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인장

뾰족함 뒤에 감춰진 보드라움

by 모모씨
일월선인장도.jpg 일월선인장도 ©momocci








힘없고, 느리고, 잘 까먹는 데다, 가진 건 측은지심뿐인 사람이

무언가를 돌보기로 작정하는 건 얼마나 무책임한 일일까.

돌봄이라는 노동을 위해 가진 역량은 턱없이 부족하고

그 부족한 역량을 자아비판 할 죄책감은

지나치게 풍부한 역설이라니...






식물을 키워보겠다고 처음 맘먹는 사람들이

가장 편하게 집에 들이는 식물 중 하나가 선인장이다.

물이 귀한 사막에서도 꿋꿋이 사는 녀석들이다 보니

'물 주기 한두 번쯤 까먹어도 죽지 않고 잘 살겠지' 하는

마음이 선인장에 대한 진입장벽을 허물어 버린 듯하다.


물론

먼지가 폴폴 나도록 바싹 말리거나, 뿌리를 푸욱~ 썩히거나

다양한 방법으로 선인장을 죽여 본 경험이 있는 나로서는

선인장 기르기가 쉽다는 의견에는 좀처럼 동의할 수 없다.


사실 선인장은 물 없는 환경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물이 없는 환경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터득한 것이다.

겉보기엔 날카롭고 메마른 듯 보이는

선인장의 몸통은 대부분이 수분이다.

넓은 잎을 뾰족하게 변형시켜 수분 손실은 최대한 줄이고

주름이 가득한 몸통에 수분을 최대한 저장해

새나 곤충들에게 빼앗기지 않도록 가시로 보호한다.




KakaoTalk_20260316_135955574.jpg 꽃피는 사막 ©momocci








지구상에서 가장 건조하다고 알려진

칠레의 아타카마 사막은

역설적이게도 '꽃피는 사막'으로 불린다.

쩍쩍 갈라지고 메말랐던 대지에

5년이나 7년에 한 번씩 비가 내리면

수년 동안 땅속 깊이 움츠리고 있던 씨앗들은

일제히 깨어나 꽃을 피운다.

적당한 온도와 습도, 조건이 되기까지

인내하고 기다린 생명의 반격이다.


생명 따위는 단 한 톨도 허용하지 않을 듯 보이던

죽음의 땅 위에 펼쳐지는 생명의 향연을 설명할

인간의 언어가 과연 있을까.


'신선의 손바닥'


척박한 땅에서 보란 듯 화려한 꽃을 피우는

선인장을 불로장생하는 신선의 손바닥에 비유한 것은

대자연의 영리한 생존전략을 흉내 낼 길 없는

비루한 인간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칭찬과 찬사일지 모르겠다.




선인장은 물을 싫어하는 게 아니라

선인장이 필요로 하는 만큼의 물을 원한다.

관심을 싫어하는 게 아니라

지나친 관심이 버거울 뿐이다.

자주 바라봐주고 말 시켜주되

아무리 좋아도 물은 펑펑 주면 안 된다.


무심하지만 다정하게, 멀지도 너무 가깝지도 않게

선인장은 그렇게 적당한 거리에서

까다롭게 사랑해야 한다.


우리, 사람들처럼




잘 키우지 못하고 죽여버리는 식물들에 대한

죄책감을 해마다 쌓으면서도

해마다 이맘때면 어김없이

마트 계산대 옆에 늘어선 식물코너를 기웃거린다.

실패하고 무너진 사랑에 주저앉기보다

또다시 사랑을 선택하는 게 우리의 본성이니까...


그러니 이 봄, 다시 사랑하기 위해

나는 체력을 비축해야 한다.

운동화끈 동여매고 바람 부는 거리로라도 나서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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