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취업증명서

by 고모효진

그 겨울, 나는 앓고 아팠다.


그래서 한 해가 더 지나서야 나는 대학에 갔다.

원하던 곳인지 묻는다면 대답하기 어렵다.

원하고 원하지 않고가 없었다.

성적에 맞는 곳에 원서를 넣었고, 합격했고, 입학했다. 그렇게 또 한 번 — 질문 없이 다음 자리로 이동했다.


4학년 즈음,

취업증명서가 필요했다.


그것이 전부였다.


취업계를 내려면 재직 중이라는 증명이 있어야 했고,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되는 이유가 필요했고,

마침 원장님의 제안이 있었다.


순서를 나열하면 그렇다.

하지만 그 순서 안에서

내가 무언가를 선택했다는 감각은 없었다.


수능이 끝나고 나서 나는

처음으로 내 질문을 갖게 됐다고 생각했다.


아무도 표시해주지 않은 빈 질문지 앞에

서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대학 4학년이 된 나는

여전히 빈 질문지 앞에 서 있었다.

다만 이번에는 그것이 해방감이 아니었다.


그동안의 성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회사가 없었다.


이 문장을 쓰면서도 딱히 억울하거나 분하지 않다.

그냥 사실이었다.


학교에 가기 싫었고,

취업증명서가 필요했고,

마침 나는 교습소에서 보조교사였다.


선택지가 없는 상황에서 사람은 선택을 한다.

아니, 정확히는 — 선택처럼 보이는 일이 일어난다.


원장님이 전임강사 일을 제안을 했을 때

나는 얼마나 고민했을까.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아마 오래 고민하지 않았을 것이다.

오래 고민할 이유가 없었다.

다른 선택지가 없는 사람에게

고민이란 사치에 가깝다.


그렇게 나는 강사가 됐다.


장래희망란에 단 한 번도 써본 적 없는 직업으로.


고3 때 아버지는 여자가 잘 살려면

법을 알아야 한다고 했고,

나는 법대에 수시를 넣었다.


그때도 나는 선택지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정확하지 않았다.

그때의 나에게는 선택지가 있었다.

다만 그것을 선택할 용기나 언어가 없었을 뿐이었다.


대학 4학년의 나는 달랐다.

그때는 진짜로 선택지가 없었다.


용기 없이 떠밀린 것과,

선택지 없이 떠밀린 것 중에 어느 쪽이 덜 억울한가.


아마 둘 다 억울하지 않은 것 같다.


억울하다고 느끼려면 다른 가능성이 있었다는

믿음이 있어야 하는데,

나는 그 시절의 나를 돌아보면서

딱히 다른 가능성을 상상하지 못했다.


그냥 그렇게 됐다.

그리고 그것이 14년이 됐다.


나는 가끔 원장님을 뵌다.

그분이 그날 나에게 제안을 하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다른 알바를 찾았을 것이다.

다른 취업증명서를 만들었을 것이다.

어떻게든 학교에 가지 않는 방법을 찾았을 것이다.


결국 강사가 됐을 수도 있고,

전혀 다른 사람이 됐을 수도 있다.

모르겠다.


다만 한 가지는 안다.


그날 나는 가르치는 일을 선택하지 않았다.

가르치는 일이 나를 선택했다는 것도 아니다.

그냥 — 선택지가 없는 자리에 그 일이 있었다.

그리고 나는 거기에 14년이라는 시간을 앉아있었다.


취업증명서가 필요했기 때문에.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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