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코 찡긋'과 엄마의 '떨리는 손'

아빠의 아픔을 빌려 엄마와 화해하다.

by 모모

'쉭쉭' 기차는 빠르게도 달린다.


'정말 좋은 세상이다. 다행이다.'


KTX나 SRT가 없던 시절, 대구는 새마을호로 3시간 남짓. 무궁화호론 기차로만 4시간, 역까지의 이동시간을 합치면 6시간 넘게 걸리는 멀고 먼 길이었다.


이젠 이 좋아진 세상이 나를 빠르게 공간이동 해준다. 덕분에 한 뼘 더 일찍 목적지에 닿을 수 있을 것이고.


많은 생각들로 뒤죽박죽이 된 머릿속을 그냥 내버려 두고 찰나의 형태만 남기고 사라져 버리는 바깥 풍경을 바라본다. 그저 멍하니.


나는 지금 중환자실에 계신 아빠를 만나러 가는 길이다.


4일 전 점심을 먹으려 막 자리에 앉았을 때 언니에게 전화가 왔다.


" 모모야, 아빠 쓰러지셨대"


아빠가 주간보호센터 화장실에서 쓰러지셨고 심폐소생술을 하여 의식은 회복되었으며 구급차를 타고 병원으로 이동 중이라는 것이다.


응급실에 도착해 그 후 29시간 동안 많은 검사를 했다.

의사소통이 불가한 아빠는 모든 장비를 의료진의 힘으로 억지로 밀어 넣을 수밖에 없다.

아빠의 얼굴은 고통에 일그러지고, 눈에 눈물이 고인다. 굵은 바늘에 찔리면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아야" 한마디를 내뱉을 뿐이다.


그러곤 깊은 잠에 빠지셨다.


그다음 날 늦은 오후가 돼서야 아빠는 중환자실로 입원했다.


검사를 하고 잠든 아빠를 지켜보며 나의 시계는 과거로 흘렀다.

내 클라우드에 저장된 가장 오래된 추억 2007년. 아빠의 50대이다.


'이렇게 젊었네'


사진 속 아빠는 웃는다.

때론 무심한 표정이다.

그리고 다음 사진, 내 렌즈와 마주친 순간 아빠는 끝을 찡그린다.


내가 정말 좋아하던 아빠의 표정.


내 시계는 더 깊은 과거로 넘어간다.


국민학교 시절, 일요일 아침마다 온 가족이 힘께 성당을 갔다. 늦잠을 못 자는 것도, '초원의 집'을 제대로 못 보는 것도 다 참겠는데 신부님 강론 시간이 너무너무 지겨웠다. 지루함에 어쩔 줄 몰라하고 있을 때, 아빠가 내 손을 잡고 손바닥을 살짝 긁는다. 아빠를 향해 고개를 돌리면 아빠는 나를 향해 코를 찡긋하고 웃는다.

내 손을 꼭 잡으며.


마치 '지겹지? 아빠도 너~무지겨워' 라고 말하듯.

우리는 소리도 못 내고 그저 눈으로만 깔깔 웃었다.


현실로 돌아오니 아빠가 고통에 또 얼굴을 찌푸린다.

우리 아빠 아픈 거 싫어하는데.


아빠가 다쳐 상처가 나 "아빠 괜찮아?" 물으면,

코를 찡긋하며 눈을 작게 뜨고 온 얼굴에 장난기 가득한 웃음을 머금고 우리를 바라보며 엄살을 부리셨다.


"아이고~ 손에서 피가 철철 나네~"


어른이, 그것도 슈퍼맨 같은 우리 아빠의 엄살 부리는 모습에 우리는 깔깔 웃어댔다.


아빠의 '코 찡긋'은 나에겐 묘한 동지애와 다정함 그리고 유쾌함이었다. 때론 아무도 모르는 우리만의 비밀을 만든 것 같기도.


다시는 볼 수 없겠지.


아빠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아빠가 나를 기억하고, 내 이름을 불러주기를 바랐다.

아빠 목소리를 통해 나오는 내 이름을 간절히 듣고 싶었다. 헌데 이젠 그 마저도 바라지 않는다.


그저 아빠 손을 잡고, 아빠 팔짱을 끼고 산책하고 싶다.


봄의 싱그러움과 햇살을 느끼며 산책을 하고,

초록잎이 무성한 아파트 산책로에서 더위를 식히고,

바스락 거리는 낙엽을 같이 밟고,

추위를 많이 타는 아빠의 옷깃을 여며주고 작아진 아빠의 어깨를 꼭 감싸며 눈길을 함께 걷고 싶다.


언니와 난 지금도 아빠 팔베개를 하고 같이 눕곤 한다.

팔베개를 하면 아빠는 손으로 우리 어깨를 토닥토닥한다. 아빠에게 남겨진 본능이다.

손을 잡으면 손을 꾹꾹 눌러 잡고, 안으면 등을 토닥여주는.


주사 바늘과 호흡기를 달고 깊이 잠들어 있는 아빠 모습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하루 한번 20분, 2명.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다.


병원에서 엄마를 만나 아빠를 보러 갔다.

어제 면회를 다녀온 언니말처럼, 아빠 손발이 많이 부었다. 열심히 손과 발을 마사지하고 이야기를 했다.

이젠 아빠가 눈도 뜨고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고개도 돌렸다. 호흡기를 껴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말도 했다. 휴- 다행이다.


병원에서 나와 엄마와 밥을 먹으며 엄마를 바라봤다. 엄마가 이리도 작았던가.

그 곱디 고운 젊은 엄마 대신 작고 야윈 노인이 앞에 있다. 가느다랗고 뽀얗던 손가락은 거칠어졌고 병으로 떨리기까지 한다.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아쉬움에 헤어지지 못하는 연인처럼, 우린 서로가 안쓰러워 기차역을 왔다 갔다 서로를 바래다주기를 반복하다 기차시간이 되어 겨우 헤어졌다.


작고 야윈, 애처로운 엄마의 뒷모습.

수년간 품었던 미움과 야속함이 눈물과 함께 씻겨 내려간다.


내가 뭐라고 엄마를 미워하고 용서하려 했던 거지.

마음은 여전히 무겁지만 수년간 가슴 한편을 막아서고 꿈쩍도 하지 않던 돌덩이가 이제야 스르르 비켜가는 기분이다.


어쩌면 아빠는, 당신의 아픔을 빌려 우리에게 화해할 시간을 주고 싶었던 걸까.


집으로 올라가는 기차 안.

빠르게 지나가는 창밖을 내다본다.

아빠의 온기와 엄마에 대한 애잔함이 마음에 차오르며 마음속 얼음덩어리가 조금씩 녹아내려간다.


머지않아 이 눈부신 봄햇살 아래,

아빠, 엄마의 손을 잡고 나란히 산책할 수 있겠지. 그날이 곧 올 거라 믿어본다.


이제 온몸과 마음으로 봄햇살이 느껴진다.

비로소,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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