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면죄부

by 모모

사람을 미워하는 일은,

생각보다 나를 먼저 갉아먹는다.


나는 가끔, 굳이 내가 안 가져도 될 죄책감을 들고 산다.게 잘못한 일이 없어도, 이상하게 스스로 내 마음 한 곳을 깊게 짓누르며.


2년 전,

나는 죽도록 미워하는 사람이 있었다.


당시 근무하던 곳의 직원이었는데,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은, 말 그대로 ‘빌런’이었다.

그 사람 때문에, 나는 나와는 평생 연이 없을 것 같았던 정신과를 다니게 되었고,

처방약 없이는 출근조차 버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때 알았다.

사람을 미워하는 일이 얼마나 지치는 일인지,

그 미움이 결국 내 마음과 일상을 어떻게 병들게 하는지를.


당시 TV에서는 악의 무리를 시원하게 처벌해 주는 드라마들이 많았다.

그런 드라마를 볼 때마다 내 마음속에선 그 사람을 악당으로 놓고, 내가 드라마 주인공이 되어 그를 잔인하게 처단했다.


심지어 뉴스에서 각종 사고 소식을 들을 때마다,

왜 그 사람에겐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지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출근길에 오르면 이대로 내가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꽉 채웠다.


거기까지 이르자 이젠 나 자신이 무서워졌다.

그리고 점점 죄책감에 시달렸다.


분명 그 사람이 잘못한 건데, 왜 내가 죄책감을 가져야 하는지도 억울하고 분했다.

죄책감과 분노의 악순환이었다.


그러던 중 나의 죄책감을 덜어내는 면죄부 같은 문구를 만났다.


버킷리스트 5.
나에게 상처 준 사람들에게 욕 실컷 하기: 너무 고상한 척,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았다. 욕쟁이 할머니처럼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들을 향해 시원하게 욕 한번 퍼붓고 싶다.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 (김혜남)


아, 나에게 죽을 만큼 힘든 상처를 준 너니까,

이 정도 욕은, 이만큼의 미움은 가져도 되는구나.

그렇게 나 자신에게 면죄부를 주고서야 조금은 죄책감에서 벗어낼 수 있었다.


그래도 되는 건가 보다, 하면서.


또 이런 것도 있다.


나는 시간을 참 비효율적으로 쓰기도 한다.


엄마 아빠는 대구, 언니는 대전, 나는 경기 남부에 살고, 부모님이 다니시는 병원은 서울에 있다.

언니와 번갈아 가며 병원을 모시고 다니는데, 한때는 이런 경로로 움직였다.


새벽 5시 집 출발 - 대전, 언니 차로 환승 - 대구, 부모님 픽업 - 서울, 병원 진료 - 다시 대구, 부모님 배웅 - 대전, 내 차로 환승 - 새벽 1시경 다시 집.


이렇게까지 한 가장 큰 이유는,

뒷자리에 앉은 아빠와 엄마가, 앞자리에 앉은 우리 자매가 재잘거리며 장난치는 모습을 보며 행복해하셨기 때문이다.

집에서 바로 대구, 서울로 가는 것보다 훨씬 돌아가는 길이었지만 난 괜찮았다.

편찮으신 부모님이 그토록 좋아하시지 않는가.


나의 삶은 대부분 이런 식이다.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라면 내 몸이 더 고생하더라도, 돈과 시간이 더 들더라도 기꺼이 그렇게 했다.

사실 '하는 게 낫다'라고 판단하는 게 아니라,

안 할 생각 자체를 못 한다.

그게 내 마음이고 행복이니까 말이다.


날이 좋은 날엔, 날이 좋아서 엉덩이가 들썩이고.

비가 오면, 빗소리가 듣고 싶어서,

단풍이 들면 노랗고 빨갛게 물든 단풍구경을 가야 하고.

한 해를 보내고 맞이하는 겨울엔 좋아하는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느라 달력에 일정이 빼곡하다.


그렇게 특별한 목적 없이 여기저기 떠나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일상을 공유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내겐 큰 기쁨이고 즐거움이다.


때로는 내가 너무 많은 걸 낭비하며 사는 건 아닌지 삶을 되돌아보게 될 때가 있다.

결과물도 없고 경제적 실속도 없는 비생산적인- 감성에만 치우쳐 사는 건 아닐까? 며.

심지어 남들처럼 부를 이루지도 못하면서 말이다.

그럴 때면 내 성격 탓인 것 같아 또 죄책감이 들곤 했다.


그런 순간, 난 또 기가 막히게 내 죄책감을 덜어주는 문장을 만났다.


행복이란, 어쩌면 사랑하는 사람들과 아낌없이 시간을 낭비하는 일이다.


나에게 면죄부를 주는 단어 세 개가 다 들어 있었다. 행복, 사랑하는 사람, 그리고 낭비.


아, 낭비해도 되는 거구나.

또 한 번 인정받은 기분이었다.

하긴 사람마다 행복의 기준은 다르고, 내 행복의 방식은 내가 정하는 거니까.


나는 다시 당당하게 나의 비효율성에 의미를 부여한다.


큰 불행을 이기는 것이 작은 행복의 조각들이라면,

큰 상처를 치유하는 것도 어쩌면 우연히 찾은 작고 사소한 것들 인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한 마디,

책 속의 한 문장.

그렇게 모은 작은 면죄부들.

그 덕에 나는 하루하루 스스로를 치유하며 살아간다.


이젠, 이렇게 작고 소중한 것들로 채워지는 내 삶이,

그 작은 것을 놓치지 않고 품을 줄 아는 내가,

나는 꽤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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