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화]
수능 당일, 나는 엄마에게 죽을 싸달라고 했다.
그 때문이었을까.
1교시 언어영역 시간,
지나가던 배추 장사의 스피커 소리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그때 내가 그에게 전화를 걸지 않았어도 되었을까.
그 때문이었나.
수능 시험장을 나와
교문을 지나 어둑해진 골목을 걸을 때,
나는 또다시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수능을 치고 남아 있던 수시 논술을 보러 간 날,
나는 수험표를 챙기지 못했다.
오히려 수험표를 챙기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이미 수능을 대차게 말아먹은 뒤에 치르는 논술은
아무 의미도 없었다.
“수험표는 ○관 ○층 ○호에서 발급받을 수 있으니
거기서 발급받으세요.”
그 말을 듣자마자
내 표정은 ‘알게 뭐람’이 되었다.
나는 그대로 경대를 빠져나왔다.
“보자보자… 서울, 서울… 인서울… 말라꼬?
그냥 대구에 널린 게 대학인데…”
나는 밀리오레 앞,
신문에도 났다는 용하다는 타로 2번 아줌마 앞에 앉아
내 미래를 점쳐보기도 했다.
수능 이후,
아침에 눈을 뜨는 일이 너무 싫었다.
엄마는 내가 수능을 망친 뒤로
나를 학교에 태워다 주지 않으셨다.
나는 늘 지각을 했고,
어느 날 담임은 나를 상록실로 불러
야구 방망이로 무지막지하게 엉덩이를 때렸다.
나는 아프다는 생각 말고는
아무 생각도 하기 싫었다.
머리를 자른 것도
그다지 큰 의미는 없었다.
3년 내내 보지 못했던 드라마와 영화는
내 상태를 잠시 잊게 해주었고,
내가 본 영화 속 여자 주인공의 단발이 예뻐 보여
수험표를 들고 미용실로 달려간 것이 전부였다.
다음 날,
단발머리로 지각한 나를 반 아이들이 놀라 바라보자
머쓱한 나는
비장한 결심이라도 품은 사람처럼 굴었다.
수능 성적표를 받던 날,
민지는 나를 잠시 불러냈다.
“그동안 수고했어.
그리고 머리 예쁘다.”
그 말은 위로도, 화해도 아니었지만
그 여름이 끝났다는 증거 같았다.
아버지는
“너희 반에 최효진이 두 명이냐?”고 물으셨다.
내 성적표를 받아들고도
전혀 믿기지 않는 눈치였다.
탓하고 싶었다.
내가 이렇게 된 건
다 너 때문이라고.
나는 연락이 끊긴 번호에
텍스트로 빙자한 욕을 쓰다
이내 지웠다.
그렇게 보내지 못한 문자는
결국 아무에게도 닿지 않았다.
화가 난 사람도,
미안한 사람도,
사실은 모두 나였다.
머리를 자른 나는
새로 시작하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었지만
실은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으려는 얼굴이었다.
거울 속의 단발머리는
실패한 수험생이라기보다
조용한 도망자에 가까웠다.
그해 겨울,
나는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누군가 대신 표시해 준 답을 따라온 줄 알았던 인생에서
처음으로
아무도 대신 써주지 않는 질문을
내 손으로 들고 서 있었다는 것을.
나는 그때까지
실패를 피하려고만 했다.
하지만 그날 이후,
실패는 내가 처음으로 선택한 일이 되었다.
아무도 묻지 않았던 질문을
그제야
스스로에게 묻기 시작했다.
그렇게
질문 받지 못한 시간들은
비로소 내 시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