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길을 가던 나그네가 숲 속 넓은 공터에서 낙엽을 끌어모아 이부자리를 만들고 잠자는 멧돼지 한 쌍을 만났다. 나그네는 속으로 생각했다.
'사람을 만나면 위험할 텐데 저런 곳에서 잠을 자다니 참으로 어리석은 동물이군'
나그네는 어리석은 멧돼지가 걱정이 되어서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멧돼지에게 다가가 친절하게 일러주었다.
" 여보게, 아무리 생각이 없어도 그렇지. 이렇게 탁 트인 곳에서 잠을 자면 사람들 눈에 띄어 위험하지 않은가? 잘 보이지 않는 으슥한 곳에 가서 자리를 잡게나."
그러자 멧돼지가 대답했다.
"시야가 가려진 곳에 자리 잡으면 나도 밖을 볼 수 없다오. 그러면 자칫 그 자리가 막다른 골목이 될 수도 있지. 그리고 지금 눈에 띄어서 위험한 건 내가 아니라 당신인 것 같소."
그때서야 멧돼지의 날카로운 송곳니를 보고 제정신이 퍼뜩 든 나그네는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도망쳤다.
위 우화에서 나그네는 자기가 가진 편견에 사로잡혀 섣불리 멧돼지에게 조언을 하다가 목숨을 잃을 뻔했다.복잡한 현실 문제를 해결하려면 문제를 바르게 보는 "정견"이 가장 중요하다.
사람들의 현실고민을 해결해 주는 두 사람이 있다고 하자. 한 명은 고민하는 사람에게 답을 알려주고, 다른 한 명은 답을 질문자가 찾도록 밀어놓는다.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좋은 솔루션은 나와 상대의 처지를 골고루 감안해서 상황을 판단할 때 나온다. 누군가에게 답을 구하고자 한다면 상대가 나에 대해 많이 알고 있어야만 한다. 거기에 지혜까지 겸비했다면 금상첨화다.
하지만 상대는 생각보다 나에 대해 잘 모른다. 그래도 조언을 구하려 하니 듣는 사람은 대부분 문제를 근시안적으로 판단하고 솔루션을 제공한다. 잘 팔리는 처세술이나 자기 개발서 중에서도 확실한 솔루션을 제공한다고 해서 독자를 현혹하는 것들이 참 많다. 대개는 즉각적이고 빠른 효과를 기대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이용하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잠시 멈춰서 생각을 할 수 있게 해주는 글을 만나면 참 반갑다. 단점이라면 술술 읽히지 않아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것이다. 읽다가 글감을 떠올리게 되고, 읽다가 생각하게 되고, 읽다가 글을 쓰게 된다. 최근 읽은 책 중 하나를 소개한다.성공/처세 카테고리에 있는 책이지만 그보다는 본질적인 것들을 생각하게 한다. 매너리즘에 빠진 직장인 또는 사색을 즐기는 분들이 읽으면 좋을 책이다.
출근길의 철학
퇴근길의 명상
이 책의 저자는 커리어 컨설턴트라는 직업을 가졌다. 여러 가지 직장 고민상담 경험이 쌓이고 보니 직장문제는 정작 우리 인생문제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깨닫고 쓴 책이라고 한다. 제목보다 책 표지 문구가 참 마음에 든다.
직장에서는 처세와 능력으로 성공할 수 있다. 하지만 직장인으로서는 철학과 명상 없이 행복할 수 없다.
목차는 더 아름답다.
목차에서는 출근길의 철학과 퇴근길의 명상이 40번 반복된다. 출근길에는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는지 현실적인 고민, 퇴근길에는 이렇게 계속 살아야 하는지 이상적인 고민의 반복이 출퇴근을 무한반복하던 내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출근길에는 여러 가지 사연과 저자의 답변이 소개되는데 우문현답이라는게 이런 거지 싶다. 10줄 내외의 짤막한 고민 내용 안에서 현재 회사상황, 주변인물의 성향을 유추해 낸다. 그리고 사연자의 처지와 질문한 의도를 통틀어 몇 가지 대안을 제시한다. 저자가 강조하는 "정견", 즉 제대로 보기 방식인 것 같다. 보통 내용이 너무 철학적으로 가면 현실감 없이 허공에 떠돌기도 하는데 전혀 그렇지가 않다. 너무 냉철해서 현실감 있고, 진리라서 반박할 수 없다. 한 페이지 읽고 멈추고 또 한 페이지를 읽고 멈춘다. 퇴근길에는 실화, 우화, 만담 같은 에피소드가가미돼서 글의 메시지를 강조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있는 철학 없는 철학 할 것 없이 생각이 모이는 느낌이다. 내용이 어렵지도 않은데 자꾸만 멈추게 된다. 그리고 나도 독자가 멈추어 생각할 수 있는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한다. 아직 절반도 읽지 못했는데 참지 못하고 이렇게 서평을 쓰고 있는 걸 보니 이 책에 푹 빠진 게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