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말하자면 난 솔직하지 못했어
솔직한 - Blind 창
초면일수록 대단한 본인의 배경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마치 각본이라도 있는 듯 매번 같은 말을 앵무새처럼 반복한다. 내가 들어왔던 대부분의 대본은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 쉬운 말로 자기 자랑이었다. 첫인상을 강렬하게 남기고 신뢰를 얻기 위한 방편인 듯하다. 내가 그 사람과 초면이었을 때 들었던 그 대사를 다른 이방인과 있는 자리에서 반복해서 듣는 순간은 뭐랄까, 음원 어플에 플레이리스트를 저장해 놓고 수십 번 듣다 보니 한 곡이 끝난 후 잠깐의 정적에 그다음 곡의 첫 소절이 데자뷰처럼 떠오르는 경험과 비슷했다. 그 말의 힘으로 아마도 그들은 점점 그들이 원하는 것이 현실이 되어가는 경험을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많은 경우 시늉은 티가 나지만, 나지 않을 수 없지만, 간혹 어떤 이에게는, 시늉으로 보이지 않는 일이 생기기도 하고 점점 더 그렇게 되어간다. 누구보다 시늉하는 사람이 자기 시늉에 가장 먼저 가장 잘 넘어간다. 이 현상은 그의 안전한 세상살이를 위해 나쁘지 않다. 그리워하는 체하다가 그리움을 느끼고 사랑하는 체하다 사랑하게 되는 일이 실제로 일어난다.
- 이승우. 소설가의 귓속말 중
이승우 작가는 그의 책에 "고아라는 의식을 가지기 전에 고아는 고아가 아닌 체 하지 않는다"라고 썼다. 고아 의식은 세상과 타인에 의해서 획득되는 형질이라서, 고아가 고아의식을 타인을 통해 알게 되어야만 비로소 고아는 고아가 아닌 체 하게 된다는 것이다. 앵무새처럼 자기 자랑을 하는 사람들은 어쩌면 그 자기 자랑이 자신과 결합되었을 때 어떤 강력한 힘이 생긴다는 사실을 타인의 반응으로부터 체득해 왔던 것이리라.
굳이 나란 사람에 대해서, 그리고 내 생각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고 살았던 것은 그럴 필요가 없어서였을지 모른다. 굳이 나란 사람에 대해서, 그리고 내 생각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고 살았던 것은 어쩌면, 세상과 타인에 의해 정의되는 내 모습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았기 때문이었을지 모른다. 자기만족이라는 나르시시즘이었거나, 그게 아니라면 사회화에 둔감했던 것일지도.
난 내 얘기를 하는 것이 약점이 된다고 느끼며 살아온 시간이 꽤 길었다고 할 수 있다. 직장에서 나는 내가 맞다고 생각하는 걸 조직의 논리로 덮어씌워 조직이 원하는 방향으로 논리를 이끌어야만 했었다. 동료들 간에는 늘 사적인 이야기가 뒷담화가 되어 돌아다니는 현실을 목도했었다. 어느 순간부터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게 편해졌다. 네 생각 따윈 중요치 않아. 직책자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해서 말하지 않은 행간을 정확히 짚어내야 해. 점심 메뉴는 상대가 전날 음주를 했는지 안 했는지, 선호하는 메뉴를 경험적으로 분석해서 오늘 먹고 싶어 할 만한 것으로 정해야 해. 마치 태어날 때부터 그 사람을 알았다는 듯 자연스럽게 비위를 맞추고 센스 있는 농담으로 상사의 취향을 제대로 저격하는 능력자들이 너무 많았다. 서로들 엇비슷한 업무 능력을 가졌으니 차별화 포인트는 상사에게 매력적인 사람이 되는 것이다. 애초에 남에게 매력적이게 보여야 할 필요보다 자기만족을 동력으로 살아온 나 같은 사람은, 영락없이 의지할 데 없는 "고아"였다. 그렇게 내가 "고아"라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부터 나는 "고아가 아닌 체" 하기 위해서 애쓰고 살았다.
내 나이쯤 되면 다들 지금껏 너무 무리하며 살아왔다는 걸 깨닫게 된다. 20대나 30대는 무리할 수밖에 없는 나이였다. 다시 말하면 자기 한계를 모르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이제 내게는 그 시절만큼의 에너지나 시간이 남아있지 않다...(중략)... 나 자신을 파괴하면서까지 애쓸 일은 없다.
- 한수희.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중.
지난 주말, 아침에 눈을 떠 게슴츠레 폰을 보니 간밤에 부재중 연락이 2개나 와 있다. 그냥 안부만 묻기에는 늦은 시간, 둘 다 똑같이 찍힌 "오후 10:50", 같이 운동하는 동네 언니들. 이 연락의 의미를 유추해 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우리는 맥주로 뭉친, 하지만 안갯속에 서 있는 것처럼 서로가 서로를 알아가는 단계다.
같은 날 , 같은 시간에 떠 있는 2건의 부재중 연락
우리 셋은 공통점이 있다. 매일 저녁 같이 운동한다는 표면적인 것 말고 술 한잔 기울이며 즐기는 수다가 행복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연락이 불발된 아쉬움을 느낄 새도 없이 그 다음날 마침내 뭉치고 말았다. 언니들은 나에게 작정하고 접근(?) 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운동 전후로 종종 한담을 나누었고, 단체 모임 자리에서는 어떤 끌림처럼 항상 주변 자리에 앉아있게 된 사람들이다. 친해지고 싶다는 모종의 제스춰가 은연중에 있어 왔으며, 서로에 대한 호감이 나도 모르게 드러났고 그 공감대가 마침내 우리를 이 자리로 이끌었다. 우리는 새벽까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와인을 마시며 수다를 떨었다. 언니들은 내가 너무 궁금한 사람이었다고 했다. 왜냐고? 나는 내 얘기를 많이 하지 않는 사람이니까.
어제 나는 동네언니들과 행복했다. 그들은 내가 고아여도 상관없는 사람들이다. 내가 고아라도 그들과 나의 연대에 흠이 되지 않는다. 우리 사이에는 어떠한 목적도, 금전적인 이익도, 포장해야 할 성과도 없으니까. 나는 뭇 부러움을 한 몸에 받는 건강한 몸매(?)와 뛰어난 춤실력(?)을 가진, 적당히 과묵한 언변과 흥을 돋울만한 주량을 가진 그냥 나다. 이 역시 자기만족이라는 유리알에 비친 내 모습일지라도 최소한 난 여기서 솔직하다.
내가 불행하다 느꼈던 그곳에서 무엇이 나를 솔직하지 못하게 만들었는지는 이제는 중요하지 않다. 확실한 사실 하나는 나는 그때 솔직하지 못했고, 그게 내 한계였다는 것이다.
제주의 해녀들이 물질을 나갈 때 절대 잊으면 안 되는 것이 자기 "숨의 길이"래. 숨의 길이를 안다는 건 한계와 극복이 아니라 다르다는 걸 아는 거야. 그래야 우리는 무리하지 않으면서 성장할 수 있어.
- 엄기호. 공부 공부 중.
몰랐는데 솔직히 난 그때 솔직하지 못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