뾰족함 뒤에 감춰진 보드라움
힘없고, 느리고, 잘 까먹는 데다, 가진 건 측은지심뿐인 사람이
무언가를 돌보기로 작정하는 건 얼마나 무책임한 일일까.
돌봄이라는 노동을 위해 가진 역량은 턱없이 부족하고
그 부족한 역량을 자아비판 할 죄책감은
지나치게 풍부한 역설이라니...
식물을 키워보겠다고 처음 맘먹는 사람들이
가장 편하게 집에 들이는 식물 중 하나가 선인장이다.
물이 귀한 사막에서도 꿋꿋이 사는 녀석들이다 보니
'물 주기 한두 번쯤 까먹어도 죽지 않고 잘 살겠지' 하는
마음이 선인장에 대한 진입장벽을 허물어 버린 듯하다.
물론
먼지가 폴폴 나도록 바싹 말리거나, 뿌리를 푸욱~ 썩히거나
다양한 방법으로 선인장을 죽여 본 경험이 있는 나로서는
선인장 기르기가 쉽다는 의견에는 좀처럼 동의할 수 없다.
사실 선인장은 물 없는 환경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물이 없는 환경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터득한 것이다.
겉보기엔 날카롭고 메마른 듯 보이는
선인장의 몸통은 대부분이 수분이다.
넓은 잎을 뾰족하게 변형시켜 수분 손실은 최대한 줄이고
주름이 가득한 몸통에 수분을 최대한 저장해
새나 곤충들에게 빼앗기지 않도록 가시로 보호한다.
지구상에서 가장 건조하다고 알려진
칠레의 아타카마 사막은
역설적이게도 '꽃피는 사막'으로 불린다.
쩍쩍 갈라지고 메말랐던 대지에
5년이나 7년에 한 번씩 비가 내리면
수년 동안 땅속 깊이 움츠리고 있던 씨앗들은
일제히 깨어나 꽃을 피운다.
적당한 온도와 습도, 조건이 되기까지
인내하고 기다린 생명의 반격이다.
생명 따위는 단 한 톨도 허용하지 않을 듯 보이던
죽음의 땅 위에 펼쳐지는 생명의 향연을 설명할
인간의 언어가 과연 있을까.
'신선의 손바닥'
척박한 땅에서 보란 듯 화려한 꽃을 피우는
선인장을 불로장생하는 신선의 손바닥에 비유한 것은
대자연의 영리한 생존전략을 흉내 낼 길 없는
비루한 인간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칭찬과 찬사일지 모르겠다.
선인장은 물을 싫어하는 게 아니라
선인장이 필요로 하는 만큼의 물을 원한다.
관심을 싫어하는 게 아니라
지나친 관심이 버거울 뿐이다.
자주 바라봐주고 말 시켜주되
아무리 좋아도 물은 펑펑 주면 안 된다.
무심하지만 다정하게, 멀지도 너무 가깝지도 않게
선인장은 그렇게 적당한 거리에서
까다롭게 사랑해야 한다.
우리, 사람들처럼
잘 키우지 못하고 죽여버리는 식물들에 대한
죄책감을 해마다 쌓으면서도
해마다 이맘때면 어김없이
마트 계산대 옆에 늘어선 식물코너를 기웃거린다.
실패하고 무너진 사랑에 주저앉기보다
또다시 사랑을 선택하는 게 우리의 본성이니까...
그러니 이 봄, 다시 사랑하기 위해
나는 체력을 비축해야 한다.
운동화끈 동여매고 바람 부는 거리로라도 나서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