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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모 Apr 01. 2016

저기 어딘가에 내 꽃이 있겠지

누군가의 가시를 들여다 보고 싶을때.

닷새째 되던 날, 역시 양의 덕택으로 어린왕자의 생활의 비밀을 한 가지 알게 되었다. 그는 오랬동안 혼자 생각하던 문제의 결과인 것처럼, 밑도 끝도 없이 갑자기 이런 말을 물었다.
"양이 말이야, 작은 나무를 먹으면 꽃도 먹겠지?"
"양은 닥치는 대로 무엇이든지 먹는단다."
가시가 있는 꽃도 먹어?"
"그럼, 가시가 있는 꽃도 먹고말고."
"가시는 어디에 소용되는 거지?"
나는 그것을 알지 못했었다. 그때는 기관에 꽉 박혀 있는 볼트를 빼려고 한참 골몰하던 중이었다. 기계 고장이 매우 중대한 것 같이 생각되기 시작했고, 또 물이 얼마나 남지 않아서 최약의 경우를 당할 염려가 있었기 때문에 나는 무척 걱정이 되던 참이었다.
"가시는 어디에 소용되는 거지?"
어린 왕자는 한 번 물어 보면 그대로 지나치는 적이 없었다. 나는 볼트 때문에 신경이 곤두서 있었으므로 되는 대로 아무렇게 나 대답했다.
"가시 같은 건 아무짝에도 소용이 없어. 꽃들이 공연히 심술을 부리는 거지."
"그래?"
그러나 잠시 아무 말이 없다가 어린 왕자는 원망스러운 듯 나에게 이렇게 톡 쏘아붙였다.
"그건 거짓말이야. 꽃들은 연약해. 그리고 순진해. 꽃들은 그들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자신을 보호하는 거야. 가시가 있으면 무서운 존재가 되는 줄로 믿는 거야......"
나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때 나는 이런 생각을 하던 중이었다.
'요놈의 볼트가 끝내 말썽을 부리면 망치로 두들겨 깨버려야지.'
어린 왕자는 다시 내 생각을 훼방놓았다.
"아저씨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거야?" 꽃들이......"
"그만해 둬, 아무래도 좋으니까! 난 되는 대로 대답했을 뿐 이라구.
난 지금 중대한 일을 하고 있는 중이란 말야!"
그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중대한 일!"
어린 왕자는, 손에는 망치를 들고 손가락은 시커먼 기름투성이를 해가지고, 그에게는 추하게 생각되는 물건 위에 몸을 구부리고 있는 나를 쳐다보다가 이렇게 중얼거렸다.
"아저씨도 어른들처럼 말하는군!"
그 말에 나는 좀 부끄러워졌다. 그런데도 그는 사정없이 말을 이었다.
"아저씨는 모든 걸 혼동하고 있는 거야. 모두 뒤죽박죽을 만들어 놓고!"
그는 잔뜩 화가 나 있었다. 온통 금빛인 그의 머리칼이 바람에 흩날리고 있었다.
"나는 얼굴이 시뻘건 신사가 살고 있는 별을 하나 알고 있어.
그는 꽃향기라고는 맡아본 적이 없어. 별을 바라본 적도 없고 누구를 사랑해 본 일도 없어. 오로지 계산만 하면서 살아왔으니까.
그리고 온종일 아저씨처럼 '나느 바쁜 사람이다! 나는 바쁜 사람이다!' 하고 되풀이만 하고 있지. 그리고 그것 때무넹 잔뜩 거드름을 피우고 있고. 그렇지만 그건 사람이 아니야. 버섯이지!"
"뭐라고?"
"버섯이란 말이야!"
어린 왕자는 이제 분노로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수백만 년 전부터 꽃은 가시를 만들고 있어. 그렇지만 양들이 꽃을 먹는 것도 수백만 년째야. 그러면 어째서 아무 소용도 없는 가시를 만드느라고 꽃들이 그렇게 고생을 하는지 알아 보려고 하는 게 중대한 일이 아니겠어? 그리고 말이야, 내 별말고는 다른 아무 데도 없는, 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꽃을 내가 알고 있어. 그런데 어린 양은 자기가 하는 일이 무언지도 모르고 어느 날 아침 단번에 없애 버릴 수 있다면, 그래 이건 중대한 일이 아니란 말이야?"
어린 왕자는 얼굴이 새빨개져서 말을 이었다.
"수백만 개의 별들 중에 단 하나밖에 없는 꽃을 사랑하고 있는 사람은 그 별들을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어. 그는 속으로 '저기 어딘가에 내 꽃이 있겠지.' 하고 생각하고 있거든. 하지만 양이 그 꽃을 먹어 버린다면 그에게는 모든 별들이 갑자기 빛을 잃은 거나 마찬가지야! 그런데도 그게 중대한 일이 아니란 말이야?"
그는 말을 더 잇지 못하고 갑자기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해는 이미 진 뒤였다. 내 손에는 연장이 쥐어져 있지 않았다. 나는 망치며, 볼트며, 갈증이며, 죽음을 우습게 생각하고 있었다. 어떤 별, 어떤 떠돌이별 위에 나의 별, 이 지구 위에 위로해 주어야 할 어린 왕자가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를 품에 안고 흔들어 주며 말했다.
"네가 사랑하는 꽃은 위험하지 않아...... 네 양에다가 굴레를 그려 주마...... 네 꽃에는 갑옷을 그려 주고....... 또......."
나는 무슨 말을 해야 그의 마음을 감동시키고 그의 마음을 다시 붙잡을 수 있을지 알 수가 없었다.
......눈물의 나라는 그처럼 신비로운 것이다.
'저기 어딘가에 내 꽃이 있겠지.'

양이 그 한송이 장미를 먹어버린다면, 그에게는 모든 별들이 갑자기 빛을 잃은 거나 마찬가지야!


내가 살아가면서 기준을 두며 치르고 있는 중대한 일.


사실은 눈앞에 펼쳐진 것만을 위해.


지금 내 현실 앞에 놓여 있는 것들만 생각하게 되는 오류를 범하기도 한다.


어떠한 꽃 한 송이도.

우리 중 누군가에는 내 전부인것처럼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일 텐데......;

장미의 가시가 때로는 누군가에게 또 다른 아픔의 고통을 주기도 하겠지만,

어쩌면 험난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 장미 자신이 선택한 마지막 최선이었을지도 모른다.


모든 사물의 본질은 여리고, 갸날프다는 것을.

한번쯤은.......

한번쯤은.......

나도 누군가의 가시를 들여다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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