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에 간암을 검색해서 나오는 블로그 글을 하나 읽었다. 아버지에게 간을 이식하고, 성공적으로 수술을 끝마친 누군가의 일기 같은 블로그였다. 제일 최근 글은 몇 년 후의 검진 소식이었다. 아버지와 본인 둘 다 건강하게 둘 다 생활하고 있다는 희망적인 글이었다. 나도 그와 같은 희망이 생겼다.
그리고 뒤로 돌아가서 다른 블로그 글을 읽었다. 이쪽은 이식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다다음 글. 호스피스로 옮겼다. 조금 더 넘겨서 최근 글로 갔다. 제목은 장례식이었다. 더 이상 다른 블로그 글을 읽기를 포기했다.
다음 날, S병원 예약이 잡혔다고 했다. 그러더니 저녁쯤에는 A병원으로 예약을 잡았다고 했다. 주변 사람들의 추천과 더불어 지인의 딸이 A병원에서 일하고 있는 덕택에 빠르게 예약이 잡힌듯했다. 예약 전까지 남은 기간은 이틀이었지만, 체감상 일주일의 시간으로 느껴졌다. 1초가 흐를 때마다, 이 시간에도 암이 더 심해지고 있을 것 같다는 걱정과 두려움이었다. 엄마는 소식을 들은 당일, 그러니까 병원에 가기 이틀 전부터 서울로 갈 채비를 일찍이 하기 시작했다. 혹시나 가서 입원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나는 짐 싸기를 도왔다. 드라이기를 챙기고, 샴푸를 챙기고, 수건을 챙기고. 나는 고등학생 때부터 본가인 강원도와 서울을 자주 왔다 갔다 했던 터라 나름 짐 싸기에 도움이 된다는 쓸모없는 생각과 함께 마음이 헛헛해졌다.
무언가에 집중을 하기가 힘들었다. 이럴 때는 운동이 답이었다. 21살 때 잠시 느낀 적이 있었다. 몸에게 힘듦을 주면 잠시나마 정신의 힘듦이 잊힐 때가 있다. 요즘 한창 운동도 배우고 있던 시기라 몸을 움직이며 열심히 간암이라는 글자를 머릿속에서 지워보려 했다. 하지만 그 사라지지 않는 끈질긴 단어는 곧 내 눈앞에서 투명하게 둥실둥실 다시 떠오르곤 했다. 그리고 다시 유튜브에 들어가 간암을 검색해서 영상을 본다. 일부러 절망적인 영상은 클릭하지 않았다. 현실의 절망으로도 벅찼다.
아아. 혹시 내가 최근 쓴 시나리오에서 병으로 죽은 아버지를 썼기 때문인 걸까. 그땐 아무 생각 없이 썼던 건데. 시나리오대로 아빠가 죽음을 맞이하면 어쩌지. 바보 같은 생각이 들었다.
말기일 경우에는 6개월을 본다고 한다는 여러 문장이 내 기억에서 잊히지 않았다. 아빠는 지인들과 저녁 식사를 하느라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저녁 식사 시간에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어느 정도 걱정을 하는 딸의 모습으로 엄마와 동생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동생은 검색해 보지 않았는지, 아니면 긍정적으로 생각한 것인지 괜찮아질 거라는 말만 했다. 분위기를 전환하려는 동생의 말에 엄마와 나는 침묵했다. 엄마는 혹시라도 최악의 상황이 된다면 집과 사무실을 내놓고 서울 근교로 이사를 가자는 말을 했다. 그리고 이제 나와 동생 각자 스스로를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영화인이 되겠다며 30살이 되도록 마땅한 직업을 가지고 있지 않은 백수인 나는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돈을 많이 벌어 부모님을 호강시키겠다는 20대 초반 나의 패기는 거의 꺼져가는 수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