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확인하는 가장 서툰 방식에 대하여
우리 세 아이 중 막내아들이 유독 응석과 어리광이 심하다.
천둥벌거숭이 아기 시절엔 끝도 없이 울고 매달렸고,
신랑과 주변 사람들은 그 응석을 다 받아주는 나를 보며 혀를 차다가도, 신기하다는 듯 쳐다보곤 했다.
사실, 나는 그게 내 업보라고 생각했다.
내가 딱 그랬으니까.
나는 무남 2녀의 막내였다.
언니하고 나, 고작 둘째인 거지만,
난 막내의 특권을 아주 야무지게 누렸다.
난 일요일 아침이면 늘 늦잠을 잤다.
정확히 말하면, 제일 마지막까지 버티기 게임이라도 하듯, ‘자는 척’을 했다.
귀와 신경은 온통 거실로 향한 채.
‘엄마 밥 준비하네. 언니가 숟가락 놓네.
오, 이제 밥 먹겠네.’
식사 준비가 끝나갈 즈음, 가족들은 나를 찾는다.
이젠 아빠 차례다.
언니와 엄마는 내 응석을 못 말린다며 손사래를 쳤지만, 아빠는 언제나 내 편이었다.
아빠는 방문을 열며 다정하게 나를 깨우셨다.
“모모, 이제 일어나야지~”
“아~아아아앙~~”
자는 척 중인 난 알 수 없는 타령조로 어리광을 부렸다.
그러면 아빠는 나를 안아 일으키고 어깨를 주물러주며 토닥였다.
그렇게 몇 번의 작은 연극을 주고받은 뒤
나는 마지못해 일어난 척하며 거실로 나갔다.
우리 부녀의 등장으로 일요일 아침 의식은 끝난다.
이제 온 가족이 다 같이 모여 즐겁게 아침식사를 하며 휴일은 시작된다.
헌데, 난 그때도 이미 알고 있었다.
응석에도 ‘선’이 있다는 걸.
그 선만 넘지 않으면
나는 아빠의 사랑을 확인하며 행복했고,
아빠는 아직 품 안의 딸임을 느끼며 흐뭇할 수 있었다.
단, 내 레이더의 착오로 그 선을 넘는 순간,
분위기는 애매해지고 나는 눈칫밥을 먹어야 했다.
그래서 일요일 아침 내 레이더는 늘 바쁘게 움직였다.
그날의 적정선을 찾기 위해-
그렇게 혼자 신경전을 벌이면서까지, 막내짓을 포기하지 못했던 이유는 단순하다.
‘이렇게까지 하는데도 나를 사랑한다고?’
‘역시 아빠는 언제나 내 편이네.’
응석은, 사랑을 확인하는 내 방식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도 아들의 응석을 받아준다.
그리고 사실 난, 그 모습이 꽤 사랑스럽다.
응석을 부리는 중 내 반응을 슬쩍 보며 짓는 그 안도와 기쁨의 표정이.
사람은 누구나 사랑받고 싶어 한다.
그리고 내가 어떤 모습이든 무조건 내 편이 되어줄 사람을 필요로 한다.
그 무조건적인 사랑이 살아가는 데에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이제 나는 너무도 잘 안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에게 각각의 방식으로 늘 무언의 신호를 보낸다.
“엄만 언제나 널 사랑해.
언제나 네 편이야.”
그 믿음이 공기처럼 스며들어
언젠가 세상이 버거워질 때
다시 일어날 힘이 되길 바라며.
막내에게 ‘응석’은 그 사랑을 확인하는 방식일 뿐이다.
아빠가 나에게,
그리고 내가 아들에게 그러했듯,
그 아이도 누군가에게 그렇게 사랑을 건네겠지.
사랑은 모양을 바꿔 조용히 대물림된다.
나는 그게 참 예쁘다.
그러니 아들아,
응석은 괜찮아.
다만 딱 하나만 기억하자.
선은 지켜야 오래간다.
응석에도, 사랑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