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야기는 한 번도 제대로 꺼내본 적이 없다.
숨긴 것이 아니라, 꺼낼 수 없었던 이야기였다.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지만, 평생을 꽁꽁 숨겨왔던 이야기들.
우리 가족 모두의 가슴에 커다란 구멍을 남긴 일.
결국 이를 풀어내야, 내가 좀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일곱살, 만다섯살이 되던 해.
그 해 1월의 눈이 많이 내리던 어느날로 돌아간다.
이모가 놀러오셨다.
엄마는 이모와 은행에 잠시 다녀오신다고 하셨다.
나도 따라가겠다며 엄마를 졸졸 따라다니며 계속 졸라댔다.
엄마는 그런 나를 계속 어르고 달랬다.
현관까지 맨발로 쫓아와 조르던 나.
엄마는, 내 동생이라며 애지중지 들고 다니는 호랑이 조각상을 내 손에 꼭 쥐어주셨다.
그리고 내 눈높이에 눈을 맞추고 다정하게 또 나를 달래셨다.
호순이랑 언니랑 조금만 놀고 있으면, 은행볼일만 빨리 보고 바로 돌아오겠다고.
하지만, 엄마는 돌아오지 못했다.
지금까지도.
나를 달래고 돌아섰던 엄마의 뒷모습을 난 아직도 가슴 한켠에 간직하고 있다.
나를 달래주던 엄마의 눈빛과 말투, 그리고 따듯한 손길도.
그날 밤, 언니와 둘이 잠이 들었다.
한참 자고 있는데, 누가 언니와 나를 흔들어깨운다.
어둠속에 아줌마 여러명의 움직임이 느껴진다.
누군가는 언니와 나를 연신 쓰다듬고 있고.
누군가는 서랍을 뒤지며 갈아입힐 우리 옷을 찾는다.
누군가는 하염없이 우리를 바라본다.
그리고 그 모두는 울고 있다.
꾸벅꾸벅 졸며, 아줌마들과 차에 올라탔다.
라디오에서는 내가 좋아하는 가수, 김성희의 '세계는 하나'가 나오고 있었다.
여전히 아줌마들은 운다, 우리를 안고 쓰다듬으며.
"애들 불쌍해서 어째"
"그렇게 착한 사람을 어찌 이렇게 갑자기.."
"그제도 성당에서 만났는데..."
그렇게 도착한 곳은, 온통 하얗고 넓기만 한 곳이었다.
난 그 곳을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그런 나를 볼때마다 사람들은 더 울었다.
나를 보면 우는 어른들.
언니와 내가 자꾸 불쌍하단다. 그러곤 우리를 불러세웠다.
참 귀찮고 싫었다.
그 곳이 장례식장이었다는 걸 난 한참 후에야 깨달았다.
엄마와 이모는 그날 은행에 도착하지도 못했다.
엄마와 이모를 태운 택시는 신호를 무시하고 건널목을 질주했고, 그대로 사고가 났다.
이모는 그 자리에서 바로 목숨을 잃었고,
엄마는 병원에 옮겨졌으나 아빠에게 "우리 애들을 엄마 없는 아이로 만들지 말아줘, 제발"라는 유언을 남기고 돌아가셨다.
그 택시기사만, 살아남았다.
난 그렇게 세상에서 하나뿐인 소중한 엄마를 잃었다.
이 브런치북은 이 날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섣불리 내뱉을 수 없었던 '나의 엄마' 이야기, 그리고 그 후의 이야기들.
때로는 아픔과 그리움에 눈물도 날 것이고, 때로는 어린아이들의 천진난만함에 미소지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이야기를 쓰는 일이, 나에게 어떤 의미가 될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다만, 이제는 꺼내도 되겠다는, 꺼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현관문 앞에서 멈춰버린 일곱 살의 나를, 이제는 어른이 된 내가 데려오기 위해서.
나의 이야기를 하나씩 놓아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