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한 겨울을 견뎌낸 나에게 찾아온 다정한 선물
한동안 내 인생은 지독한 '매운맛'이었다.
혀끝이 아리고 눈물이 쏙 빠질 만큼 독한 마음을 품어야만 하루를 겨우 버틸 수 있었던 그 시절.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내 세상이 조금씩 순해지기 시작했다.
봄이 오고 있었다.
입춘이 지나고 며칠 뒤면, 전과는 달라진 봄기운을 나는 기가 막히게 알아차린다.
"우와~ 이제 봄이 오네!"
하면 사람들은 잔뜩 웅크리며 의아해한다.
"무슨 봄이야. 이렇게 추운데. 아직 한겨울이야."
분명 어제와 같은 온도와 추위지만 그 공기를 감싼 햇살이 다르달까. 만물을 소생시키는 밝은 기운.
그 햇살 아래 발걸음만 내딛어도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긴 겨울을 버텨낸 남편과 나는 말없이 서로를 보며 웃는다. 이제 살 것 같다는 안도의 미소다.
봄! 언제부터 네가 이리도 나를 설레게 했을까.
20대의 나는 겨울을 좋아했다. 온몸이 얼어붙을 것 같은 추위에 코트로 몸을 따뜻하게 감싸고, 목도리를 둘둘 말아 그 속에 얼굴을 쏙 파묻으면 그것이 그렇게도 아늑하고 포근할 수가 없었다.
고작 그 이유로 나는 겨울을 좋아했다.
30대의 나는 여름을 좋아했다.
숨 막히게 헉헉대는 더위에 남들은 밖으로 나가기도 싫다는데, 땀을 삐질삐질 흘리면서도 나는 살맛이 났다. 온 세상이 푸릇푸릇해 어디에 눈을 두어도 그저 싱그럽기만 하다. 그까짓 더위, 그것만 참으면 온 세상이 나에게 눈호강을 시켜주는 것 같으니 말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봄이 오면 설레기 시작했다. 굳었던 마음도 사르르 녹아내리며.
봄이 좋다는 건, 겨울의 추위가 얼마나 고되고 생명을 갉아먹는지, 그 잔인함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고단함을 이겨내고 맞이하는 햇살이 쪼그라든 생명들에 비로소 숨을 불어넣는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내 몸의 모든 세포가 본능적으로 그걸 눈치챈다.
봄이 나를 살린다는 것을 말이다.
마음도 그렇다.
지금 누리는 이 평온이 기적 같은 이유는, 지난 몇해 내 마음이 겪어온 계절이 너무나도 혹독했기 때문이다.
그 시기, 내 마음은 매일이 전쟁이었다.
밖에서는 책임감이 목을 조르고, 안에서는 믿었던 울타리가 칼날이 되어 돌아오던 사면초가의 시기.
내가 품을 수 있는 모든 '악'을 짜내고 짜내 바득바득 싸워내야만 했던 날들.
그 치열함이 지긋지긋했다.
그렇게 우수수 쏟아져 내리는 그 시절의 불운도 결국은 이겨냈다. 내가 그 시기를 버텨낸 건 우연히 발견한 네잎클로버의 행운이 아니었다. 늘 내 곁에 함께 있어 주던 세잎클로버들 덕이었다. 남편, 언니, 친구들과 동료들, 그리고 작은 내 아이들까지.
그들 덕에 나는 다신 되찾을 수 없을 것 같은 너덜너덜해진 마음의 조각들이 서서히 제자리를 찾아갔다.
그렇게 몇 년이 흐른 지금, 내 세상은 온통 순한 맛이다. 독한 마음을 품지 않아도 되는 순한 세상이 난 좋다.
눈에 보이는 것이 다인 사람들과, 속이 환히 보이는 투명 컵에 마음을 꺼내 담아도 아무렇지 않은 일상.
치열할 것 없는, 때로는 나른하기까지 한 나의 일상들이 이제 내 마음을 녹인다.
겨울이 아무리 거세도 봄은 꼭 오고야 만다.
내 삶도 결국 그런 것이 아닐까. 언젠가 시련이 또다시 찾아와도, 기어이 나에게는 다시 봄이 찾아올 것이다.
지독한 겨울을 견뎌낸 사람만이 봄의 미세한 햇살이 얼마나 고마운지 안다.
그러니 이 봄은, 그 긴 겨울을 묵묵히 버텨낸 나에게 찾아온 다정한 선물일지도 모른다.
나는 이 순한 봄을, 기꺼이 마음껏 누려보련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