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라는 이름의 감옥을 부수고.
나의 지극히 사적인 어린 시절 이야기.
왜 갑자기 이 이야기를 꺼내려고 했는지 모르겠다. 그것도 연재까지 하면서.
끝끝내 그 이유를 찾지 못한 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다만 내 안의 무언가가, 이제는 제발 한번 뱉어내라고 나를 끊임없이 종용할 뿐이었다.
이야기를 마치는 지금도 내가 무엇을 원했던 것인지는 여전히 알 수 없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제 엄마가 더 이상 불편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엄마라는 존재가 더는 나를 짓누르지 않는다.
자식을 키우면 엄마를 이해하게 된다고 했다.
친구들도, 드라마도, 책도 다들 그렇다고들 했다.
나는 반대였다.
자식을 키우며 나는 엄마를 더 이해하지 못하게 됐다.
아이들이 커갈수록, 내가 나이가 들수록 의심은 깊어졌다.
'괜찮아', '그럴 수 있지', '사람은 다 다르니까' 라며 애써 눌러왔던 서러움과 억울함이 비집고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사람들은 또 말하곤 했다.
어릴 땐 엄마가 너무 미웠지만 나이 드니 이해가 된다고.
그렇게 미워하던 엄마의 모습에서 이제 내가 보인다고.
그런 이야기들 틈에서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엄마를 미워해도..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해도 되는 거였구나.'
아마도 그 깨달음이 이 이야기의 이유가 될 것이다.
나는 엄마와의 모든 순간을 내가 이해하고 받아내야 한다고 나 자신을 몰아세웠다.
이해되지 않으면 그 상황과 감정을 억지로라도 외웠다.
엄마의 무심한 등 뒤에서 나에게 늘 말했다.
'이건 내 삶이니 내 몫의 고통은 스스로 감내해야 하는 거야. 남에게 나의 고통을 전달하지 말자'라고.
그렇게 나는 위로를 받기보다 스스로 강해지는 법을 먼저 익혔다
하지만 어떻게든 해피엔딩을 만들고 싶어서 기를 쓰고 암기한 '이해'는, 결국 속에서 곪을 대로 곪아 무너져가고 있었던 것이다.
삶이 무너지는 순간 내 곁에 묵묵히 있어 주는 엄마.
내가 어떤 모습이든, 무조건 나 자체로 인정해 주는 엄마.
내가 가장 힘들었던 순간마다 절실했던 그 '엄마'는 내 곁에 없었다.
정작 내 곁이 비어있을 땐 보이지 않던 엄마는 자신의 모든 허물을 우리에게 맡기며 책임을 묻는다.
이미 내 몫 이상의 책임을 다해왔음에도, 엄마는 멈추지 않고 자신의 남은 생마저 우리에게 쏟아부으려 한다.
끊임없이 요구하고 더 큰 책임을 바라는 그 손길이, 기어이 나를 집어삼키려 한다.
내 삶을 지켜내기조차 벅찬 시간 속에서, 텅 빈 창고를 탈탈 털어 마지막 한 방울까지 내어주었던 나는 이제 더는 꺼내 줄 것이 없다
그럼에도 글을 마무리하는 지금, 나는 더 이상 엄마가 힘들지만은 않다.
약해진 엄마가 측은하고 짠하다.
연민 또한 그 출발점은 깊은 사랑임을 알기에.
사랑하기 때문에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 더는 미워하는 데 내 삶을 쓰고 싶지 않아 마지막으로 다정함을 선택했다.
내 삶의 결핍이 엄마 때문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내 삶을 지탱해 준 아주 사소한 다정함 역시 엄마에게서 왔음을 기억한다.
그 모순된 기억들이 나를 비로소 엄마로부터 독립하게 한다.
나 또한 아이들에게 결핍을 주는 부족한 엄마일 것이다.
하지만 내가 바랐던 그 '엄마'가 되어주려 노력했듯, 나의 아이들 또한 나보다 더 나은 부모, 어른이 되기 위해 나아갈 것이다.
그렇게 대를 거듭하며 우리는 조금씩 더 나은 인간으로 성장해가지 않을까.
여전히 분노의 불씨로 남은 외가에 대해서는 언니와 대화하며 마음껏 쏟아낸다.
더는 홀로 삼키거나 억지로 참아내지 않는다.
서로의 상처를 헤집어 증언하고, 함께 뜨겁게 분노하고 나면 비로소 고여있던 마음이 씻겨 내려간다.
그 대화의 끝은 늘 같다
"아, 속 시원해. 그렇게 살게 둬야지 뭐. 대신, 우리는 그렇게 살지 말자."
억지로 넓히지 않은 내 마음의 그릇은 딱 이 정도다.
그들을 다 품어 안기엔 내 안의 상처가 여전히 아리고, 내 그릇은 작다.
하지만 이 부족함을 인정하고 더는 미워하는 데 마음을 쓰지 않는 것.
그것이 나를 위해, 그리고 엄마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현재의 최선이다.
쏟아내는 일도 버릇이 되는 모양이다.
<엄마가 둘>을 끝내며, 머릿속엔 벌써 새로운 이야기들이 선명하게 차오른다.
멈춰 서 있던 발걸음을 떼어, 나는 이제 나의 다음 계절로 넘어간다
부족한 제 글에 아낌없는 공감과 위로를 보내주신 작가님들, 진정 큰 힘이 되었습니다.
얼굴도 모르는 타인에게 받는 따스한 연대가 저를 다시 숨 쉬게 했습니다.
누군가에게 위로와 용기를 줄 수 있는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저를 다시금 성장시킵니다.
이제는 제가 그 온기를 전하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은혜 갚는 두꺼비가 되어, 저는 오늘도 기어이 잘 살아내겠습니다.
마음 깊이,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