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선택하지 않은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청평으로 떠나오기 전, 담임에게 법대에 수시 지원을 하겠다고 말했던 일과 상록실에서 밀려난 일까지.
그 모든 것이 내가 묻지 않은 질문지에 누군가 대신 표시해 둔 답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청평에 와서야 알게 되었다.
그 선택들은 결국 내가 내린 것이었고,
그 선택을 가장 많이 감당하고 있는 사람은 나 혼자가 아니라는 것도.
엄마와 아빠, 그리고 가족들까지.
열아홉 해를 살던 곳을 떠나오고 나서야
내 질문지에 또 하나의 질문이 덧붙여졌다.
청평의 하루는 늘 같았다.
일과표에 맞춰 일어나 구보를 하고, 밥을 먹고, 공부를 했다.
그 규칙적인 하루 속에서 남자아이들은 가끔씩 제주를 불러냈다.
점심을 먹고 쉬는 시간, 아이들은 나를 그가 있는 곳으로 데려갔다.
못 이기는 척 따라가면
제주는 탁구를 치고 있거나 배드민턴을 치고 있었다.
내가 보고 있다는 걸 알아차리는 순간,
그는 늘 당황했고
그때마다 경기는 어김없이 끝이 났다.
그 장면들은 내게 또 하나의 질문 같았다.
그리고 나는 다시 선택해야 했다.
이번엔 분명히 알 수 있었다.
그 선택의 감당은, 누구의 몫도 아닌 내 몫이라는 걸.
그래서 나는 그에게 더 쌀쌀맞게 굴었다.
몽글하게 피어나는 감정이 올라오면
입소 날,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던 엄마와 아빠의 얼굴로
그 감정을 덮고 눌렀다.
정신차리라는 혼잣말로
끝까지 쓸어내렸다.
퇴소 날, 강당에서 그가 다가왔다.
쭈뼛거리던 얼굴이 그날만큼은 이상하게 단단해 보였다.
“번호… 알려줄 수 있어요?”
‘안녕하세요. 곧 중간고사인데 잘 치세요. 누나.’
모르는 번호로 문자가 왔다.
마지막 단어를 보는 순간 알았다. 누구인지.
독서실 책상에 앉아 스탠드 불빛 아래에서
문자를 썼다가 지웠다를 반복했다.
미쳤냐고 썼다가,
안녕이라고 썼다가,
문자하지 말라고도 써봤다.
그러다 폰을 덮었다.
2학기 교실은 답답했다.
나는 이미 몇 번을 돌려본 수능특강을
학교에서는 아직 절반도 넘기지 못하고 있었다.
수능을 불과 두 달 남겨두고도.
“최효진, 나와. 나와서 풀어봐.”
담임이 칠판에 적은 문제는
풀이가 길고 복잡해 보였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이미 여러 번 풀어본 문제집에서는
다른 방식으로 훨씬 짧게 끝나는 문제라는 걸.
그리고
그 문제를 왜 나에게 시켰는지도.
내가 X=0이라고 조건을 쓰고
답을 적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아이들의 표정이 먼저 바뀌었다.
담임도 잠시 말을 잃었다.
이내 아이들의 웃음이 터졌고,
나는 교무실로 불려갔다.
날 선 담임의 얼굴 앞에서
그렇게 큰 모멸감을 느낀 건 처음이었다.
차라리 몽둥이로 맞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담임은 자신이 느꼈던 감정을
고스란히 돌려주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말보다 숨을 더 많이 삼켰다.
“죄송합니다.”
그 다섯 글자가
집에 돌아오는 길 내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억울했고, 분했다.
당장이라도 울 것 같았지만
하교하는 무리들 속에서 울 수는 없었다.
잠시라도 생각을 접어두고 싶어
나는 대신 폰을 열었다.
“어? 여보세요?”
무슨 생각이었을까.
위로를 받고 싶었던 걸까.
여긴 익숙한 곳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공기가 달라진 이곳에서
나는 낯선 그곳의 온도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그 선택의 결과는 알지 못한 채
나는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