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게 남기고 싶은 한밤의 거짓말.
막내아들은 추석이 지나자마자 바로 크리스마스 모드로 돌입한다.
설날, 생일, 어린이날, 추석을 거쳐 크리스마스로 한해의 대미를 장식하는 거다.
그리고 그때마다 어떤 선물을 골라야 할지 머릿속이 바쁘게 돌아가는 것이 눈에 보인다.
곧 크리스마스다!
난 성인이 된 후에도 꽤 오랫동안 설렘을 가득 안고 크리스마스를 기다렸다.
산타가 착한 어른이라며 선물을 주진 않겠지만,
캐럴, 트리, 반짝이는 크리스마스 장식들, 보기만 해도 포근한 레드체크, 심지어 살결에 닿는 차가운 공기도, 그리고 운이 좋다면 눈까지.
설렐 이유는 넘치고 넘쳤다.
초등학교 2학년 크리스마스.
새벽에 살짝 잠이 깼다.
다시 자려는 찰나, 방문이 열리고 엄마랑 아빠가 숨죽여 들어오셨다.
어둠 속에서 누가 언니고 난지 확인을 하셨고, 소곤소곤 무언가를 속닥이셨다.
그리고 부스럭 거리는 무언가를 내려놓는 소리가 들렸고, 다시 숨죽여 방을 나가셨다.
‘뭐지?’
손을 올리니 박스를 싼 포장지가 만져졌다.
‘우와~선물이다’
스르르 난 바로 다시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언니의 호들갑스러운 소리에 잠을 깼다. ‘산타할아버지한테 선물 받았어!’라는.
하지만 난 알지 않은가.
그건 엄마 아빠가 두고 간 그 선물이란 걸.
"언니~ 그거 산타 선물 아니야, 엄마아빠 선물이야~"라고 말하려고 거실로 따라 나갔는데..
"어머나, 산타할아버지한테 선물 받았네!"
엄마아빠까지 같이 놀란 표정으로 맞장구를 치고 계셨다,
‘음.. 이건 뭐지?’
조금 고민했던 것 같다.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
‘산타 선물 아니잖아! 내가 어제 다 봤어, 이거 엄마 아빠가 두고 간 거자나!’
라고 말하며 찬물을 끼얹을 뻔. 했다.
하지만, 그 짧은 순간 난 본능적으로 촉이 왔다.
눈 질끈 감고, 지금 모른척해야.
그래야 앞으로도 계속 산타의 선물을 받을 수 있단 걸.
그렇게 노선을 정하고, 나도 곧 그 환희의 순간을 함께 했다.
누가 주는 것이 머가 중요한가.
그 후로도 난 계속 산타의 선물을 받았고, 크리스마스는 매해 신나고 행복했다.
난 우리 아이들에게 크리스마스 동심을 좀 오래 지켜주고 싶었다.
산타가 좀 오래 머물 수 있게.
그래서 ‘산타 지키기’에 굉장히 오랫동안 공을 들였다.
크리스마스이브, 아이들에게 산타할아버지께 드릴 간식과 카드를 적어서 올려놓게 했다.
그러곤 깊은 밤, 나는 산타가 되어,
간식을 먹은 흔적을 남기고,
트리 밑 혹은 소파 위에 선물을 올려놓는다.
마지막으로, 잘 쓰지도 못하는 필기체로 아이들에게 간식에 대한 답례카드를 남긴다.
다음날 새벽, 아이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산타 할아버지 고맙습니다" 외치며 난리가 난다.
큰딸이 초등학교 4학년 때,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조바심을 내며 며칠을 따라다니며 물었다.
"친구들이 산타는 없대. 다 엄마 아빠가 주는 거래"
난 그때도 끝까지 산타를 지켰다. 그게 머라고.
"산타는 믿는 아이들한테만 선물을 주는데, 엄마아빤 진짜 아니거든. 그런데 OO가 산타를 믿지 않으면 선물을.... 이젠.. 못 받겠네?!"
아이도 어설프게 산타를 의심했다가 선물을 못 받느니 그냥 믿는 쪽을 택한 것 같았다.
첫째와 둘째는 6학년 언저리까지 그렇게 애써 산타를 믿으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막내는 4학년인 올해 산타가 우리임을 이미 다 아는 눈치다.
그럼에도, 크리스마스 선물은 산타여야 하기에,
갖고 싶은 선물을 몇 달에 걸쳐 신중하게 고른 후 나와 신랑에게 카톡을 보낸다.
‘엄마가 산타할아버지랑 친하니까. 올해 난 이거 갖고 싶다고 꼬옥~ 전해줘’라고 신신당부하며.
생떼가 유독 심했던 막내의 어린 시절엔
"산타할아버지는 착한 어린이한테만 선물 주셔.
OO만 못 받으면 어쩌지"라든지,
"앗, 잠깐! 산타할아버지가 출발 전, 마지막 체크를 하려고 엄마한테 텔레파시 보내는데, 머라고 해야하나~" 하면, 아이는 어쩔 줄 몰라하며 동공이 마구 흔들리고 알아서 떼를 멈추곤 했다.
그때의 산타는 내 산타였던 것 같기도 하다.
내가 이렇게까지 산타를 지켰던 이유는,
그저 어린 시절, 조금은 유치하지만 설레고 신나는 크리스마스 추억을 만들어 주고자 함이었다.
오직 이거였다.
가끔 삶이 버거워질 때, 난 따뜻하고 행복했던 그 언젠가의 추억들을 꺼내며 버텼다.
어렸을 때 우리는 기념일이 되면, 풍선을 불어 거실을 가득 채우고 새벽까지 스케치북에 축하 메시지를 꾸며 벽에 덕지덕지 붙였다. 눈을 뜨자마자 서프라이즈를 해주려고.
준비할 때의 그 흥분감과 키득거리던 순간들이 스쳐간다.
어느 날인가 눈이 퉁퉁 붓도록 낮잠을 자고 일어나니, 엄마는 자느라 점심을 거른 나를 위해 김밥을 말고 계셨다.
방문을 열자마자 콧속을 파고든 그 고소한 김밥향과 김밥을 말던 엄마의 뒷모습을 기억한다.
폭우가 내리던 어느 여름날, 아늑한 텐트 안에서 잠을 자는데, 밤새 비를 맞으며 텐트 옆 도랑을 파던 아빠의 숨소리와 툭탁 거리는 소리가 어렴풋하게 떠오른다.
12월 내내 캐럴만 듣는 나를 위해,
매해 12월, 새 캐럴 카세트테이프를 사서 내 손에 쥐어주던 엄마의 눈빛이 그립다.
그때 받은 온전한 사랑과 보살핌으로 난 지금까지 살아왔다. 어려서도, 성인이 되어서도.
우리 아이들에게도,
훗날 피식거리며 떠올릴 수 있는 따뜻한 크리스마스 추억을 만들어주고 싶다.
먹고 싶다는 음식은 머든, 늘 도깨비처럼 뚝딱 만들어주는 요리하는 아빠의 뒷모습을 오래 기억해 줬으면 좋겠다.
그렇게 우리만의 작고 소중한 추억을 만들고 또 만들며. 아이들의 마음을 행복한 기억으로 가득 채워주고 싶다.
훗날 언제라도, 필요할 때 꺼낼 수 있게.
올해는 또 어떤 추억을 만들어줄까...
행복한 고민을 해보는 설레는 12월이다.
우리 모두,
즐거움 가득한 따뜻한 크리스마스가 되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