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타는 걸 좋아한다. 바람을 가르며 쌩쌩 달리다 보면 그 바람이 내 얼굴과 손, 몸선을 타고 흘러 지나간다. 그 상쾌하고 보드라운 바람결이 나를 위로한다. 그 맛을 알기에 힘든 오르막길도 뚝심 있게 밀고 오른다.
사실 내 자전거 인생의 시작은 이 상쾌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나는 자전거를 사람도 많고 차도 넘치는 북경의 도로에서 배웠다. 목숨 걸고.
2002년. 북경여행을 갔다.
당시 북경엔 내 친구와 친한 선배들이 있었다.
여행 내내 친구집에서 함께 지냈는데, 어느 날 친구 자전거를 한번 타봤다. 내 생애 두 번째로 탄 두 발자전거였다. 그렇게 단 두 번, 총 30분도 안 되는 시간 자전거를 타보고 생각했다.
'음. 두 발 자전거를 탈 수 있네 나도'
며칠 뒤, 다른 학교에 있는 선배와 점심을 먹기로 했다.
"버스는 길이 막히긴 해. 자전거로 오면 제일 빠르고 간단하긴 한데.."
"자전거? 나 자전거 탈 수 있어!! 자전거 타고 갈게."
스마트폰도 없던 그 시절, 가는 길을 대충 듣고 친구의 자전거를 빌려 타고 무시무시한 북경 도로를 호기롭게 나섰다.
그 중간 과정은 익히 눈에 그려질 것이다.
수없이 넘어지고, 신호를 무시하고 달리는 차들에 부딪혀 큰일 날 뻔하기도 하고.
자전거 경종 대신 목이 터져라 '뚜웨이부치(미안합니다)'를 외치며 페달을 밟았다. 친구의 자전거만 아니었다면 길바닥에 내팽개치고 싶었던 그날, 나는 왜 할 수 있다는 호기를 부렸을까.
돌이켜보면 늘 그런 식이었다. 내 몸의 한계치보다 '하고 싶다'는 의욕이, '할 수 있다'는 입이 늘 앞서나갔다. 자전거는 나에게 힐링이었지만, 동시에 내 의욕이 몸을 얼마나 혹사시키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거울이기도 했다.
그렇게 목숨 걸고 배운 자전거는 그 뒤로 한참을 타지 않았다. 그저 사람들에게 "나 북경 도로에서 자전거 배운 여자야"라며 가벼운 무용담이나 늘어놓는 용도였을 뿐.
하지만 자전거가 다시 내 삶으로 들어온 건, 역설적이게도 내가 가장 멈춰 서고 싶었던 순간이었다.
수년 전, 마음이 힘들어 자꾸 위축되고 혼자 동굴로 들어가려 할 때, 남편은 나를 밖으로 꺼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주말마다 남편과 아들의 손에 이끌려 걷고, 산을 오르고, 다시 자전거에 올라탔다.
그러던 어느 날, 늘 나를 지켜주던 남편과 아들을 뒤로하고 혼자 앞으로 쌩, 하고 페달을 굴려 달려보았다.
아직은 겨울을 품은 2월의 차가운 공기와 봄을 닮은 햇살. 그 차가운 공기가 내 얼굴을 스쳐 지나가는 순간,
내 머릿속을 꽉 채우던 소음이 잦아들었다.
'그래, 이 상쾌한 공기면 됐다. 나에겐 버틸 힘이 있고.
나를 지탱해 주는 소중한 사람들이 있으니.'
엄청난 힘이었다.
그 후로 자전거를 타는 것은 나에겐 곧 힐링이다.
근데 문제는 또 나의 그 '마음'에 있었다.
북경에서의 자전거 타기처럼, 나는 또 내 신체적 능력치보다 하고자 하는 마음이 늘 앞서는 거다.
운동신경과 체력은 해가 갈수록 나빠지는데 마음은 또 그때보다 더 앞서니 늘 넘어지고 다치고 피로로 가득하다.
돌이켜보니 자전거만 그런 게 아니었다. 내 삶의 많은 순간, 내 몸은 주책없는 의욕과 앞서 나가는 입을 뒷수습하느라 늘 골병이 들었다. 사서 고생한다는 말, 딱 나였다.
이제는 '해야 하는 일'의 무게보다 '내 몸이 버틸 수 있는 무게'를 먼저 가늠해 보려 한다. 그동안 내 의욕을 책임지느라 고생한 내 몸에게, 모든 걸 혼자 짊어지지 않아도 된다고 페달을 밟을 때마다 가만히 일러주기로 했다.
마음에게 쉼을 주듯, 이제는 내 몸에게도 숨 고를 시간이 절실하다는 것을 안다. 결국 지금은, 잠시 멈춰 서서 나를 보살펴야 하는 시기인 것이다.
다음엔 내 몸의 속도에 맞춰 천천히 페달을 밟아보려 한다. 자전거도 내 삶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