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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모 Apr 01. 2016

지나간 단상

하지만 나는 어려서 그 꽃을 사랑할 줄 몰랐던 거야

나는 그 꽃에 대해 좀더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어린왕자의 별에는 전부터 꽃잎이 한 겹만 있는 아주 소박한 꽃들이 있었는데, 그 꽃들은 별로 자리도 차지하지 않았고, 누구를 귀찮게 하는 일도 없었다. 어느 날 아침 풀 속에 나타났다가는 저녁이면 지곤하는 것이었다.
이 꽃은 어디서 날아왔는지 모를 씨에서 어느 날 싹이 텄는데, 다른 싹과는 다른 이 싹을 어린 왕자는 무척 주의해서 살펴보았다. 바오밥나무의 새로운 종류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작은 나무는 곧 자라기를 멈추고 꽃을 피울 준비를 하기 시작햇다. 커다란 꽃망울이 맺히는 것을 지켜보고 있던 어린 왕자는 이제 곧 그 꽃에서 어떤 기적 같은 것이 나타나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꽃은 연녹색 방 속에 숨어 언제까지고 아름답게 단장을 하기에 바빴다. 세심하게 빛깔을 고르고, 옷을 찬란하게 차려입고, 꽃잎을 하나씩 둘씩 다듬고 있었다. 그 꽃은 개양귀비꽃처럼 구겨진 모습을 밖으로 나타내고 싶어하지 않았다. 자신의 아름다움이 활짝 드러날 때에야 모습을 나타내려고 했다.
아! 정말이지 무척이나 애교스러운 꽃이었다. 그러니까 그의 몸단장은 그래서 며칠이고 계속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해가 막 떠오르는 시각에 그 꽃은 마침내 활짝 피어났다.
그런데 그렇게도 공들여 단장을 하고 온 꽃이건만 피곤한 듯 하품을 하며 이렇게 말했다.
"아! 이제야 겨우 잠에서 깨어났답니다...... 용서하세요.....머리가 온통 헝클어져 있네요......."
어린 왕자는 그때 감탄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넌 참 아름답기도 하구나!"
"그렇죠? 그리고 난 해와 같은 시간에 태어났답니다......"
꽃은 가만히 대답했다.
어린 왕자는 꽃이 그다지 겸손하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꽃은 너무도 감동적이지 않은가!
잠시 후에 꽃이 다시 말했다.
"아침식사 시간이군요. 제 생각을 좀 해줘요......"
당황한 어린 왕자는 신선한 물이 담긴 물뿌리개를 찾아 그 꽃에 뿌려 주었다.
이렇게 그 꽃은 태어나자마자 심술궂은 허영심으로 어린 왕자를 괴롭혔다. 가령, 어떤 날 자기가 가지고 있는 네 개의 가시 이야기를 하며 어린 왕자에게 이런 말을 한 것 따위가 그것이다.
"호랑이들이 발톱을 세우고 덤벼들어도 끄떡없어요."
"내 별에는 호랑이가 없어. 그리고 호랑이는 풀을 먹지 않아!"
어린 왕자가 이렇게 말하자 꽃이 상냥하게 대답했다.
'나는 풀이 아녜요."
"용서해 줘....."
"나는 호랑이는 조금도 무섭지 않아요. 하지만 바람은 질색이랍니다. 혹시 바람막이를 가지고 있으세요?"
'바람이 부는 게 질색이라고...... 식물로서는 안된 일이군,  이 꽃은 아주 까다로운 식물인데.'
하고 어린 왕자는 속으로 생각했다.
'저녁에는 바람막이를 해주세요. 당신이 살고 있는 이 별은 매우 춥군요.
시설도 좋지 않고요. 내가 살던 곳은......"
그러다 꽃은 말을 잇지 못했다. 그 꽃은 씨앗의 형태로 온 것이었다. 그러니 다른 세상에 대해서 아는 게
있을 리가 없었다. 그처럼 속이 들여다보이는 거짓말을 하려다가 들킨 것이 부끄러워진 꽃은 두어 번 기침을 했다.
"바람막이가 있느냐고 물었잖아요!"
"찾아보려던 참이었는데 자꾸만 말을 하고 있어서......"
그러자 그 꽃은 래도 어린 왕자에게 가책을 느끼게 할 양으로 기침을 더 심하게 했다.
그리하여 어린 왕자는 사랑에서 우러나오는 착한 뜻을 가졌으면서도 이내 그 꽃을 의심하게 되었다.
그는 대수롭지 않은 말들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몹시 불쾌해졌다.
하루는 어린 왕자가 내게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그 꽃이 하는 말을 듣지 않아어야 옳았어. 꽃이 하는 말은 절대로 듣지 말아야 해. 보고 향기를 맡으면 되는 거야. 이 꽃도 내 별을 온통 향기로 채워 주었지만, 난 그걸 즐길 수가 없었어. 그 발톱 이야기를 듣고 난 무척 약이 올랐었지만, 사실은 가여워했어야 했는데......"
그는 또 이런 이야기도 했다.
"나는 그때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했어. 그 꽃의 말이 아니라 행동을 보고 판단했어야만 했어.
꽃은 향기와 아름다움으로 나를 즐겁게 해주었거든. 결코 도망치지 말았어야 하는 건데!
그 꽃의 거만한 태도 뒤에 애정이 숨어 있다는 걸 눈치챘어야 하는 건데 그랬어.
꽃들은 마음과 어긋나는 말을 무척 잘하니까! 하지만 나는 어려서그 꽃을 사랑할 줄 몰랐던 거야."



"나는 그때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했어.
그 꽃의 말이 아니라 행동을 보고 판단했어야만 했어.
꽃은 향기와 아름다움으로 나를 즐겁게 해주었거든.
결코 도망치지 말았어야 하는 건데!

꽃들은 마음과 어긋나는 말을 무척 잘하니까!
하지만 나는 어려서 그 꽃을 사랑할 줄 몰랐던 거야."


지나간 단상위에 나는 서 있다.


그냥 무심하게 지나쳐 왔던 나의 과거들이.

그 길들을 바람처럼 달려

지금 이 시공간에 도착해 내 앞에 마주한다.


외면하고 싶은 어린 현실에서 나는 이렇게 말했다.

'왜 그때 나는 그렇게 도망쳐야 했을까......'


후회의 꼬리를 달고 서 있는 단상 저 너머에.

조금 더 사랑해주지 못한 시간들에 대한 애닳음으로 마음이 저려온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그 시간들 그 뒤편에서

안타까움으로 여전히 나는

현재의 이 길을 조용히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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