 가게를 인수하러 온다니 반갑기도 하고 귀찮기도 해서 눈 속을 헤치면서 천천히 가게로 올라가는도 중 올리브티브이인데요

하고 연락이 왔다


1차 인터뷰 미션에 합격했다고 100인 요리 대결에

참가하라고 합격을 알려줬다

진짜 어쩜 이렇게 때마침 가게가 정리되는 날 합격

소식이 온 건지 신기할 따름이다

신나서 눈길을 뛰어 올라가 인수인계를 하고

바로 요리 대회 준비를 했다


*파주 지지향 100인의 요리대회


두둥 ~ 파주 지지향 북 호텔에서 열린

100인의 시그니처 요리 대회

재료 손질부터 완성 후 심사위원 앞에서

프레젠테이션까지 하고 50명 안에 뽑히면

되는 미션인데 정말 대단하게 준비들을 해왔다


목포에서 공수해서 산소를 넣은 팩에 살아있는

낙지를 준비한 사람 마장동에서 새벽에 고기를

공수한 사람 멋진 각종 조리 도구를 준비한 사람

나는 너무 초라하게 장바구니 한 개를 가져갔다


그 와중에 옆에서 여유 있게 맥주를 홀짝거리는

키 큰 남자도 있었다

피부가 하얀 키가 큰 남자는 뭔가 계속 불안해

보였는데 틈틈이 혼자 히죽 거리며 웃기도 하고

혼잣말도 많이 했다

그는 대기실에 난로가 있었는데 너무 춥다면서

스텝에게 정중하게 항의를 하기도 했다


갑자기 옆으로 스르륵 다가와서 반정도 남은

초콜릿을 나한테 건네주며 실려가 아니면

반쯤 남은 초콜릿 일 좀 드려도 될까요?

하면서 내 손에 쥐어 주었다

자기가 벨기에서 왔는데 뭐 가져온 게 없고

벨기에 초콜릿 맛있다고 긴장완화에 도움

될 것 같아요 라면서 긴장은 본인이 더한 거 같아

보였는데 말이다

이분이 나중에 준우승을 한 박준우 셰프다


또 재미있는 분들을 만났는데 이분들 은 훗날

내 인생에서 만난 가장 따뜻한 사람들이 되었다

따님이 참가해서 부모님 두 분과 남편까지

전라도 군산에서 가족이 함께 응원을 오셨는데

대기하는 내내 너무 밝고 명랑한 행복한 가족이었다

나는 아무도 응원해 줄 사람이 없어 혼자 갔다

그 와중에 혼자온 나에게 간식도 챙겨주시고

남편분이 얼마나 긍정적이고 명랑하신 지

나까지 밝은 사람이 되는 것 같았다


참가자 이신 부인분은 음악을 하시는 분인데 맨해튼에서

만나서 결혼하시고 유학생활에 배운 외국음식

솜씨로 언젠가 식당을 하시고 싶다고 하셨다


바로 내 앞 번호셨는데 요리를 마치고 나오셨는데

남편이 들어 올려 안아주고 난리가 아니었다

나도 100번째 마지막 순서라 들어가서 요리 시연을

보였다


심사받으러 들어가니까 강 레오셰프님 김소희 셰프님

노희영 고문님 세명의 심사위원이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오리요리를 했다


김소희 셰프님은

오리손질 하는 걸 비디오로 보고 있었다면서

놀라시고 박수를 쳐주시고

강레오 셰프가

오리를 요리사가 아닌 사람이 그렇게 빠르게

손질하는 걸 보고 놀라서 비디오 판독까지 해봤다면서

놀랐다고 그리고 1차 미션 때 주고 간 통을 오늘 주려고

씻어서 가져왔다면서 갈 때 꼭 가져가시라고 웃으면서

말했다


마지막으로 노희영 고문님이 장독대 스토리 텔링이

인상 적이어서 요리솜씨를 기대한다고 하면서

합격의 상징인 앞치마를 걸어 주셨다

눈물이 펑펑 났다


노희영 고문님이 울지 말고 정신 차리고 다음대회

준비해라 여긴 프로들의 무대다 함부로 덤볐으면

실력으로 승부하라고 덕담해 주셨다


마지막번호라 아무도 없을 줄 알고 나간 대기실에

아까 그 명랑한 가족 분들이 새벽 늦은 시간인데

가지도 않으신 채 나를 응원해 주시려고 기다리고

계셨다


너무나 감동해서 더더욱 눈물이 났다 .

그렇게 그분들과 인연이 되었고 참가자 지윤 씨는

그 후에 탈락했는데도 불구하고 청주에서 서울로

다녀야 하는 기간 동안 둘의 보금자리에 잠자리를

내어주고 레스토랑이나 양식을 잘 모르는 날 위해

양식을 알려주기도 하며 유명셰프의 다이닝 레스토랑을

예약해서 맛있는 밥을 사주기도 하고 아낌없이 진심으로

응원을 해줬다


이분들이 나에게는 최고의 시절인연이 아닌가 싶다

그 후로도 가끔 만나기도 하면서

지금까지도 나와는 좋은 인연을 맺고 있기도 하다

이분들은 그 후 군산에 음미당이라는 특별한 식당을

내고 운영 하며 멋진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그 유쾌 상쾌 통쾌 한 남편분은 훗날 요리가 아닌

히든싱어 박상민 모창으로 1위를 하고 가수 활동을

하시기도 한분이 시다

진짜 멋지고 재밌는 영현 씨 ~ 사랑스러운 아내 지윤 씨

언제나 건강하고 행복하시길 빌어본다


* 이번엔 일산이다 두근두근 ,.

100인에 선발되고 결전에 날이 왔다

연락이 왔다 요리 재료는 필요 없고 몸만 오시면

됩니다


아침 일찍 신나게 달려 일산 컨벤션 센터로 향했다

대형세트 장이 있고 길게 테이블 이 길게 늘어서 있고

멋진 큰 도마 위에는 잔뜩 날이 선 칼이 꽂혀 있었다

각지 도마 앞에 서니 대형 트럭이 스튜디오로

들어와서 양파를 한 트럭 쏟아부어 줬다


미션 시작!!

양파 썰기 대회였다

여기서 20명이 선발되는 미션이 것이었다

첫 번째로 민머리 요리사 김승민 씨한테

그만 썰고 올라가세요 했다

다들 왜 그런가 어리둥절했다


나는 바로 옆에 있었는데 갑자기 김승민 씨

멈추세요 하는데 너무 놀라 내가 손을 베어

피가 철철 났다

다행히 의료진도 철저히 준비되어 있어

바로 지혈하고 다시 장갑을 끼고

양파를 썰었다


이번에는 강레오 셰프님이 두 번째로 나한테 다가와서

박소진 씨 칼 내려놓고 2층으로 올라가세요

했다


노희영고문님이 다가와서 요리사도 아닌데

더 썰어야 하는 거 아냐? 했더니 강레오 셔프가

노희영 고문에게 양파 썬 거 다 들어 보라고 했다

노희영고문이 양파 썬 거를 다 치워버렸다

강레오 셰프가 말했다

5개 썰었는데 물기가 하나도 없지?

우리 레스토랑에 2~3년 차도 처음 오면

이렇게 눌림 없이 날렵하게 못 썰어 더 볼 거 없지

나는 너무 정신이 없어서 당시에는 이게 칭찬인지도

몰랐다


50명이 양파 써는 미션을 하는 동안 미리 뽑힌

김승민 셰프와 나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와이프가 암으로 몸이 아파 걱정이고 가게문을 닫고 와서

생계도 걱정이라며 ~ 세상 고민 없어 보이는 분이신데

내가 스님처럼 민머리길래 농담으로 불교 시냐고

물으니 아버지가 목사님 이 시라고 ᆢ

우리는 그제 서야 좀 편히 깔깔 웃었다


먼 훗날 인 지금 얼마 전 김셰프님의 아내분은 결국

하늘나라로 긴 여행을 떠났다

오랜만에 문자로 고인의 명복을 비는 인사를 주고

받았다

세상만사 참 죽음 앞에서는 허무하고 작기만 하게

느껴진다


*다시 파주지지향으로 ~3개월치 짐 싸서 오세요


20명 미션이 끝나고 마지막 본선 진출자 15명

뽑는 미션이 시작되었다

이번 미션에서는 미스터리 박스가 공개 돈다

의문의 박스를 열어서 있는 재료로 요리를 해서

뽑히는 15인 을 정하고 5명이 집으로 돌아가고

그날저녁 바로 탈락 미션을 해서 두 명도 짐을 가지고

돌아간다

본선 진출자 13 인에게는 지지향 호텔에서

하룻밤을 묵는 특혜를 주고 드디어 자기의 이름이

적힌 앞차마를 수여받는다


두둥 ~ 미스터리 박스를 열고 10분간의 시간 동안

요리레시피를 생각해서 요리를 해야 하는 미션이다

나는 닭이 나와서 녹두전을 부치고 평양 온반을

만들어 합격하고 앞치마를 받았다

합격한 사람들은 웃고 떨어진 분들은 울기도 하며

스튜디오를 아쉽게 떠나갔다


* 내 인생의 최고의 화양연화


파주 지지향 호텔은 티브이가 없이 도서관처럼

책만 가득 찬 호텔이다

밤에 낯선 곳에 나 혼자는 첨이라 심심해서

이날 밤 평생볼 책을 다 본 거 같았다

첫날 새벽 파주 출판 단지를 산책하고

맛있는 아침 식사를 했다

시즌 1은 처음이고 지원을 많이 받아서 그런가

3개월간 최고의 호텔과 숙소 식사를 제공하고

헤어 메이크업 코디 스타일 리스트로 연예인

같은 삶을 살아 보는 경험을 하게 해 주었다


이제 본선 진출자들은 서바이벌 대회도 하면서

별도로 100일간의 이야기라는 미니다큐도 찍었다

태어나서 첨으로 3개월간 카메라 앞에 섰다

연남동 근처에 있는 게스트 하우스도 라는 곳도

그때 첨으로 가봤다

거기서 함께 합숙을 하면서 서로의 요리도 만들어

주면서 방송 촬영을 진행했다


경쟁을 하는 대회였지만 모두 좋은 사람들이 여서

나에게는 대회의 승패 여부와 상관없이 좋은 인연들을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꿈같은 시간들이 지나고 본선 대회를 위해

서울에 있는 레지던스 호텔로 옮겼다


촬영하느라 지치고 두고 온 아기들도 보고 싶고

힘든 시간이었지만 같이 으쌰으쌰 해주는

동생들이 있어서 외로움과 버티며 미션을

계속해나갈 수가 있었다


남편은 평생 첨으로 1학년 어린 딸 머리를 묶어서

회사 데리고 출근했다가 학교 보내고를 3개월 을

했더니 회사 직원들이 혹시 이혼하셨나 하면서

수군 댔다고 한다 1년간 사전준비 하고 비밀리에 진행한

프로젝트라 사전 유출 되면 안 돼서 당시 핸드폰도 다 수거하고 가족과 연락도 힘들어서 그게 참 힘든 시간

이였다


회차를 거듭하면서 동등한 기회를 주기 위해

본선 진출자들에게는 각 분야의 한식 일실 양식 중식

베이커리 분야의 고수들에게 1대 1 요리 클래스를

배울 수 있는 기회와 각 기업의 계열 F&B R&D를

둘러보고 요리를 배울 수 있는 기회도 부여받았다

거기서 중식 셰프님 신계숙 교수님을 만났다

탈락 후에도 인연을 이어가면서 멘토를 해주셨다

너는 나이가 있으니 요리사보다는 요리를 연구하는

요리 연구가로 전향하고 강의를 해 보라고 조언해 주셨다

멘토링해 주신 대로 진짜 나는 요리 연구가로서 준비하고

차근차근 성장했다


셰프님들과도 서로 촬영하고 요리대회를 하면서

정도 많이 들었다

한 명 한 명 떨어지고 헤어짐이 익숙할 때쯤

나도 그날이 오고 말았다


* 모델 장윤주 씨와의 짧은 만남 긴 이별


대회를 앞두고

뜨레 쥬르 본점을 방문하고 맛있는 빵도 먹고

케이크 굽는 쿠킹클래스를 진행했다

생전 처음으로 케이크를 배우고 여러 가지 디저트

를 배웠다

다음날 미션이 다이어트 케이크를 만드는 거였고

나는 장윤주 씨의 혹평으로 탈락했다

탈락 미션으로는 달걀 한 판 수작업 머랭 치기였다

난생처음으로 해보는 미션이 당황스러웠고

결과는 탈락이었다

이층에서 나를 힘껏 응원해 준 동지들이 있어 기뻤다


* 탈락 그러나 끝이 아닌 시작


탈락 미션이 끝나고 참가자들과 제작진의 위로와 함께

후원사 이마트에서 마트 이미지에 맞게

주부 모델이 필요한데 유일한 주부였던 내가

적합하다고 뽑혀서 광고 포스터를 찍으러 왔다고

했다

처음 찍어보는 광고라 쑥스럽지만 재밌게 찍었다

며칠 뒤에는 뚜레쥬르 지면 광고 촬영도 했다

덕분에 탈락의 슬픔도 조금씩 달래지고 있었다

보고픈 우리 아이들도 만나고 마셰코 경험담 이야기로

어느덧 일상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마셰코의 출연으로 이마트 광고지가 전국 카트에

내 얼굴이 붙고 현수막도 걸어주는 바람에 못 보던

친구 지인들에게 전화가 빗발쳤다

티브이 출연으로 소문이 나서

홈플러스 문화센터 강의 도 들어오고

청주 지역 SBS와 KBS에서 인터뷰와 요리 프로 그램

방송도 계속 들어왔다


나는 미용실을 정리하고 요리 스튜디오를 차리고

쿠킹클래스를 열고 요리 연구가 가 되기로 했다

클래스에 오시는 수강생분들의 창업을 도와 드리다가

입소문을 타고 메뉴 개발과 창업 컨설팅을 해주게

되어 지금까지 꾸준하게 창억 컨설팅 일을 하고 있다

내가 개발한 요리들로 가게들을 오픈하시고 성장

하는 모습을 보는 일도 뿌듯하고 좋았다



*내 취미인 요리로 드라마 같은 인생 역전


어느덧 몇 해가 지나고 파티 플래너로 활동할

기회가 생겼다

기업인들 파티에 케이터링 하러 갔었다

정재계 유명인들이 참석하는 프라이빗 파티였다

장소는 특별하게도 성북동 에있는 넥타이 뮤지엄이었다


파티가 끝나고 관장님이 나를 조용히 불렀다

오늘 오신 분들 중에 내가 만든 치킨요리 들이 너무 맛있다면서 따로 식사 대접을 한번 하고 싶다 했다고

레스토랑에 예약 을 하셨다고 하며 초대를 했다


며칠 후 레스토랑..

레스토랑 에는 관장님과 함께 나이가 지긋하신

노신사 분이 계셨다

인사를 나누고 가벼운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 후

헤어졌다


한 달쯤 지난 어느 날 전화가 한통 왔다

여보세요 ~ 여기 제네시스 그룹 회장 비서실인데요

하길래 그냥 뚝 끊었다

당시에 장난전화인 줄 알고 헤헤 ~


다시 한번 전화가 오고 이번에는 직접

윤홍근 회장님이라고 성함을 밝히고 레스토랑에서

함께 식사했던 사람이라고 해서 진짜 깜짝 놀랐다


나는 비비큐가 제네시스 그룹에 계열사인지 스카우트되고

출근을 한 후에야 처음 알았다

회장님은 애정하는 자사 프랜차이즈 가 있다고 그게

"닭 익는 마을"이라고 거기 대표를 제안하셨다

나는 평생 회사를 입사해서 다녀 본 적이 없어 안 되겠다고

한번 고사를 했지만 회장님의 진심 어린 설득에 좋은 대우를 받으면서 입사를 했다


* 내 생에 봄날 첫 회사 생활 시작


그렇게

시골 아줌마의 첫 도시 회사 생활이 시작되었다

청주에서 가락동 본사까지 출퇴근을 하는 나를 위해

기사님을 붙여 주시고 회사 내 빨간 잠바를 꼭 입어야 하는데

싫다고 요청드렸더니 회사 규칙에서도 제외시켜 주셨다

본사 일이 적응되고 현장 근무를 시작 하자 본사 떡볶이 브랜드 사무실을 비워 개인 요리연구실로 내주셨다


임원 취임식 날 비비큐의 대표님을 따로 소개받았다

닭 익는 마을 메뉴 개발 시식회 에도 참석하셨다 비비큐 대표님은 시식하시더니 우리 비비큐의 메뉴 개발 고문을

함께 맡아 주시면 어떻겠냐고 제안 주셔서

비비큐의 메뉴 개발 에도 참여하는 기회가 생겼었다

비비큐 치킨은 이천의 치킨대학이라는 곳에서 연구도 하고 회장님 메뉴 개발 시식도 이뤄지는 세 가원이라는

곳이 있는데 이곳으로도 일주일 두 번씩 출근하기도 했다


진짜 새로운 세상의 경험이었고 지금까지 메뉴개발을

할 수 있는 큰 공부를 한 곳이다

하지만 자유로운 성격의 나에게는 회사생활 이 그렇게 녹녹지 않았고 회장님께 읍소하여 결국 퇴사했다

짧은 회사생활이지만 그곳에서 좋은 인연들을 많이

만들고 퇴사하였다


* 요리연구가 로서의 도약


그렇게 사십 대 불혹의 나이에 시작한 요리연구가,.

우연히 시작한 페이스북으로 새로운 세계를 알게 되고

서울의 호야쿡스라는

요리 스튜디오 대표가 어느 날 나를 만나보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

서울 합정동의 인연이 시작된 곳

배우 서태화 씨의 팝업을 여는 공간으로 초대되었다

현장의 경험도 중요하니 팝업스토어를 다양하게

열어보자는 제안을 해주었다

이날 나는 내 인생에서 의지하고 가장 믿을 수 있는

타인을 처음 만나게 되었다


맨날 전날 속고 사기를 많이 당했던 나였다

그런 나에게 진심으로 조언하고 도와주는 귀한 인연

그렇게 거기서 다양한 요리 연구가의 길을 열어갔다

그녀는 언제나 항상 뒤에서 조용히 나를 도왔다

티브이 촬영도 식당 메뉴 개발도 하고 팝업 스토어도

열었다.

그런 인연으로 나의 음식 세계관이 넓어져 갔고

다양한 사람들과의 교류가 시작되었고 성장했다


* 그래 내 인생이 이렇게 해피엔딩 일리 없지.


이렇게 즐거운 제2의 삶을 시작한 나에게 어느 날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건강검진을 했는데 이상소견이 발견되었다

특이하게도 아무런 지병이 없는데 급성 신장손실로

투석을 하게 되었다

의사도 의아해하면서 아무런 지병도 없이

투석을 하게 되는 경우가 발견된 것이 국내에서 는

세명 째라고 한다

힘든 부탁인데 차트 기부를 좀 해주면 전국의대생들이

보고 임상 시험에 도움이 될 거 갔다고 하며 안타까움도

함께 전했다


죽고 싶었다

제일 먼저 아들과 나이 어린 딸이 가슴에 콕 박혔고

평생 먹고살기 위해 일만 하다가

불혹의 나이가 되어서야 내 인생에 겨우 찾아온 봄날

평생 족쇄 같은 이런 병이 걸리다니 말이다

반딧불처럼 겨우 빛나던 내 인생이 이렇게 끝나는 건가

싶었다


* 세상아 덤벼라 다 맞서 싸워 주마


병실의 창문으로 햇살이 유난을 떨며 부서 쳐 내렸다

입원 일주일째 매일이 죽고 싶었다

혈액 부족으로 수혈을 벌써 삼십 팩이상 했다

이제 내 피보다 남의 피가 더 많이 몸속에 들어찬 거

같았다


그나마 퇴근 후 틈틈이 호야 쿡스 대표 가 들려 나에게 는

큰 위로가 되고 힘이 되어 주었다

입원 한 달 쯤인가 첨으로 시어머니가 문병을 왔다

첫마디가 기가 차다 ~ 니 몸은 네가 관리를 했어야지

애들도 어린데 어쩔 거냐면서 ᆢ 행여라도 애들한테

신장 이식 같은 거 받을 생각 하지도 말라며 하나 있는

대를 이을 귀한 손자라면서 ᆢ이참에 너도 살 좀 빼야 할거 같아서 먹을 거도 안 사 왔다며 ..

당신 아들 내 남편이 니 병수발 로 골병드는 거 봐야 하냐면서 굳이 환자한테 안 해도 될 독설만 뿜고 갔다

왜 오신 걸까?


생각해 보면

도대체 아무 지병이 없는데 만성신부전증 이 생긴 건

날마다 못마땅해하는 나를 향해 뿜어대는 시어머니의

독설 덕분이 아닌가 싶다.


* 우리 아이들 스무 살 될 때까지만 살게 해 주세요


3개월간 병원에서 입원해서 수술하고 투석반응 훈련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이들 돌본다고 단 한 번도 문병을 안 오던

철없고 무심한 남편은 퇴근해서 안방 문을 쓱 열더니 괜찮아? 하고 묻길래 애써 웃으며 응 괜찮아했더니

그래? 그럼 밥 좀 차려줘 그러고는 욕실로 들어간다

내가 죽으면 저런 인간이 애들을 키워야 한다는 게

온갖 서러움으로 북받쳤다

매일 빌고 빌었다 아이들 스무 살 넘을 때까지만 살게

해주세요


*다시 한번 으랏챠챠


호야쿡스 대표가 연락이 왔다

선생님 퇴원했으면 일해야죠? 아무 일 없다는 듯 연락을 했다

내가 어떤지 잘 아니까 힘내게 하려고 일으켜 세워준

고마운 친구다

그렇게 다시 그 친구가 손을 내밀어 주고 더 많은 일들을

투석을 받아가면서 할 수 있었다


나의 첫 한식당 서교동 수작 반상

투석을 하면서 일 년간 장과 김치를 담가 준비하고

직원들을 교육해서 장부터 김치까지 모든 걸

손으로 직접 만드는 식당 수작 반상이라는 한식당을 차렸다

직접 만드니 비용과 품이 많이 들었다

그래도 그걸 알아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가게는 알음알을 입소문을 타고 성장해 나갔다


어느덧 유명인들의 맛집으로 소문나면서

식당보다는 술 마시기 좋은 공간으로서 서교동의

숨은 맛집이 되어갔다


내가 제일 잘하는 이북음식 메뉴인

어복쟁반과 가릿국을 선보이고 이북음식은

아니지만 피난민의 설움이 담긴 서해안 토속음식

게국지를 소개 하면서 스토리가 있는 식당이 되었다


이창ㅇ 감독님부터 김혜ㅇ 님 강동ㅇ 님 전ㅇ현 님

설경ㅇ님 등등 셀 수 없는 수많은 연예인 셀럽 감독님

유명 셰프님 들의 아지트 식당으로 자리 잡으면서 맛집으로

자리 잡고 블루리본을 매해 받으며 성장했다

2년후 재계약을 못해서 아쉽 게도 망원동 시장으로 옮겨

수작반상 마마켓이라는 프리미엄 반찬가게를 하게 되었다

이렇게 투석을 하면서도 행복한 시간을 이어갈 수 있었던 이유는 내게 요리라는 키워드 가 있어서였다


*또다시 한번 으랏챠챠


그렇게 식당을 접고 이번에는 코로나 팬데믹에는 또 한 번

맞으면서 반전 인생이 찾아왔다

식당을 하면서 MBC 뉴스 투데이 지금 이제철이라는 프로그램을4년 정도 했는데 작가님이 작가방에 좋은 평가를 남겨주셔서 코로나 동안에는 식당을 못하는 대신 생생정보통 아침이 좋다 등 방송 촬영을 계속 소개받아

하게 되어 식당 과는 또 다른 요리분야 요리방송 촬영을

많이 촬영하게 되서 요리방송도 척척 하게 되었다


지금 내가 유튜브 나 줌 요리 강의 를 잘할 수 있게 된 계기가

이때 함께 해준 고마운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기도 한다

덕분에 식당을 접은 공백을 이겨낼 수 있었고 방송이나

강의를 들으신 분들의 러브콜로 이어져 서울시 가나다 밥상

롯데박화점 스타필드 같은 곳에서 강의를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지금은 요리를 단지 주방에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 더 내가 좋아하는 식자재 연구를 위하여

전국구로 지자체 6차 산업 농산물 개발 활동 반경을 넓혀

하는 다양하게 푸드콘텐츠 전문 컨설팅 일을 하는 직업을 가지게 되었다

세상은 넓고 요리관련 일들은 너무나 많다

이렇게 나는 병마와 싸우며 소리 없는 성장을 하고 있었다


시골 미용실에서 커트 하고 파마 말다가

우연히 마스터 셰프 코리아라는 광고 방송을 보고

오래 묵혀 낡아 빠질대로 낡아 빠진 꿈 이라는

녀석을 끄집어내어

새로운 인생에 도전한 시골 아줌마

어릴 적 요리사가 되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나이 사십에 쏘아 올린 작은 공하나가 커다란

기구가 되어 그렇게 둥둥 날아올랐다


* 스스로 돕는 자는 그냥 스스로 힘들다


최근 뉴욕과 캘리포니아 외국인 관광객 수업을

하던 중 외국 학생 한 명이 마스터셰프 코리아에서

나를 봤다면서 같이 사진 찍고 싶다며 요청을 했다

외국에서도 방송을 했던 마셰코 시즌1 방송의 위력!!


나도 어느새 까맣게 잊고 있었던 마스터셰프 코리아!!

시즌 4까지 하다가 사라진 프로그램이지만

시골 아줌마에게는 꿈에 도전하게 했고 그로 인해 성장했고 꿈을 멋지게 이뤄준 고마운 프로그램

이였다


몸은 늘고 아프지만 그로 인해 나를 살게 하는 원동력을

만들어 준 시간이었다

그때 내가 도전하지 않았으면 나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었을까?

지금은 투석하느라 3일은 하루 5시간 투석하느라 하루를 다쓰고 아무것도 못한다

일주일 에 삼일만 주어진 나의 소중한 시간 그 삼일을 나는 다른 사람의 일주일처럼 쓰고 있다


여전히 냉담한 남편과 30년간 지치지 않고 나에게

독설을 내뿜는 시엄마 이제는 그만할때도 되었건만.

그 안에서 이 세상 누구 보다 반듯하고 밝고 명랑하게 잘자라준 내 아이들 못난 엄마를 자랑스럽게 생각해 주고

힘든 길을 함께 해주기 위해 둘 다 대학에서 요리 전공을 하고 엄마와 요리사의 길을 함께 같이 걸어 주고 있어서 엄마는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다


아이들 스무 살까지만 살게 해달라고 기도했는데 ..

기도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어느덧 아이들이 졸업 을 하네요

염치없어서 더 살게 해 달라는 기도는 안 할게요

충분히 행복하게 잘살았습니다

조금 더 남은 시간이 주어 진다면 내 인생을 정리하면서

좀 더 세상에 어두운 곳에서 빛나는 일을 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외롭고 힘든 나의 일상을 멈추고 또 다른

삶을 살아갈 수 있게 새로운 세상을 보여준

올리브 티브이 마스터셰프 코리아 시즌1 제작진에게

늦었지만 진심으로 감사 인사 드립니다

그리고 함께했던 보고 싶은 참가자 들 늙은 아줌마

함께 손잡아 끌어주고 모르는 거 알려주고 매 순간이

감동이었고 고마웠어 ᆢ

어디에 있던지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기 바래

인연이라면 바람이 데려다주는 날 한 번쯤

만날 수 있지 않을까 ~~


오랏만에 이름 한번 불러보고 싶네

내게 자상하고 든든했던 동걸이

이것저것 공부 시켜준 문기

모르는 재료 살짝살짝 알려주던 성호

비타민 같았던 막내 아름이

늘 정신없던 외국인 달라스

아픈 손가락 같았던 보아

밝고 씩씩한 지윤 씨 미화 태욱이

진짜 응원 많이 해줬던 동율 씨 승민 씨 준우 씨

함께 한 시간이 오랫동안 내 인생을 빛나게 해 준 나의

시절인연입니다


마스터셰프에 도전했던 시골아줌마의 도전기

13 년치 일기로 남겨 기록해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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