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체와 무기체, 인간사에 관한 메타포

[서평] 달과 6펜스 / 윌리엄 서머싯 몸(송 무) / 민음사 / 소설

by 모모오빠

한 편의 소설을 함부로 읽어버린 어린 청년은 영혼의 열병을 앓아야 했다. 일생 아물지 않을 것처럼 지금도 선명한 영혼의 생채기. 윌리엄 서머싯 몸의 소설 ≪달과 6펜스≫를 다시 읽었다.


발표된 지 올해(2019년)로 100년이 되는 이 소설은 참신하고 독창적인 소재, 선명한 주제의식과 서사 전략, 입체적이며 강렬한 캐릭터, 주제와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배경 묘사 등 서머싯 몸의 작가적 역량이 유감없이 발현된 작품이다. 그래서일까. 문학을 전공한 작가 지망생들 중에는 ≪달과 6펜스≫를 인생의 책으로 꼽는 이들이 적지 않은 듯하다.
영국 태생의 작가 서머싯 몸을 전혀 알지 못하거나 소설 ≪달과 6펜스≫를 아직 읽어보지 못한 이들 중에도 이 작품이 후기인상파 거장인 프랑스 화가 폴 고갱(Paul Gauguin)의 이야기라고 알고 있는 이들이 많다. 실제로 서머싯 몸은 남태평양 타히티에서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한 고갱을 모티프로 삼았다. 소설 속 주인공의 스토리는 실제 고갱의 행적과 상당 부분 중첩되기도 한다. 하지만 ≪달과 6펜스≫는 실존 인물의 일생을 다룬 전기傳記가 아니다.
적지 않은 분량의 본 텍스트 역시 독자의 가독력과 인내를 시험한다. 작품을 온전히 탐미하려면 작중 화자인 ‘나’가 찰스 스트릭랜드라는 한 남자의 생애에 대해, 보고 들은 이야기들을 옮겨 전하는 서술에 집중해야 한다. 그 초반부는 다소 지루하고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내 흥미롭고 긴장감 넘치는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다. 대화체가 많기도 하지만 서사의 힘만으로도 충분한 속도감을 만들어내는 텍스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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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작중 작가이기도 한 화자‘나’의 찰스 스트릭랜드라에 대한 주관적인 기술로 전개된다. 화자는 죽은 지 4년 만에 천재화가로 재평가 받은 그의 작품들처럼 찰스 스트릭랜드의 인격과 삶 역시 이해되고 재평가 받을 만한 것이라는 입장을 견지하며 자신이 직접 보고 전해들은 이야기들을 풀어간다.
신예 작가 시절의 ‘나’는 런던에 살며 예술가들과의 교류를 즐기는 중년의 부인 에이미 스트릭랜드를 알게 된다.
그녀의 남편은 유망한 증권 중개인이며 아들과 딸을 두고 있는 전형적인 영국 중상층 가정의 가장이다. 그러한 그가 어느 날 갑자기 한 장의 편지로 일방적인 이별을 통보한 채 가족을 버리고 홀로 파리로 떠나버린다.
에이미 스트릭랜드의 요청으로 그의 남편을 설득하러 파리로 떠난 나는, 정부情婦와 바람이 나서 파렴치한 도피 행각을 벌이고 있을 것이라는 모두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모습의 찰스 스트릭랜드를 만나게 된다. 그 초로의 남자는 그림을 그리겠다는 일념으로 안락한 삶과 가정을 포함한 모든 것을 하루아침에 내던지고 비루하고 고독한 생활을 택한 것이다.
늦은 나이에 제대로 배워본 적도 없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찰스 스트릭랜드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당연히 냉소적이다. 하지만 단 한 사람, 나의 지인이기도 한 더크 스트로브만은 그의 천재성을 찬미하며 조력자를 자초한다. 열병으로 사경을 헤매는 그를 아내인 블란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집으로 들인다.
더크 스트로브의 아내 블란치는 남편의 그림이나 호의에 대해서조차 멸시로 일관하는 오만한 찰스 스트릭랜드에게 반감 그 이상의 불길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를 간호하는 동안 그 불길함은 사랑의 감정으로 치닫게 된다. 이내 남편의 열렬한 사랑을 배반하며 스트릭랜드와 동거하지만 그 충동적 로맨스는 종내 비극으로 끝을 맺는다. 은인인 스트로브나 자신으로 인해 생을 내던진 블란치에 대해서도 스트릭랜드는 조금의 죄책감도 갖지 않는다.
이후 스트릭랜드는 남태평양의 섬 타히티에 정착한다. 태고의 자연을 간직한 그곳에서 원주민 처녀 아타와 결혼해 사내아이를 낳는 한편 자기 예술세계를 구축해 간다.
문명과는 동떨어진, 동시에 그 어떤 속박으로부터도 벗어난 삶을 영위하던 스트릭랜드는 한센병으로 최후를 맞는다. 제대도 된 치료도 받지 못한 채 눈까지 멀어버린 그는 아타와 함께 살았던 오두막의 벽면을 캔버스 삼아 천상의 걸작을 완상하고 생을 마감한다. 그의 유언에 따라 아타는 천재화가의 유작을 오두막과 함께 송두리째 태워버린다.


작품의 주제의식을 너무도 선명히 드러낸‘달과 6펜스’라는 은유가 본문에서는 전혀 언급되지 않는다. 하지만 소설을 읽지 않은 사람조차도 그 뜻하는 바를 얼마쯤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달’은 이상理想, 찰스 스트릭랜드에게는 온 생을 다 바쳐서라도 이르고자 했던 예술 그 자체다. 또한 달은 자연과 영혼을 상징한다. 반면 영국에서 통용되던 최소 화폐 단위인 6펜스는 현실의 세계, 그것을 구축하고 있는 물질과 문명 등 세속적 가치를 가리킨다.
안락한 삶, 가장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방기한 채 자신의 갈망과 자유, 예술혼을 선택하고 그에 합당한 최후를 맞이한 한 남자의 이야기 정도로, 소설 ≪달과 6펜스≫를 정의할 수도 있다.
그런데 야수처럼 강렬한 그래서 너무도 매력적인 한 남자의 이야기를 접한 이들은 그를 이해하고 동경하는 동시에 스스로를 심문하게 될 것이다. 자신의 이상과 가치를 위해서라면 타인의 삶을 훼손시키는 행위들조차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인가.
≪달과 6펜스≫에 관한 리뷰나 서평 중에는 이 같은 ‘도덕률’의 문제에 방점을 두고 있는 것들이 많다. 그것이 틀렸다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20세기에 쓰인 작품을 바라보는 21세기 독자들의 감상치고는 너무 진부한 것이 아닐까.
사실 찰스 스트릭랜드는 혼자만 그렇게 지탄받을 만큼 부도덕한 존재가 아니다. 작가 서머싯 몸이 ≪달과 6펜스≫에 등장하는 다른 주요 인물들에게도 엇비슷한 함량의 부도덕함과 야수성 그리고 순수한 열망과 공허함을 부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설의 등장인물들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해석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먼저, 찰스 스트릭랜드와 17년을 함께 산 아내 에이미. 그녀는 현숙한 아내로서 남편에게 일방적으로 버림받은 가련한 여인이다. 또한 자신의 일과 생활을 찾고, 홀로 아이들을 키워내는 꿋꿋한 여성이다. 하지만 그녀에게서 석연치 않은 점들이 발견된다. 남편이 외도를 한 것이 아니라 순전히 그림을 그리기 위해 가정을 떠났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음에도 그녀는 남편을 이해하거나 돕겠다는 의사는커녕 그대로 단념해버린다. 그녀에게 남편은 안락하고 격조 있었던, 이제까지의 삶을 가능케 했던 수단이었던 것이다. 그 기능과 동력이 상실되었음을 확인한 그녀에게는 남편을 굳이 붙잡아 되돌려 놓아야 할 이유가 없다. 사후 천재화가로 재조명 받은 찰스 스트릭랜드에 대한 에이미의 태도를 통해 그녀의 허영과 위선을 한 번 더 상기하게 된다.
찰스 스트릭랜드의 두 번째 여자가 되는 블란치와 그녀의 남편인 더크 스트로브. 평면적인 캐릭터에 가까운 에이미와 달리 이들은 보다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존재들이며, 주인공 찰스 스트릭랜드와 많은 부분 닮아 있는 그의 분신 혹은 자화상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블란치에게 찰스 스트릭랜드라는 남자는 자기 안의 육체적 관능과 욕망을 일깨운 대상이다. 남편을 삶의 수단 정도로 여겼던 에이미처럼 그녀의 사랑에도 영혼의 교감이나 정서적 유대 따위는 부재하다. 게다가 그녀는 애처가 남편을 헌신짝처럼 저버리는 냉혹한 여자다. 관능을 쫓아 가정을 버린 이 여자에 비하자면 오히려 스트릭랜드는 순수하며 이성적이었던 것이 아닌가. 그는 블란치를 그림의 피사체나 정물, 예술적 영감을 제공하는 뮤즈 정도로 여겼을 뿐 성욕의 대상으로 보지 않았다.
그렇다면 블란치야 말로 허망한 욕망을 쫓아 자기 생을 망쳐버린 불나방 같은 존재로 매도되어야 하는 것일까. 물론 그렇지 않다. 그녀와 남편 더크 스트로브의 부부 관계는 처음부터 정상적인 사랑을 매개로 형성된 것이 아니다. 따라서 그녀에게도 결혼생활은 껍데기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러던 그녀는 한 남자를 통해 내밀한 마음의 울림, 자기 삶의 확신을 -비록 그것이 부도덕한 욕정이라 손가락질 받을지라도- 발견한 것이고 거기에 전적으로 투신한다. 그녀의 음독은 실패한 로맨스 때문이 아니라, 자기 선택의 끝에 잇닿은 허무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블란치라는 인물은 생의 마지막 걸작을 불태워버린 고독한 천재 화가와 닮아 있다.
블란치의 남편 더크 스트로브는 찰스 스트릭랜 만큼이나 비현실적이고 상식 밖의 행위로 일관하고 있는 인물이다. 그는 찰스 스트릭랜드의 삶을 옹호하며 서술하는‘나’와 더불어 작가 서머싯 몸이 추구하는 가치, 즉 심미주의와 예술지상주의적 의도를 극단적으로 드러내는 캐릭터다.
더크 스트로브 역시 화가다. 하지만 그에게는 특별한 천재성이 없다. 그저 얄팍한 재능으로 팔리는 그림만을 그리며 현실에 순응해 살아가는 인물이다. 본인에게는 없는 숭고한 예술혼을 알아보고 동경하던 이 사내는 결국 야수 같은 천재성을 가진 남자와 불같은 사랑에 투신한 여자에게 자신이 가진 전부를 빼앗긴다. 찰스 스트릭랜드에게 버림 받은 블란치의 자살. 그리고 소박한 행복과 안락함이 사라져버린 텅 빈 집에서 마주한 아내의 누드화를 보며 질투와 분노에 휩싸여 울부짖기도 하지만 이내 찰스 스트릭랜드라는 천재 화가가 이룩한 숭엄한 절대 아름다움 앞에 굴복하고 만다.
비참한 지경에 처한 더크 스트로브의 이후 행방은 짤막하게 요약되어 있다. 그는 고향인 네덜란드로 돌아가기로 마음을 궂히고 있다. 심지어 찰스 스트릭랜드에게 영혼의 안식처가 될 수 있는 자기 고향으로 동행할 것을 권한다. 물론, 그 제안은 공허한 메아리가 되어 돌아온다.
네덜란드는 중의적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예술을 포기한 채 그저 조용히 늙어가려는 더크 스트로브의 회한悔恨의 공간인 동시에 비극적 상황 끝에 이루어진 자기 각성, 새로운 예술- 그림이 아닌, 5대째 가업으로 이어진 목공으로 - 세계가 전개될 수 있는 가능성이기도 하다. 그러니 필연적으로 찰스 스트릭랜드는 네덜란드로 동행할 수 없는 것이다. 시작점은 달랐으나 동일한 운명의 평행선에 놓인 두 예술가는 각각 자신만의 캔버스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소설 ≪달과 6펜스≫의 주요 배경이 되는 세 곳. 런던, 파리, 타히티 그 각각의 공간이 함축하고 있는 의미를 짚어볼 필요가 있다. 플롯을 단순하게 재구성해 본다면 이 소설은 결국 런던 > 파리 > 타히티로 이어지는 주인공 찰스 스트릭랜드의 여정인 셈인데, 주목할 것은 세 공간을 거치며 찰스 스트릭랜드가 전혀 다른 캐릭터로 변모해 간다는 것이다.
런던에서의 찰스 스트릭랜드는 평범한 중상층 가장이며 유능한 증권 중개인이었다. 파리에서의 그는 별 볼일 없는 무명의 화가로서 블란치와 더크 스트로브를 만나 갈등을 겪게 된다. 즉 문명의 도시 런던은 평범하고 안락한 삶을, 예술가의 도시 파리는 고뇌와 각성을 의미하는 장소이다.
오랜 방황을 거쳐 생의 마지막 종착지 타히티에서 찰스 스트릭랜드는 육신의 눈이 아닌 영혼의 눈으로 천상의 그림을 그려낸다. 자기 생의 마지막 순간, 한 남자의 일생을 송두리째 전복시켜버린 그 엄청난 예술혼을 실현시킨다. 그리고 그 모든 과업을 완성한 고독한 천재는 끝내 세상과의 화해를 거부한다. 최후의 캔버스였던 오두막을 송두리째 불태워버림으로써 자기모멸과 공허마저 사멸시켜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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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달과 6펜스≫는 현실의 삶을 내던지고 이상에 투신한 어느 예술가의 이야기(예술가소설) 정도로만 읽어도 무방한 텍스트다. 하지만 다시 읽은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나는 작가 서머싯 몸의 진의가 다른 데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그것은 유기체와 무기체. 본능과 도덕. 관능과 이성. 자아와 사회라는, 영원히 불화할 수밖에 없는 두 세계의 충돌로 점철되는 인간사에 관한 메타포가 아닐까.
서머싯 몸의 소설 ≪달과 6펜스≫가 과연 세계 문학사의 걸작으로 꼽힐 만한 작품인가에 대한 재론은 얼마든지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관념적 도덕의 잣대로 이 작품을 판단하는 경솔한 짓은 말아야 한다. 찰스 스트랙랜드는 가소롭다 조소할 것이다, 열망도 없이 껍데기 같은 인생을 살아가는 당신들이 감히 누구를 평하느냐고.


[읽어주고 싶은 문장]

나이든 사람 가운데에는 젊은이들의 괴이한 짓을 흉내내면서 자기네 시대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애써 믿으려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개중에도 제일 혈기왕성한 무리를 따라 힘껏 소리 질러보건만 그 함성은 입 안에서만 공허하게 울릴 뿐이다. 그들은 가버린 청춘의 꿈을 되살릴 수 있을까 하여 눈썹도 그려보고, 분도 발라보고, 화장도 덕지덕지 해보고, 흥겹게 떠들며 놀아보는 가련한 바람둥이 여자들 같다. 지혜로운 이들은 점잖게 자기들의 길을 간다. 그들의 그윽한 미소에는 너그러우면서도 차가운 비웃음이 깃들여 있다.
▶ 17P
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지 않소. 그리지 않고서는 못 배기겠단 말이오. 물에 빠진 사람에게 헤엄을 잘 치고 못 치고가 문제겠소? 우선 헤어나오는 개 중요하지. 그렇지 않으면 빠져 죽어요.
▶ 69P
아름다움이란 예술가가 온갖 영혼의 고통을 겪어가면서 이 세상의 혼돈에서 만들어내는, 경이롭고 신비한 것이야, 그리고 또 그 아름다움을 만들어 냈다고 해서 아무나 그것을 알아보는 것도 아냐. 그것을 알아보자면 예술가가 겪은 과정을 똑같이 겪어보아야 해요. 예술가가 들려주는 건 하나의 멜로디인데, 그것을 우리 가슴속에서 다시 들을 수 있으려면 지식과 감수성과 상상력을 가지고 있어야 해.
▶ 102P
한순간 나는 언뜻 본 것이 있었다. 육체와 결부된 존재로서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위대한 무엇인가를 향해 뜨겁게 타오르는, 고뇌하는 영혼이 그것이었다. 나는 표현할 수 없는 뭔가를 추구하는 혼을 언뜻 보았던 것이다. 나는 내 앞에 서 있는 이 사내, 남루한 옷차림에 코는 커다랗고 눈은 번쩍이며 수염은 붉고 머리칼은 더부룩한 사내를 바라보았다. 이건 겉껍질에 지나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육체를 벗어난 하나의 혼과 대면하고 있었던 것이다.
▶ 207P
스트릭랜드는 최후의 힘을 내어 거기에다 자신의 온 존재를 표현했던 것만 같았다. 그것이 마지막 기회임을 깨닫고 그는 묵묵히 자신이 삶에 대해 알도 있던 모든 것, 자신이 깨달은 모든 것을 그 그림에 표현했음이 틀림없었다. 또한 그는 마침내 거기에서 평온을 발견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자신을 사로잡은 악마를 마침내 몰아내고, 평생을 고통스럽게 준비해 왔던 작품을 완성함으로써 외로움과 괴로움에 지쳐 있던 그의 영혼은 휴식을 찾았을 것이다. 그리고 목적을 이루었으므로 기꺼이 죽음을 맞이하였던 것이 아닐까.
▶ 296P


[이 책의 가독성: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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