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지 않아도 괜찮은 곳

병원은 슬픔이 허락되는 유일한 장소였다.

by 모모

2019년 8월.

아빠는 경도인지장애, 엄마는 파킨슨을 진단받았고, 그때부터 우리는 주기적으로 병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아빠가 치매 진단을 받던 날은 2020년 6월이었다.

코로나가 막 퍼져 온 나라가 멈춰버린 시기.

대구가 봉쇄되어 부모님이 병원에 오지 못하던 그때, 약은 대리처방으로 겨우 이어갔고,

그날도 혼자 검사결과를 들으러 갔다.


“예상보다 너무.. 빠르게 진행됐습니다.”

의사조차도 진행이 너무 빨라 당황스러워했다.

나는 머리속이 하얘졌다.


불과 10개월 전, 경도인지장애 진단받았을 때 의사는 말했다.

“관리만 잘하면 이대로 쭉 갈 수도 있으니 너무 걱정 마세요.”라고.

그리고 아빠는 정말 잘 관리했다.

하라는 건 열심히 했고, 하지 말라는 건 병원을 나서는 순간 끊었다.


헌데, 1년도 되지 않아 치매 판정을 받은 것이다.


나는 후들거리는 온몸을 간신히 버티며 결과지를 들고 진료실을 나와 병원 옥상 주차장으로 겨우겨우 올라갔다.

떨리는 손으로 차문을 닫고, 운전석에 앉자마자 운전대에 얼굴을 파묻고 울기시작했다.

억장이 무너진다는 것이 이런 기분일까.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폭풍처럼 쏟아내렸다.


더 이상 소리도 안 나올 만큼 한참을 울다 고개를 드니, 창밖에서 몇몇 사람들이 지나가며 내 차를 힐끔거렸다.

내 울음소리가 새어 나갔나 보다.

꺼이꺼이 괴성을 내며 통곡을 했는데, 그런데 이상하게도 하나도 창피하지 않았다.


여긴 병. 원. 이니까.


병원에서는 억장이 무너지는 일도, 끝없이 울어버리는 일도 당연하게 이해되는 곳이니까.


그날 이후, 병원은 내게 그런 공간이 되었다.


모든 것이 허용되는 곳.


엄마와 아빠는 점점 느려지고 있다.

초기단계를 넘어 인지력을 거의 상실한 아빠와의 한걸음 한걸음은 참 조심스럽고,

많은 이동 시간이 필요하기도 하다.

본인의 행동이 민폐라 여겨 주눅 드는 엄마도,

그런 엄마아빠를 안심시키면서도 주변사람들에겐 연신 미안함의 눈빛을 보내며 부축해야 하는 나도, 다른 곳에서는 늘 위축되지만 병원에서는 다르다.


여기선 느려도 괜찮다.

서툴러도 괜찮다.

병원은 환자와 보호자 모두 조금은 더 당당해도 되는 곳이니까.


그래서 병원에서 만큼은

"괜찮아, 엄마. 괜찮아, 아빠."

이 말이 유난히 편하게 나온다.


사람은 역시 적응의 동물인가 보다.

한때는 두려웠던 곳이 이렇게 나를 위로하게 될 줄이야.


괜찮지 않아도 괜찮은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