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살고 싶다면 꾸준할 것
참을성 있는 - open창
작년에 연봉계약서에 서명을 하러 인사시스템에 접속했더니 새로운 기능이 생겨 있었다. 최근 몇년의 연봉 추이를 보여주는 거였다. 1억 위로 삐죽 솟은 점들을 보고 있자니 기분이 참 이상했더랬다.
그 이상한 기분의 정체는 뭐였을까.
10대에는 공부로 굴러서 명문대에 들어갔다.
20대에는 적성을 찾아 구르다가 좋은 회사에 들어갔다.
30대에는 절대 관두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구르고 굴러 연봉 1억이 됐다.
내 무기는 꾸준함이었다.
10대 때 평생 습관으로 단련한 루틴의 힘과 인내심 덕분에 "멈추지 않는 힘" 하나로 살아냈다. 돌아보니 참 대단하다는 말을 많이 듣고 지냈다.
안정권을 고집했던 고3 담임랑 싸우고 인서울 한 일.
행정기술고시(5급)1년 차, 단박에 2차 응시 기회를 얻었던 일.
누구 도움도 없이 애 셋 낳고 키우면서도 커리어를 붙잡고 버틴 일.
단단한 가치관과 꾸준함이 더해진 결과라고 믿는다.
10대에는 큰 물로 가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없다.
20대에는 대세를 거스르는 맛에 살았다.
30대에는 엄마도 아빠랑 똑같이 사회생활을 하는 걸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 하나로 버티었다.
하루하루를 참 열심히 살았다.
하루하루를 겁 없이 살았다.
돌아보니 이렇게 무소의 뿔처럼 살 수 있었던 건 무지(겁 없음)와 고통에 둔감(인내심)한 능력 덕분이었다. 인서울 입시가 얼마나 힘든지, 기술고시 패스에 평균 몇년이 걸리는지, 아이 셋 키우는데 돈이 얼마나 드는지. 이 모든 정보를 빠짐없이 수집했다면 장담컨데 난 아무것도 시작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일단 시작하면 힘이 들어도 오직 "내 기준"으로만 판단하고 계속할지 말지를 결정했다. 시작했던 것들 중 모든 걸 다 성공한 건 아니지만 최소한 시작했기에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한다.
지금 생각하면 참 어리석은 행동이었지만, 돌이켜보면 아무 것도 모른 채 시작한 덕분에 정상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 럭키드로우, 시작하지 못하는 진짜 이유 중
나처럼 무지와 노력으로 목표를 달성하는 사람의 특징은 꾸준하다는 것이다. 로또처럼 한 방이 아니다. 목표를 달성했다고 나의 일상이 바뀌지 않는다. 반대로 목표에 미달했다고 해서 쉽게 그만두지 않는다. 여기서 목표의 달성 여부는 정량적인 것이다. 언제까지 무얼 이루겠다, 혹은 얼마를 모으겠다, 처럼 동기를 잃지 않기 위한 설정이다.
꾸준함을 위해서 더 중요한 것은 무엇을 위해서 이 길을 가고 있는지, 하는 가치관이다. 그러면 정량적 목표에 일희일비 하지 않게 되고 가치관에 따라 살게 되니 자연스레 쉽게 그만둘 수 없다. 물론 샛길로 빠지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 목표의 점검주기가 꼭 필요한데 너무 짧아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나의 경우에는 정량적 목표는 2년 이내, 가치관의 점검은 대략 10년 주기가 되었던 것 같다.
사람마다 인생과제의 순서와 속도는 다르지만 인생의 각 단계에 당면한 과제는 건너 뛰지 말고 차근히 밟아가는게 좋다. 학업, 진로, 일, 결혼, 육아 같은 것들 말이다. 힘들어도 그 때만이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을 통해 우리는 조금씩 어른이 되어 간다. 선인들이 40대를 왜 불혹이라고 하는지, 50대를 지천명이라 하는지 알게 된다. 20대가 지천명 마인드를 가지면 애늙은이 소리를 듣고, 50대가 20대 마인드면 철없다는 소리를 듣는다.
내 40대는 어디서 구르게 될까.
아마 이전과는 삶의 패턴이 많이 달라질 것이다.
확실한 것은 여전히 꾸준하게 무언가를 할 거라는 사실이다. "불혹"은 무언가에 혹(惑)하지 않게 되는 때라고 한다. 40대에는 예전에 나를 옭아매던 것들에 혹하지 않는 인생을 살아보고 싶다. 늘 기대보다 목표를 초과달성하면서 살았지만 그게 즐거워서였기보다는 해야 하니까 했던 것 같다. 마치 소가 콧구멍에 뚫린 코뚜레에 매달려 앞으로 나가다 보니 밭이 다 일궈져 있는 것처럼.
이제 다시는 수능을 볼 일도, 신입사원이 될 일도, 갓난아기를 키울 일도 더이상은 없을 거고. 식당에서 백세주나 복분자주를 시켜도 괜찮은 시절도 충분히 살아봤으니까, 이제는 외부적인 것보다 마음이 충만한 삶을 살아볼 테다.
그렇게 몇 년 살다 보면 다시 뭔가 부족하다 느낄 때도 있을 것이고, 그래서 그것에 집착하게 될지도 모르지만 젊은 날의 그것과는 조금 다르지 않을까. 아직 인생을 다 알지는 못하지만 나이를 먹는 게 나쁘지만은 않은 거라면 아마도 그 때문이 아닐까.
주변 사람들에게 열심히 살아서 목표를 이루라는 자기계발서 같은 말은 별로 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뭔가 하나는 꾸준히 하라는 말은 꼭 해주고 싶다.
아무리 바빠도 내가 행복한 일 하나쯤은.
좋아서 하게 되는 일 하나쯤은.
3년간 꾸준히 유튜브 보며 새벽에 요가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