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본 사주에서도 그랬다. 아빠가 보고 온 신점에서도 그랬다. 오래오래 병 없이 살 거라고. 사주에서 간을 조심해라. 장기 쪽에 뭐가 보이는데.라고 했으면 조금 더 빠르게 검사를 받을 수도 있었을까? 아니다. 이것도 다 쓸데없는 생각이겠지. 하지만 다시는 사주나 점 따위를 믿지 않기로 했다.
강원도의 2차 병원에서 검사한 결과로는 6cm가 넘는다고 했다. 작지 않았다. b형 간염을 보유하고 있는 아빠였기에 더 많이 자주 검사를 받았어야 했다. 미루지 않고 꼬박꼬박, 어쩌면 쓸데없이 계속해서 검사를 했었어야 했다. 내가 만약 꼼꼼한 딸이었다면 미리 챙길 수 있었을까? 스쳐 지나가는 무수한 생각 중 하나였다.
집에서 청소기를 돌렸다. 아빠 방도 깨끗하게 청소했다. 괜스레 울컥했다. 왜일까. 계속해서 좋지 않은 생각만 들었다.
16일 밤에 A병원으로 따라가기로 했다. 좋지 않은 소식은 더더욱이 전화로 듣고 싶지 않았다. 그 사실을 전화로 내게 이야기하는 엄마의 모습도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 암과 직접 대면하러 가는 길을 선택했다. 벌써부터 두려웠다.
하지만 17일 아침, 엄마는 내가 같이 가지 못한다는 것을 말해주었다. 병원 규정상 보호자는 환자 포함 2인만 가능했다. 어쩔 수 없이 본가에 머물러있을 수밖에 없었다. 정신없이 이런저런 일을 처리하고 나니 금세 점심시간이 되었다. 상근인 남동생과 근처 식당에 가서 밥을 먹었다. 오후 1시 30분이 아빠의 진료 시간이었다. 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오늘 결과를 듣게 되는 걸까. 입원하려나. 잡다한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끊이지 않았다. 커피를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강아지들과 바로 산책하러 나갔다. 당뇨병 환자에게는 식후 혈당을 줄이기 위해 식후 바로 걷기를 추천해서 몇 달 동안 꾸준히 식사 후 밖으로 걸어 나간 아빠였다. 당뇨약을 먹어서 간에 더 무리가 왔을 거라는 엄마의 통화 내용이 귓가에 들렸다. 강아지들과 산책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빠의 진료 시간이었다. 지금쯤 검사하고 있겠지. 커피를 한 모금 마시자, 속이 울렁였다. 노트북을 열어 타자를 치기 시작했다. 답답한 마음이 한결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
오후 세 시쯤 엄마가 카톡을 하나 보내왔다. 무슨 쇼핑몰의 적립금이 곧 소멸할 거라는 알림을 그대로 복사 붙여 넣은 내용이었다. 이런 카톡을 보낸 거라면 검사가 끝나기 전이라든가, 결과가 좋거나 둘 중 하나겠지.라는 생각으로 바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검사는 끝났다고 했다. 하지만 결과는 듣지 못했다고 했다. 다음 주 일요일에 입원한 뒤 다시 더 정밀검사를 받을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검사 결과가 나와야지 입원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피 말리는 침묵의 긴장 상태를 다음 주까지 계속 가지고 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자 아찔했지만, 한편으로는 살짝 배가 고파지기도 했다. 점심으로 먹은 피자가 살짝 소화될 시간이었다. 소화가 안 돼 냉장고에 넣어놨던 커피를 다시 꺼내 단숨에 들이켰다.
저녁쯤에 엄마와 한 번 더 통화를 했다. 의사를 아예 만나지도 않고 입원하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의사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눈 것이라는 엄마의 답이 들려왔다. 그러고는 전 병원에서 한 초음파로는 암이 확정이 아니라는 약간의 안심이 될 만한 말을 의사가 해줬다는 말도 했다. 전 병원에서는 90% 이상의 확률이라고 했는데, 그게 틀린 걸까. 서울로 가기 전 아침에는 아빠가 마지막 담배라며 몇 개비 들어있는 담뱃갑을 버리려 했다. 그런데 저녁 통화에서는 아빠가 의사의 말을 듣고 다시 담배를 샀다는 말이 전해졌다. 인터넷에서 간암 같은 경우에는 정밀검사를 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고 했는데. 아직은 안심을 하면 안 되는 거 아닌가. 엄마에게 그래도 아빠가 담배를 피우지 않는 게 좋을 거란 말을 전했다. 하지만 아빠 성격상 의사의 말을 믿고 안심이 돼서 다시 피겠지. 그래. 차라리 의사 말처럼 아니었으면. 가벼운 다른 무언가였으면 좋겠다.
암이 아닐 거라는 일말의 희망을 꺾으려는 의도는 아니었다. 단지 아직은 안심하지 말자는 생각이었다. 상대는 감기라거나 쉽게 지나가는 병이 아니라 간암이었다. 엄마에게 서울 내에 있는 다른 큰 병원에도 진료 예약을 하자고 말했지만, 아빠는 원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열흘을 기다리겠다고 했다. 길고 긴 열흘이라는 시간 동안 암이 더 악화될까 무서웠다. 하지만 마치 꼭 안 좋은 상황을 바라는 것처럼 보이는 것 같아 그냥 열흘을 기다리기로 했다.
결국 암 카페에 가입하고 말았다. 참을 수가 없었다. 처음 진료받았을 때에는 6센티미터가 넘는다고 했다. 카페에 6cm를 검색하니 많은 글이 검색되었다. 병원마다도 치료 방법이 다른 환자도 있었다. 정말 열흘을 기다려야만 하는 걸까. 집에 돌아온 엄마에게 더 빨리 앞당길 수는 없냐고 물었지만, 대답은 역시 마찬가지였다.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