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절함이 닿은 순간

그날의 떨림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

by 모모

난 욕심이 없는 편이다.

욕심이 없다는 건, 간절한 것이 없다는 말이기도 하고, 간절함이 없다는 건 사실 두려움이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려서도 갖고 싶은 것을 사달라고 조른 적도 별로 없었고,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 진 빠지게 노력을 했던 적도 없었던 것 같다.

열심히는 살았으나, 혼을 갈아 넣은 적은 없다고 말하는 편이 더 맞겠다.

그 어떤 것도, 굳이 그렇게까지 할 만큼 나의 귀차니즘을 뚫고 나를 몰입시킬 가치가 없었던 것이었는지도.


흠. 이 정도면 충분한 것 같은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겪는 인생의 첫 번째 관문, 대학!

당시 수능 결과만 보는 특차와 논술, 내신, 수능을 합쳐서 보는 일반전형.

이렇게 두 가지 방식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느 대학, 무슨 과를 가야겠다는 뚜렷한 목표도 없었지만, 열심히는 공부했고 수능 성적도 나쁘진 않았다.

헌데 수능 끝난 후 더 이상 공부가 하기 싫었다.


나...그냥 특채로 갈래.


대학을 정하고, 과를 정할 때도, 아빠와 언니, 담임선생님과 스무고개를 하듯 정했던 것 같다.


머 그 정도면 충분한 것 같았다.


두 번째 관문, 직장을 들어갈 때도 그랬다.

대학에서 대기업 취업을 위해 열하게 부할 이유도, 그 정도의 욕심도 내겐 처음부터 없었다.

중소기업도 나는 나쁘지 않았다.


그렇게 취업은 했으나, 미를 느끼지 못해 사표를 내버렸고, 또 '이 정도면 괜찮은' 두 번째 회사를 들어가 28살에 두 번째 사표를 냈다.

부모님께 들이밀 '두 번째 사표의 명분'을 뒤늦게 찾다가 얻어걸린 것이 바로 '공무원'이었다.

난 그렇게 공무원이 되었다.


나는 인생의 중요한 관문 두 개를 적당히 구색을 갖추는 것으로 정해버렸다.


그런 내게 처음으로 간절함이 생겼으니, 바로 결혼이다.

그와 결혼을 결심하고 말씀드렸을 때, 부모님은 꽤 완강하게 반대를 했었다.

그리고 그런 완강함에는 생떼도, 눈물로 가득한 호소도 먹히지 않았다.


이번엔 나도 꽤- 간절했다.


마지막 수단으로 사용한 것이 '내 진심을 담은 편지'였다.

4장은 족히 넘었던 것 같다. 밤새 한 자 한 자 정성을 다해 내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아 내려갔다.

중간중간 눈물이 흘렀다.


우편함에서 내 편지를 받은 아빠 또한 밤새도록 편지를 읽고 또 읽으며 고민을 했다고 했다.

후에 말씀하셨다.

편지 중간중간 떨어진 내 눈물 자국에 마음이 움직였다고.

'내 딸의 행복을 위한 것이었는데, 결국 나 때문에 내 딸이 우는구나.'


그다음 날 이른 아침, 아빠는 내게 전화를 걸어 딱 한마디 했다.

"이번 주말에 같이 내려와!"


그렇게 나의 간절함이 닿아 나는 결혼했다.

그리고 지금은 누구보다 따뜻하고 든든한 둘째 사위가 되었다.


아직도 대부분 나는 그렇게, 적당한 선을 유지하며 살고 있다.

이 정도면 괜찮은 것 같아!


하지만 무언가 강하게 내 마음을 움직이는 때가 있다.

그 신호를 나는 이제 알 것 같다.

그리고 그 신호가 오면 즉각 행동에 옮긴다.


나에겐 브런치 작가가 되는 길이 바로 그랬다.

그때의 간절함이 나를 결혼으로 이끌었다면, 이번엔 글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브런치 작가가 되어 처음로 글을 올리는 지금,

내 마음속 떨림이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에게도 그대로 닿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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