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치는 인연에도 내 마음은 살랑인다
인연(因緣)
어떤 사람이 만나게 되거나 일이 성립하게 되는 원인과 조건이 실처럼 이어져 만들어진 관계
살다 보면 잠시 스쳐가는 만남인 줄 알았던 사람들이
뜻밖에 실처럼 이어져 삶의 또 다른 재미와 감동, 위로를 주기도 한다.
나는 이런 알 수 없는 흐름들이 참 재밌고 신기하다.
두 딸이 어렸을 때, 아이들을 예쁘게 꾸며 입히는 것이 내게는 작은 기쁨이었다.
카카오스토리가 한창이던 시절,
딱 내 스타일인 아동복을 공구하는 '그녀'를 알게 되었다.
며칠을 기웃기웃하다 첫 구매를 하던 날,
사이즈랑 이것저것 물어보기 위해 카톡을 주고받았다.
평범한 대화였지만, 묘하게 느낌이 좋았다.
그날을 시작으로 우리의 거래는 이어졌고,
점차 카카오스토리도 공유하고, 안부도 묻는 사이가 됐다.
내가 셋째를 임신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도 셋째를 임신했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어쩜 이런 우연이 있냐고 우린 한참 동안 육아와 임신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 사이엔 자연스레 이야깃거리가 쌓여갔다.
셋째의 백일을 앞두고 한창 준비 중이던 어느 날, 택배 하나가 도착했다.
그녀였다.
백일 축하 편지와 함께, 삼 남매 파티용품과 액세서리가 가득 들어 있었다,
"이렇게 꾸며서 사진 찍으면 예쁠 것 같아요."
마음이 따뜻해졌다.
예상치 못한 호의 앞에서 난 늘 나를 한번 돌아보곤 한다.
‘내가 머라고. 나한테 이런 걸...’
난 우리 딸들의 옷을 샀을 뿐이다.
그것도 내가 원하는 옷을, 좀 더 저렴한 가격으로.
그건 모두 나를 위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나를 마음에 담아주었다.
참 고마운 일이다.
그날 그녀의 따뜻하고 위트 있는 선물과 편지는 잔잔한 감동으로 남았다.
얼마뒤, 그녀는 아동복 일을 접고, 분식집을 열었다.
카스를 통해 본 그곳은 아기자기하면서도 아늑해 보였다.
딱 그녀다웠다.
시간이 또 흘렀다.
가족여행에서 돌아오던 어느 날,
조수석에서 꾸벅꾸벅 졸다 눈을 떴는데,
마침 그녀의 동네 이정표가 눈에 들어왔다.
‘여보! 나 그 분식집 가볼래.
꼭 가서 인사하고 싶었거든’
분식집 이름 하나와 지역만으로 검색해 찾았고, 설레는 마음으로 분식집으로 향했다.
깜짝 방문한 우리를 보고 그녀는 놀라 까르르 웃고.
그 간의 이야기도 나누며,
김밥과 떡볶이도 먹었으면...
참.. 좋았을 텐데..
아쉽게도 우린 그날 만나지 못했다.
분식집 문은 닫혀 있었고, 카톡을 보내고 기다렸지만,
지쳐가는 아이들 때문에 아쉽게도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카톡이 왔다.
잠시 일이 있어서 분식집 문을 닫고 자리를 비웠다고.
만나지 못해 아쉽고, 이렇게 와줘서 고맙다며.
물론 우리가 정신적인 교감을 한 것도,
속 깊은 대화를 한 것도 아니다.
우린 서로가 어떤 성격인지, 어떤 배경을 가지고 있는지,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우리는 서로의 취향을 공유했고,
비슷한 시기, 비슷한 삶을 지나면서 마음을 나눴다.
그 순간순간 따뜻했고, 그거면 충분했다.
살다 보면 수많은 사람들이 스친다.
어떤 실은 그 순간 끊어지고,
어떤 실은 느슨하게 이어지기도 하고,
또 어떤 실은 오래도록 내 곁에 머물기도 한다.
그리고 언젠가 그 실들이
뜻밖의 순간 어딘가에서 다시 이어지기도 한다.
어느 날 옛 동료에게 전화가 왔다.
그 동료와 또 다른 사람이 서로 아는 사이였는데,
대화 중 우연히 ‘나’라는 공통점을 발견하곤 흥분해서 나에게 전화를 한 것이다.
그런 일로 셋이 다시 만나 놀라움과 반가움으로 각자의 추억을 나누었다.
'아, 실은 이렇게도 다시 이어지는구나.' 생각했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순간들이 주는 행복.
그리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작은 연들이 생각보다 내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든다.
때로는 관계의 깊이가 아니라,
그 속에서 번져오는 온기가 나를 울릴 때가 있는 것이다.
가끔은 상상해 본다,
지금의 내 옆의 이 사람들이
시간이 흘러 또 어떤 모습으로 내 인생 앞에 다시 등장할지.
인연의 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멀리까지 이어져 있을지도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