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두 번째 엄마: 황무지에 뿌린 작은 씨앗

가족인 듯 가족 같던 가족 아닌 사람들.

by 모모

엄마 잃은 한 꼬마가 있었다.


꼬마가 8살, 새엄마와 함께 낯선 가족들이 생겼다. 낯선 사람들, 그들의 세계는 꼬마가 살던 곳과 너무도 달랐다.


꼬마는 온 동네를 뛰어놀던 아이였다.


그네를 타고 싶어 하는 언니를 위해 아이들을 비켜 세우고는, 보초 서듯 그 앞을 지키던 아이.
동네 소독차 연기를 쫓아 온 동네를 우르르 뛰어다니던 아이.
코에 나무 가시를 붙이고 도깨비인 척, 뒷산 도깨비를 만나겠다며 밤마다 친구들과 뒷산을 누비던 아이.
유치원 캠프에서 공주 분장이 싫다며, 아프리카 인디언을 시켜달라고 바득바득 울던 아이.
외종사촌들과 아침부터 밤까지 시골 외갓집 동네를 뛰어다니고 삼촌의 경운기를 타며 신나 하던 아이.

"나는 공주가 싫어, 새까만 인디언이 하고 싶다고!! "

그런 아이였다, 꼬마는.


기어이 공주 분장을 지우고 시커먼 인디언 분장을 하고야 신이 나 웃던 아이.


하지만 새로운 세상은 화려하고 눈부셨다.

그 세련됨 앞에 꼬마는 기가 죽었다.


꼬마는 더 이상 울지 않았다.

인디언 분장을 하겠다며 바득바득 우기던 고집은 어느새 자취를 감췄다. 대신 어른들의 표정을 살피고, 자신의 일을 알아서 척척해내는 '착하기만 한' 아이가 되었다.


그들과 가족이 되기 위해, 꼬마는 그동안 머물던 세상의 방식을 지우고 버렸다.

그들처럼 입고, 그들처럼 생각하려 애썼다.

하지만 사치와 보여주는 삶이 곧 자부심이었던 그들과, 소박하고 편한 것에 마음이 쓰이는 꼬마는 삶의 가치가 달랐다. 애초에 섞일 수 없는 물과 기름이었다. 그들과 다름을 느낄 때마다 꼬마는 스스로가 틀린 줄로만 알았다. 그렇게 스스로를 몰아붙였다.


시간이 흘러 꼬마는 어른이 되었다.

여전히 꼬마는 그들과 섞여야만 했으나, 섞일 수는 없었다. 꾸미면 꾸밀수록 자기 옷이 아닌 억지스러웠고 어색했다.


​어느덧 꼬마의 머리엔 흰머리가 하나둘 생겼다.

그 세월이 흘러서야 꼬마는 깨달았다.

​그들은 단 한 번도 꼬마를 가족으로 여기지 않았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들은, 꼬마 자신을 부정해 가며 참아낼 가치조차 없었음을.


꼬마의 유일한 방패였던 아빠가 쓰러지자, 그들은 비로소 본색을 드러냈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덮어두었던 외면과 차별이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꼬마를 찔렀다.

오랜 기간 짓눌려온 꼬마의 마음이 커다란 굉음과 함께 터져 나왔다.


한바탕 전쟁을 치르듯 마음을 쏟아낸 뒤에야, 꼬마는 그들을 마음에서 도려냈다. 남의 정원에 억지로 심겨 있던 자신을 스스로 뽑아낸 것이다.

그제야 마음은 안정을 찾았지만, 전쟁이 휩쓸고 간 자리는 공들여 쌓아 온 모든 것들이 무너진 황무지였다.


꼬마는 이제 용기를 내어 본다.

작고 따뜻한 볕을 좋아하던 아이는 황무지에 자신을 닮은 씨앗들을 뿌린다.


드디어 봄이 왔다.

황무지 아래로 깊게 내린 뿌리가 기분 좋게 간지럽다.

머지않아 싹이 트고, 제멋대로 자라나 열매도 맺을 것이다. 남의 정원에서는 본 적 없는, 오로지 꼬마 자신을 빼닮은 소박하고 정다운 꽃.


꼬마는 이제야 자신만의 계절을 산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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