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이야기로 쌓일 뿐
훗날, 나의 추궁에 본인은 그런 적 없다고 부인했지만
엄마는 아들에 대한 맹목적이고도 편파적 사랑이 가득한
그 시절의 보편적인 엄마들과 다르지 않았다.
그리 넉넉하지 않은 살림에 오빠만 유리병에 담긴
흰 우유를 배달시켜 먹였고, 오빠만 스케이트를 탈 줄 알았으며,
자전거도 오빠만 가질 수 있었다.
드러내놓고 오빠를 편드는 일은 없었지만
암암리에 오빠에게 집중되는 엄마의 사랑을
나머지 세 딸들이 느끼지 못할 리 없었다.
생각해 보면 그때 엄마의 살림은 얼마나 빠듯했을지...
그럼에도 하나뿐인 아들에게 배달 우유를 먹이고, 과외를 시키고,
딸들의 단정한 매무새를 위해 철철이 새 옷을 사 입히고,
생활비를 쪼개 피아노학원, 미술학원도 보냈다.
......
엄마가 등 떠밀어 보낸 미술학원은 허름한 상가 건물
2층에 있었는데 컴컴하고 삐걱대는 나무계단을 올라가야 했다.
화실 안은 밝은 대낮에도 빛이라곤 얼씬대지 못하도록
두꺼운 커튼이 쳐있어서 2층이 아니라 지하 같았다.
문종이 딸랑거리는 미닫이문을 열면
특유의 유화물감과 유화제 냄새가 훅 끼쳐왔다.
늘 잠이 부족한 듯 나른해 보이고
의지라고는 보이지 않는 시큰둥한 표정의 선생님은
말라비틀어진 모과며 목화솜이 붙어있는 나뭇가지,
꽈리열매 따위를 책상 위에 던져주고 뭐든 그려보라 했다.
일곱 살, 열 살이던 동생과 나에게 제대로 해본 적 없는 그림
(선긋기나 도형 그리기 등이 아닌 진짜 정물화) 그리기는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우왕좌왕하는 우리를 얼마간 지켜보던 선생님은
어느 날, 나와 동생을 자신의 그림 모델로 전격 발탁했다.
어린 맘에 어려운 그림 그리기에 비하면 모델서기는
훨씬 편하고 멋지겠다는 생각에 잠시 우쭐했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우리는 선생님이 정해준 포즈로 서거나 앉아서
(주로 동생이 의자에 앉고 나는 그 곁에 서는 포즈였다.)
지나친 긴장감으로 눈동자조차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허리와 어깨는 뻐근해왔고
눈은 시큰거리다 못해 눈물이 났다.
어린이에게는 버거운 노동이었다.
그림 그리기도, 모델서기도 재미없을뿐더러
쉽지도 않다는 걸 알게 된 나와 동생은
미술학원이 싫다고 엄마에게 떼를 썼고
그것을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알지도 못한 채
그림과의 짧은 인연을 서둘러 끝내 버렸다.
......
아이는 한 번 본 그림을 곧잘 따라 그렸고
노는 시간 대부분을 그림 그리기로 보냈다.
어릴 때 박차 버린 그림에 미련이 남아서인지
내 아이가 그림을 좋아하는 모습은 묘한 안도감을 줬다.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끓여 본 뒤에야 놓을 수 있는 법.
수십 년이 훌쩍 지나, 이제와 그림을 그리겠다고
이것저것 귀찮게 구는 내게
아이는 뽀얀 먼지가 켜켜이 쌓인 화구를 물려줬다.
아이가 물려준 화구통 안에는 새끼손가락보다 짧은
몽당연필들이 가득 들어있었다.
필통 속에 담긴 몽당연필에서 아이의 시간을 본다.
시간은 흘러가 사라지지 않았다.
그것은 아이가 마음을 둔 곳에 고스란히 쌓여
아이의 이야기가 되어 있었다.
짬짬이 그림을 그린다.
산으로 가는 그림에 절망하고
의도가 반영되지 못하는 그림을 보며 울상을 지을 때
아이는 차곡차곡 쌓아둔 자신의 시간을 풀어
'구도가 어떻고, 명암은 어떠하며, 색은 어쩌고 저쩌고...'
도움이 될만한 이야기를 나눠준다.
내가 아이를 키웠다 생각했는데
가끔은 아이가 나를 키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