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볍지만 쓸모 있는 인문학 브로슈어

[서평] 역사의 쓸모 / 최태성 / 다산초당 / 인문교양

by 모모오빠

대중에게 친숙한 인기강사이며 역사 인문학 길잡이로 활약하고 있는 최태성 선생(이하 저자)의 저서 ≪역사의 쓸모≫를 읽었다.


“자유롭고 떳떳한 삶을 위한 22가지 통찰”이라는 부제가 달린 이 책은 ‘역사’라는 어젠다를 어떻게 읽을 것인지, 또한 오늘의 삶 속에서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 제시하는 실용서이며 해설서다.
책의 <들어가는 글>에서부터 본문을 관통해 <나오는 글>에 이르기까지 독자들에게 역사를 보다 쉽고 재미있게 이해시키고자 하는 저자의 집필 의도와 열의가 짙게 배어 있다. 경어체 서술을 선택한 이유 또한 짐작이 된다.
제1장 <쓸데없어 보이는 것의 쓸모> 제2장 <역사가 내게 가르쳐준 것들> 제3장 <한 번의 인생, 어떻게 살 것인가> 제4장 <인생의 답을 찾으려는 사람들에게>로 구성된 이 책은 연대기적 사건의 나열이 아닌 역사 속 인물들의 생각과 몸짓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한국사와 세계사를 넘나들며 다양한 유형의 역사 속 인물들이 우리에게 남겨준 삶의 지혜와 가치에 대해 전하고 있다.
또한 저자는 일선 교사로, 역사 인문학 강사로 활동하며 있었던 에피소드와 역사를 공부하며 느끼고 깨달았던 자신의 경험에 대해서도 공유하며 독자들과의 거리를 좁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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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제1장 <쓸데없어 보이는 것의 쓸모>에서 작가는 우리는 왜 역사를 배워야 하는가, 역사로부터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라는 화두를 던진다. 그리고 버려진 이야기들을 수집해 엮은 일연 스님의 ≪삼국유사≫가 후세에게 무한한 영감과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다는 사실과 비극적 최후가 불 보듯 뻔한 상황에서 두려움을 안고 싸운 동학농민군의 항전, 18년의 유배 기간 동안 500여 권의 책을 쓴 정약용의 분투를 거론하며 역사의 다른 이름이 ‘희망’이라는 것을 주지 시킨다. 험준한 세상과 고단한 삶 가운데서 우리가 결코 놓아서는 안 될 그 희망을 발견하기 위해 역사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제2장 <역사가 내게 가르쳐준 것들>은 역사의 교훈을 되새기는 내용들로 채워져 있다.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황룡사 9층 목탑’이라는 상징물을 지어 올려 백성들에게 희망과 비전을 제시하고자 했던 신라 선덕여왕. 80만 거란군의 침략에 맞서 그들의 속내를 간파하고 협상을 통해 압록강 동쪽 강동 6주의 영토를 수복收復한 서희. 자신의 역량을 과신하고 국제 정세를 읽지 못해 고구려 멸망의 단초가 되어버린 연개소문. 오만과 무지에 빠져 600만 명의 인구, 8만 병력을 갖고도 피사로(Francisco Pizarro)가 거느린 180명에게 정복당한 잉카제국. 기존의 기술과 도구를 혁신적으로 응용해 인류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구덴베르크(Johannes Gutenberg)의 인쇄기. 한글 창제의 원리이자 동력, 결과로까지 이어진 세종대왕의 민본사상民本思想 등을 통해 역사가 가르쳐 주는 혁신, 성찰, 창조, 협상, 공감, 합리, 소통의 의미를 되짚고 있다.
3장 <한 번의 인생, 어떻게 살 것인가>는 뜨거운 신념으로 불꽃같은 삶을 살다 간 다섯 인물에 대한 고찰이다. 부조리한 세상과 신분의 벽 앞에 굴하지 않고, 새로운 세상을 설계한 정도전과 장보고. 백성의 고단함을 덜고자 대동법에 일생을 바친 김육. 개인의 영달과 안위를 버리고 대의를 택한 박상진과 이회영의 삶을 구술하는 목소리는 담담하지만 그 울림은 결코 가볍지 않다.
이 장을 통해 저자는 독자들에게 인기 스타처럼 떠오르는 동시대 인물 대신 역사적 인물을 롤모델로 삼는 것은 어떻겠냐고 권한다. 그 같은 제언에는 또 다른 의미가 함께 내포되어 있는 듯하다. 개인의 성공과 행복이 절대 우선시되는 시대이지만 그래도 가끔은 국가와 사회,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세상과 공동의 가치를 돌아보자는 것이다.
제4장의 제목은 <인생의 답을 찾으려는 사람들에게>이다. 어떠한 외풍에도 흔들리지 않고 확고한 자아정체성을 확립해 떳떳한 삶을 살았던 이원익과 최익. 남존여비와 가부장제로 뒤덮인 세상에 저항한 어우동과 나혜석. 조선 현종 조의 예송논쟁禮訟論爭 등을 통해 개인의 삶과 오늘의 시대상을 되돌아보자는 제언을 담고 있다. 또한 작가는 대한민국의 건국 과정과 헌법 정신에 대해 설명하며, 민주공화국 주권자들에게 요구되는 시민의식에 관한 당부의 말도 덧붙이고 있다.
이상 4장의 챕터에 담긴, 22가지의 고찰을 통해 저자는 산적한 현실의 문제를 풀어갈 수 있는 실마리 그리고 내일의 문을 여는 열쇠를 역사에서 찾을 수 있다고 전한다. 또한 역사란 인간과 세상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 인문학이며, 단단하고 떳떳한 자아를 성취하기 위한 주춧돌로 쓸모 있다는 사실을 주지 시키고 있다.


역사에 대한 심플하면서도 진지한 사유를 온화한 문체로 풀어쓴 최태성 선생의 저서 ≪역사의 쓸모≫는 인문학이 낯선 이들이나 학생 청소년들도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무엇보다 단편적 지식의 전달이 아닌 인문학에 대한 유연한 접근법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 이 책의 가장 큰 가치가 아닐까 싶다.
반면 아쉬운 점도 적지 않다. 역사적 장면과 인물에 대한 나이브한 해석과 훈시訓示에 치우친 해설은 보다 깊이 있고 신선한 역사 배움의 기회를 찾아 책을 구매한 이들을 허탈하게 만든다.
자유롭고 떳떳한 22가지 통찰이라는 부제와 이를 명증하기 위해 제시된 역사의 부합성에 대해서도 이론의 여지가 충분하다. 이를테면, 신라 황룡사 9층 목탑이 지배층에게는 비전이었을지 모르나 당시 백성들에게는 가혹한 착취였을 것이다. 토목이야말로 민중 유린蹂躪의 역사라고, 나는 생각한다. 잉카제국의 멸망에 관해서는 태양의 신을 숭배해 온 아타우알파(Atahualpa) 왕과 잉카인들의 무지보다 전 아메리카 대륙에 걸쳐 자행된 원주민 학살과 문명파괴, 그 야만의 역사를 주시하는 것이 먼저가 아닐까.
여느 에세이나 자기개발서를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문장들도 여럿 보인다. 이 책의 크고 작은 결점들은 저자의 역량 때문이 아니라 전적으로 책을 읽어볼 독자, 더 정확히 말해 소비자를 지나치게 의식한 탓이 아닐까 싶다.


아쉽다. 20여 년 전에도 최태성 선생 같은 길잡이들이 있었다면, ≪역사의 쓸모≫처럼 쉽고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역사 관련 서적이 많았다면 오늘의 나의 무지도 조금 덜 했을지 모른다.
그래도 한국사와 세계사라는 내신 전용 교과목을 접하기 이전에 역사에 흥미를 느낄 수 있었던 것이 천운이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 시작은 이순신과 삼국지 정도였던 것 같다. 거창한 이유는 단 1도 없었다. 그저 옛날 옛적 실존 했다던 이들의 장쾌한 영웅담이 그 어떤 만화나 영화보다 기막힌 판타지였다. 기이한 모양의 한자들을 물어 가며, 학업이나 생계와도 전혀 무관하게 역사라는 판타지를 유쾌히 섭렵했다. 그리고 최근에야 나는 이 이 판타지의 다른 이름이‘인문학’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여전히 사람과 세상 이치에 대해 한 치도 알지 못하니 더 많은 역사책을 찾아 읽고, 인문학을 공부해야 한다. 영영 깨우치지 못한다 해도 아쉬울 것은 없다. 어제의 세상, 이제의 나로부터 그저 한 걸음 더 내 디딜 수 있으면 그것으로 족하다.


[읽어주고 싶은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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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군은 옷 속에 부적을 붙였다고 해요. 그 부적을 붙이면 총알이 피해간다고 믿었대요. 정말로 그렇게 믿었을까요? 아니요. 당연히 믿지 않았을 겁니다. 너무 무서우니까, 무서워서 한 발짝 떼기도 힘드니까 붙였던 거예요. 종잇조각 하나지만, 아무 소용도 없는 걸 알지만, 그거라도 붙여야 한 발짝이라도 뗄 수 있을 것 같으니까 그래서 붙인 것 아닐까요? 부적 이야기를 들으니 마음이 참 짠하더라고요. 이 아무개들은 용감하게 싸운 게 아니에요. 두려워하면서 싸웠어요.
▶ 47P
사람들이 사회의 모순을 깨닫고 문제의식을 공유할 때 세상이 변할 수 있어요. 지식을 쌓고 정보를 나누기 때문에 가능해지는 일입니다.
▶ 114P
성공했다는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제대로 이끌어가지 못하고 도리어 망처버리는 모습을 우리는 종종 보게 됩니다. 이런 일이 생기는 까닭은 그들의 꿈이 ‘명사’였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되느냐가 중요했을 뿐, 어떻게 사느냐에 대한 고민은 없었던 것이죠.
▶ 205P
만약 일제강점기에 외울 게 없다면 그 역사는 어떤 역사입니까? 고작 몇 개의 단체와 몇몇 사람의 이름만 존재한다면 말이죠. 그런 역사는 비겁의 역사입니다. 우리 후손에게 보여주기도 민망한 굴욕의 역사인 것이죠. 외우기 힘들 만큼 수많은 단체와 수많은 독립투사가 있기에 우리 근현대사는 살아 있는 것입니다.
▶ 221P
역사를 공부하면 우리가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맥락이 잡힙니다. 역사에서 인간의 자유는 늘 이기는 방향으로 가고 있어요. 이것이 바로 역사의 수레바퀴예요. 역사를 통해 우리는 사회의 변화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 258P


[이 책의 가독성: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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