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 대한 예의 from 권지은

[서평] 바깥은 여름 / 김애란 / 문학동네 / 소설집

by 모모오빠

김.애.란. 다홍색 꽃잎처럼 발음되는 이 작가의 전작 몇 편을 나는 별다른 감흥 없이 읽었다. 한국문단을 견인할 만한 작가라는 평에 대해서도 수긍이 가지 않았다. 그의 네 번째 소설집 ≪바깥은 여름≫을 읽었다. 그동안의 김애란 오독을 기꺼이 인정하며, 그의 또 다른 서신을 기다린다.

바깥은 여름 a.jpg

소설집 ≪바깥은 여름≫에는 <입동>, <노찬성과 에반>, <건너편>, <침묵의 미래>, <풍경의 쓸모>, <가리는 손>,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등 총 7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표제작은 보이지 않는다. 어떤 의도가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반쯤 열어젖힌 문 밖 혹은 안으로 향하는 여인의 자태 역시 의미심장하다.


소설집의 첫 번째 수록작 <입동>은 경제적으로나 그 밖의 면에서도 대체로 평범해 보이는 부부의 이야기다. 그들은 겨울의 초입, 11월의 어느 자정 도배를 하려고 한다. 부부는 지난봄, 몇십 년간 갚아나가야 할 대출을 끼고 산 실 면적 십칠 평에 지은 지 이십 년 된 아파트에서 소박한 행복을 만들어가려 하고 있었다. 집을 꾸미고, 사람들을 초대하고, 아이와 함께 식탁에 둘러앉아 밥을 먹고, 아이는 글자를 익혀가고, 아이는 어린이집에 다니고, 아이는 그 어린이집에서 사고로 숨진다.

아이를 잃고 얼마 후 작은 소동으로 아파트 주방 벽지가 검붉은 얼룩으로 오염된다. 벽면의 얼룩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결국 새로 도배를 하는 수밖에 없지만 이 또한 여의치 않다. 그렇게 반년 넘게, 겨울이 다가오도록 부부는 검붉은 얼룩의 벽지를 어쩌지 못한다.

그들 부부가 미처 손쓰지 못한 채 견뎌내야 했던 것은 비단 아이를 잃은 슬픔과 고통뿐만이 아니다. 그들의 비극에 대한 사람들의 섣부른 위로 혹은 위선, 차갑고도 잔인한 그 꽃매 같은 시선들을 더욱더 아프게 마주하고 있었다.

결코 관념적이지 않다, 플롯의 난해함도 없다, 단편소설 <입동>은. 그럼에도 쉽게 읽을 수 있는 만만한 텍스트가 아니었다. 짧은 이야기 속으로 너무 깊숙이 빨려 들어갔다. 아이의 잔상을 더듬는 부부의 모습에 감정이 이입되어 내처 읽을 수가 없었다. ‘오십이 개월 영우’ 또래 아이를 둔 부모의 처지라면 이 소설은 굳이 읽지 않아도 좋다고 말하고 싶다. 마음이 심란할 것이다. 나는 그랬다. 그러나 이 소설 <입동>은 ≪바깥은 여름≫이라는 소설집 한 권을 온전히 흡입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관문과도 같다.

읽는 사람의 마음을 잔뜩 헤집어 놓은 그들 부부, 영우 엄마 아빠는 그 어떤 위로나 공감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독자의 감정이입마저 부정하는 듯하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

나는 멍하니 아내 말을 따라 했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

▶ 37P

작가 역시 이들에게 그 어떤 위로의 말도 따듯한 손길도 내밀지 않는다. 벌서듯 두 팔에 도배지를 걸쳐두고, 한기를 느끼며 오들오들 떨고 있는 그(영우 아빠)와 미진(영우 엄마)을 그렇게 놓아둔 채 시선을 옮긴다.


이어 작가의 시선이 닿은 곳에는 어려운 형편에 할머니와 단둘이 살아가는 한 소년이 있다. 소년 찬성은 두 해 전, 아버지를 잃었다. 트럭 기사였고 골육종을 앓고 있던 아버지의 죽음은 끝내 (보험사로부터) 사고로 인정받지 못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얼마 후 찬성은 할머니가 일하는, 동시에 자신이 끼니를 해결해야 하는 휴게소에서 버려진 늙은 유기견을 만난다. 에반이란 이름을 붙인 노견은 아버지의 부재를 대신하듯 소년에게 친구이자 가족이 되어준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긴 시간이 허락되지 않는다. 에반이 죽음 직전에 놓여 있음을 알게 된 찬성은 자기 개를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하고자 한다. 난생처음 아르바이트를 해 어렵게 모은 돈으로 에반을 안락사시켜 줄 요량이었다.

가난하기 때문에, 아버지의 내밀한 죽음 때문에 두려움과 슬픔을 정당하게 내뱉을 수 없었던 소년 찬성에게 또 한 번 가혹한 시험이 찾아든다. 그리고 이번에는 천연한 미성숙, 안타까운 욕망으로 인해 ‘죄책감’을 집어삼키게 된다.

어둠이 내려앉은 고속도로 옆 갓길에 위태롭게 서서 엄습하는 한기와 공포, 그 이상의 육중함 감정에 짓눌리고 있는 어린 소년에게도 작가는 구원의 손길을 내밀지 않는다.

그리고 김애란은 우리 주변 멀지 않은 곳에 있을 법한 아니, 틀림없이 존재하는 그들을 잇달아 목격한다. 노량진 고시원을 배경으로 전개된 한 연인의 이별 <건너편>. 자기 존재의 긍정과 부정 사이에서 고뇌하는 언어(화자) <침묵의 미래>. 인간이라는 모순과 마주한 사내 <풍경의 쓸모>. 일상화된 폭력에 함몰되어 가는 이들을 <가리는 손> 역시나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무심한 듯 지켜만 보고 있다.


작가의 시선이 마지막으로 향한 곳은 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다. 일조량이 적고 스산한 날이 많은 그 먼 도시로 향한, 사실은 어딘가로 정처 없이 부유 중인 한 여자를 쫓아서다.

소설집의 마지막 장을 채우고 있는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의 주인공 명지는 앞서 본 <입동>의 미진(영우 엄마)이나 <노찬성과 에반>의 찬성과 많은 부분 닮아있다. 그들은 모두 자기 생의 한 축을 이루고 있는 존재들을 잃었다. 사고였다. 그런데 주인공의 삶을 송두리째 붕괴시킨 사건, 그 자체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나 의미 부여가 철저히 누락되어 있다. 이 같은 서사 전략은 인간의 생사가 손바닥 뒤집듯 얼렁뚱땅 엇갈려버린 참혹한 현실에 놓인 그들의 고통과 분노, 슬픔을 제대로 봐야겠다는 작가의 의도인 듯하다.

2014년 4월의 대한민국처럼. 갑작스러운 삶의 균열에 대해 정당한 위로를 받지 못하거나 슬픔마저 부정당한 이들이 있다. 아이를 잃은 미진, 아버지를 여읜 찬성처럼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의 명지 역시 그렇다. 남편 죽음의 이유와 의미, 홀로 남겨진 슬픔과 허무를 납득하지도 감내하지도 못하는 그녀는 낯선 시간(시차)과 공간, 과거의 인연과 제 3의 존재(시리siri: 애플 iOS용 소프트웨어로 음성인식 서비스를 제공)에게서 답을 찾고자 시도한다.

-인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요?

-뭐라 드릴 말씀이 없네요.

▶ 238P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되나요?

-어디로 가는 경로 말씀이세요?

▶ 259P

삶과 존재의 좌표를 상실한 명지는 타국의 낯선 도시에서 그 어떤 답도 찾지 못한다. 충동적 로맨스도 진전되지 못한다. 기대했던 시리 역시 마찬가지. 그렇게 쓸쓸히 쫓기듯 귀국한 후 우편함 가득 찬 각종 고지서와 전단지들 사이에서 그토록 찾고 싶었던 의미, 듣고 싶었던 말들과 마주하게 된다.

권지은의 편지였다. ‘권지은’은 어눌한 글씨로 조심스럽게 명지의 안부를 묻고 감사와 위로의 말을 건네고 있다. 혼자라도 끼니를 챙기라는 당부도 함께. 권지은은 명지의 남편이 죽음으로부터 건지고자 했던, 그러나 종내 그마저 죽음으로 이끌고 간 어린 소년의 누나다. 그리고 ‘권卷지은’은 김애란이다.

소설집의 마지막 수록작 <입동>까지 다 읽고 나서야 “바깥은 여름”이라는 표제와 표지 일러스트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다. 작가는 누군가의 고통과 불행, 슬픔에 대해 철저한 타인으로 서 있는 우리의 시선과 언어에 대해 말하고 있다. 숱한 위로의 말과 동정의 몸짓을 할 수 있지만 타인의 괴로움을 전적으로 이해한다는 것, 그 엄동설한 속으로 따라 들어간다는 것은 애초 불가능한 일인 것이다. 인간이란 본래 그런 존재가 아닌가. 그러니 섣불리 나서지 말고 바깥에서, 반대편 계절에 서서 담담히 그들의 추위와 고통, 슬픔을 바라보자는 것이다. 그렇게 그들이 나와 많이 닮은 존재임을 알아가자는 것이,‘책 지은이’의 진의가 아닐까.

한 걸음 더 나아가 작가는 겉치레나 형식, 언어를 덧씌우지 않은 순진무구한 위로, 인간 혹은 생명에 대한 예의 그 원형에 대해서도 묘사하고 있다.

그날 내가 두 돌도 안 된 영우한테 장난으로 “영우야, 오늘 엄마 생일인데 뭐해줄 거야?”하고 물었어. 그랬더니 영우가 어떻게 했는지 알아? 그 말도 못하던 애가 잠시 고민하더니 갑자기 막 손뼉을 치더라고. 영우가 나한테 박수 쳐줬어. 태어났다고……

▶ 37P

-에반, 많이 아프니? 내가 잘 몰라서 미안해.

-……

-있잖아, 에반. 만약에 못 참겠으면…… 나중에 정말 너무너무 힘들면 형한테 꼭 말해. 알았지?

▶ 63P

남편 영정 사진 앞에 우두커니 앉아 있는데 세 살 난 조카가 아장아장 다가왔다. 내 여동생이 낳은 남자아이였다. 조카는 어두운 표정으로 내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그러고는 그 말도 못하는 애가 자기 손에 있던 과자를 내게 쥐어주었다.

▶ 230P


작가의 인간과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 글감을 건져 엮어내는 탁월한 능력은 문체를 통해 더욱 도드라져 보인다. 김애란 소설은 가독성이 좋다. 힘을 주어 짜낸 문장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굳이 미문을 찾아 쓰려한 의도도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무심코 지나칠 수 없는, 손으로 매만져보고 싶은 문장들이 수두룩하다. 단어 하나 부호 하나하나 돌담을 쌓듯 조심스럽게 가져다 놓는 그녀의 문체에서 속 깊은 진정성, 인간에 대한 예의가 느껴진다.

김애란 문학의 이정표가 어디를 향해 있는지 막연하지만 어렴풋이 짐작은 된다. 그의 여정을 재촉하는 성마른 독자,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바깥은 여름 (3).jpg

[읽어주고 싶은 문장]

풍경이, 계절이, 세상이 우리만 빼고 자전하는 듯한. 점점 그 폭을 좁혀 소용돌이를 만든 뒤 위라 가족을 삼키려는 것처럼 보였다. 꽃이 피고 바람이 부는 이유도, 눈이 녹고 새순이 돋는 까닭도 모두 그 때문인 것 같았다. 시간이 누군가를 일방적으로 편드는 듯했다.

▶ 21P

게슴츠레 눈을 떠보니 에반이 자신의 뺨을 핥고 있었다. 두 발을 찬성의 가슴팍에 올리고 마치 작별 인사라도 하는 양 찬성 얼굴에 자기 머리를 비볐다, 에반이 꼬리를 흔들고 배를 보일 때와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찬성은 이상하게 눈물이 나려 했다.

▶ 76P

도화는 노량진이라는 낱말을 발음한 순간 목울대에 묵직한 게 올라오는 걸 느꼈다. 단어 하나에 여러 기억이 섞여 뒤엉키는 걸 알았다. 서울시 동작구 노량진동 안에서 여러 번의 봄과 겨울을 난, 한 번도 제철을 만끽하지 못하고 시들어간 연인의 젊은 얼굴이 떠올랐다.

▶ 117P

살면서 나를 지나간 사람, 내가 경험한 시간, 감내한 감정들이 지금 내 눈빛에 관여하고, 인상에 참여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결코 사라지지 않고 표정의 양식으로, 분위기의 형태로 남아 내장 깊숙한 곳에서 공기처럼 배어 나왔다.

▶ 173P

사람 얼굴을 보려면 자연스레 하늘도 같이 봐야 하는. 아이들을 길러내는 세상의 높낮이가 있었다. 그런데 엄마를 잃고 난 뒤 그 푸른 하늘이 나보다 나이든 이들이 먼저가야 할 곳을 암시한 배경처럼 느껴졌다. 부모와 자식 사이에 영원히 좁혀질 수 없는 시차를 유년 시절 내내 예습한 기분이었다.

▶ 229P

그날 그곳에서 제자를 발견했을 당신 모습이 떠올랐다. 놀란 눈으로 하나의 삶이 다른 삶을 바라보는 얼굴이 그려졌다. 그 순간 남편이 무얼 할 수 있었을까…… 어쩌면 그날, 그 시간, 그곳에선 ‘삶’이 ‘죽음’에 뛰어든 게 아니라, ‘삶’이 ‘삶’에 뛰어든 게 아니었을까.

▶ 266P


[이 책의 가독성: ★★★☆ ]


작가의 이전글쓸모 있을 것 같은 50가지 철학 매뉴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