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운스럽게도 내 주변에는 항상 나에게 맞추어 배려해 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어릴 때는 부모님이 그랬고, 홍일점 시절 대학 선배들이 그랬고, 입사하고부터는 파트너들이 그랬다. 그들은 내가 아 하면 어 했고 내 말속에 숨은 맥락을 찾아주었다. 내가 내 마음을 알아차리지 못해 허우적댈 때도 넌 이런 생각인 거지? 라며 정신을 번쩍 들게 해 주었다. 언제부턴가 나는 그들이 해주는 게 내가 원하는 거라는 믿음을 갖게 되었다. 나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그들이 내 자아 한 켠을 차지했다.
문요한의 "관계의 심리학"이라는 책에서는 "바운더리"라는 개념으로 자기와 타인의 심리적 공간을 설명한다. 건강한 바운더리를 가진 사람은 나의 취향과 상대의 취향을 구별할 줄 알고 따라서 타인의 영향력과 자기중심 사이에서 받을 건 받고 걸러낼 건 걸러낸다. 바운더리가 희미한 사람(자아 미분화)은 나와 상대를 동일시하는 경향을 보이고 바운더리가 강한 사람(자아 과분화)은 상대와 동떨어진 경향을 보인다. 자아의 분화도가 타인과의 관계 형성에도 영향을 주는데 그렇게 분류한 네 가지 유형이 아래 그림이다. 관심이 생긴다면 상세 내용은 책으로 보는 것도 좋겠다. 자신의 관계 패턴을 이해하고 싶은 분들이 보면 좋은 책으로 추천한다.
글머리에 언급한 고마운(?) 주변인들 덕분에 나는 바운더리가 희미한 쪽으로 많이 기울어갔다. 순응형과 돌봄형 어디쯤에서 관계의 어려움을 겪어왔다. 그렇게 관계 맺는 방식이 유익한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고 이유도 알았다는 것은 변화 또한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은 거절하는 일이 매력적이라는 사실을 안다. 그리고 거절했을 때 나에게 올 불이익이 그다지 크지 않다는 것도 경험적으로 알아가고 있다.
가장 큰 변화는 나를 드러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바운더리가 희미하면 나의 취향을 드러내는 것이 관계를 방해한다는 생각을 갖기가 쉽다.상황의 맥락 상 내 생각이 맞다고 해도 관계를 위해서 할 말을 포기하고 상대의 의견에 따르는 경우가 있다.분명한 건 주체적인 스탠스를 갖는 것도 습관이라는 것이다. 내 생각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일이 반복되면 나를 억누르면서도 억누르고 있는지 모르는 상태가된다.
처음에 브런치 할 때 너무 좋았던 건 익명성이었다. 나를 아는 사람이 없는 곳에서 내 생각을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큰 해방감이었다.(그랬던 내가 참 귀여워 미치겠다 ㅋㅋ)
지금은 브런치나 블로그를 할 때도 예전보다는 나를 더 드러내게 되었다. 익명성과 드러냄 사이에서 팽팽하게 다투던 자의식이 그래도 조금은 드러냄 쪽으로 넘어온 것 같다. 더 좋은 조건과 연봉을 전제로 한 퇴사가 아니라는 것에 스스로 불편한 마음이 컸지만 드러내 놓고 보니 그런 퇴사라도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여러 이웃들의 다양한 삶을 간접적으로 접하다 보니 내가 알고 있는 세계가 다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결국 나의 퇴사가 실패라는 생각은 내가 알던 세계에서만 유효한 두려움이었다.
나의 두려움은 내가 발을 땅에 딛고 있을 때의 세계만 정상으로 봤기 때문인지도.
- 신경숙, 요가 다녀왔습니다.
참 비정상적인 건데 익숙하게 받아들여왔던 것이 또 하나 있다. 내 얘기를 아주 몇 명한테만 이야기해도 주변 사람들이 저절로 알고 나를 챙겨주었던 경험들이다. 그것은 마치 내가 어딜 가도 주인공인 것처럼 느끼게 했다. 그 사실이 항상 과분했고, 따라서 내가 가진 것과 역할이 나를 주인공으로 만들어주었을 뿐이라서 그 옷을 벗은 나는 그들에게 아무것도 아닐 거라고 믿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그 역할을 내려놓은 지금, 일을 같이 챙겨서 할 팀도 없고, 내가 파트너에게 줄 수 있는 일감도 없지만, 지금의 나를 기꺼이 나를 만나주고 연락해 주는 사람들을 알아보게 되었다.
동시에 남들이 나에 대해 얘기하는 것을 내 입에서 나온 말인 것처럼 묵인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내 이야기를 그들에게 전하기 시작했다. 그러고 난 이후 변화는 생각보다 컸다. 일단 왜 나를 챙겨주지 않는 거지,라고 서운해하는 일이 확연히 줄었다. 관계가 소탈하고 투명하게 변했다. 눈치껏 맥락을 짚어내려 노력하는 대신 주도적으로 맥락을 만들어가고, 몰랐던 것은 거리낌 없이 물을 수 있게 되었다.
이런 변화는 이론과 지식으로는 배울 수 없는 귀한 경험이다. 인생을 살아감으로써 하나씩 배우는 것들이라서 내 몸에, 뼈에 새겨지는 교훈이다. 지금 서투른모습도 미래의 나에게는 미치도록 귀여운 나일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