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레르기가 심해졌다.
허벅지, 목, 종아리 곳곳으로 하루마다 위치가 바뀌면서 나를 괴롭혀왔다.
피부과도 몇 군데 가고, 내과에서 지연성 알레르기 검사도 해보고, 이비인후과에서 mast 검사를 하는 등 모든 알레르기 검사를 해봐도 결국 돌아오는 답은 하나였다. 원인 불명.
간지러움으로 인해 자기 전에는 항상 종아리를 긁으며, 목을 긁어가며 괴롭게 잠에 들곤 했다.
그리고 그때쯤 아빠의 암 소식을 들었다. 간암이었다.
4월 15일.
한동안 봄 날씨가 이어지다가 갑자기 비가 많이 온 날이었다. 우중충한 날씨였다. 곧 다가오는 내 생일을 축하해 주기 위해 친구들이 약속을 잡기 시작했다. 그리고 집에서는 엄마가 "이번 생일은 챙겨주지 못할 것 같은데 어쩌지." 하고 내게 말했다. 나는 아무렇지 않게 상관없다고 답했다. 실제로 그런 것은 아무 상관도 없었다. 중요한 건 그런 것이 아니었으니.
다시 15일 아침.
그 전날, 무슨 검사를 한다며 아빠가 금식을 한다고 들었다. 그런가 보다. 한창 당뇨 진단을 받고 당뇨약을 챙겨 먹으며, 그 좋아하던 술도 줄이고 엄마와 최근 몇 달 동안 걷기 운동에 매진한 아빠였다.
15일 오전.
침대에 누워 빈둥거리고 있는 나에게 엄마 전화가 걸려 왔다. 엄마와 나는 딱히 할 말이 없어도 통화를 나름 자주 하는 사이었기에 대수롭지 않게 받았다. 상근이라 집 근처 동사무소에서 군 복무를 하는 동생과 밥을 먹을 건지에 대한 질문이었다. 그런 소소한 얘기였다. 그리고 엄마는 곧 아빠가 간암일 확률이 90% 이상이라는 말을 건네왔다. 당황했지만, 사실 엄청나게 충격적이고 놀라지는 않았다. 내 입에서는 "그렇게 술을 마셨으니.. 어쩔 수 없죠. 뭐." 하는 식의 차가운 대답이 나왔다. 어쩌면 덤덤하게 말해야 할 것 같아서 그렇게 말했던 것도 같다.
전화를 끊고 잠시 생각했다. 간암. 영화나 드라마에서처럼 의사에게서 암 선고를 받는 우리의 모습이 상상됐다. 그 정도는 아니겠지. 하며 간암을 검색했다. 좋지 않은 문장들과 단어들이 유난히 눈에 띄었다.
생존율 50% 이하.
증상 발견 시 대부분 말기.
대부분 6개월 이내.
수술 성공 후에도 5년 이내 재발 확률 50% 이상.
등등.
갑자기 약간의 두려움이 몰려왔다. 저 사람들 사이에 아빠가 끼게 되면 어쩌지. 그건 안 되는데. 하는 이기적이고 얄팍한 나의 생각이었다.
막역하거나 사이가 따뜻한 부녀 사이는 아니었다. 내가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지 모르겠다. 누구한테 보여줄 것도 아닌데 갑자기 아빠에게 따뜻한 위로의 말을 건네줘야 하는 건지, 아니면 아무렇지 않게 대해야 하는 건지. 난 15일 저녁에 집에 돌아온 아빠에게 별 말을 건네지 않았다. 후자를 선택한 것이다.
엄마나 아빠 앞에서는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그들 앞에서 눈물을 보이는 게 어색한 장녀의 위치였다. 그 대신 유튜브나 포털사이트에서 간암에 대해 찾아보며 눈물을 쏟았다.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아직은 누군가와, 특히나 가족과의 이별은 더더욱 준비되지 않은 나였다.
영화를 하겠다고 몇 년째 애매한 백수의 위치에 있는 철없는 30살의 장녀. 8살 어린 남동생에게는 만 나이로 28살이라고 우기는 유치한 누나였다. 며칠 전,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듯 나도 가볍게 유튜브를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이어트에 항상 관심이 많기에 이번엔 제대로 군살을 싹 빼고, 일기 형식의 유튜브를 올려야지. 그렇게 생각하고 영상을 찍었다. 그래서 오전부터 야심 차게 인바디를 재고 돌아와 침대에 누웠고, 그때 전화로 아빠의 소식을 들었다. 통화를 끊고나서 들었던 수만 가지 생각 중에는 '아. 유튜브는 못하겠네.'라는 생각도 있었다. 그게 원망이거나, 아쉬움은 아니었다. 어떻게 타이밍이 딱 이렇게 된 걸까 하는 그냥 그런 스쳐 지나가는 정말 쓸모없는 생각 중 하나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