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내 삶을 지켜준 또 한 명의 좋은 어른
조각난 기억들 속에는 나를 지켜낸 고마운 얼굴들이 있다.
아빠와 할머니에 이어 꺼내놓을 세 번째 퍼즐 조각은 바로 ‘나의 아저씨’ 이야기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 속 지안이에게도 그녀의 거친 삶을 함께 버텨줄 좋은 어른이 있었다면,
엄마 잃은 어린 나에게도 내 삶을 지켜준 좋은 어른, 나의 ‘아저씨’가 있었다.
엄마를 잃은 충격으로 내가 ‘미친 울음’과 떼를 부리며 폭발했다면, 언니의 방식은 ‘무기력’이었다.
고작 국민학교 2학년이었던 언니는 엄마가 돌아가신 뒤, 똑똑하고 야무졌던 모습은 간데없이 성적이 바닥을 치기 시작했다. 직업군인이었던 아빠는 몇 주씩 훈련을 떠나기도 했고, 늦게 퇴근하는 날도 많아 그런 언니와 내가 몹시도 걱정되었을 것이다.
당시 아빠의 당번 아저씨가 우리를 돌봐주게 되었다. 아저씨는 언니의 공부를 봐주고 할머니가 댁으로 일을 보러 가신 동안 우리를 돌봐주기도 하셨던 것 같다.
할머니는 그런 아저씨가 고마워 늘 정성 가득한 밥상을 차려내셨다. 아저씨는 우리와 함께 밥도 먹고 그렇게 가족처럼 우리의 곁을 지켜주었다.
한 번은 아저씨의 수첩을 우연히 본 적이 있는데, 거기엔 언니의 성적 그래프와 함께 언니의 상태를 꼼꼼히 분석한 글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참 고마운, 어린 '나의 아저씨'.
아저씨와의 추억은 따뜻한 햇살이 비치는 관사 앞마당에서 시작된다.
평상에 누워 있는 아저씨 곁에서 나는 하얀 모나미 볼펜 한 자루를 쥐고 야무지게 손을 놀리고 있다.
“새치 하나 뽑으면 10원 줄게.”
나는 아저씨의 머리카락을 뒤적여 새치를 찾는다. 그리고 아저씨가 알려준 대로 볼펜 구멍 안으로 그 새치를 집어넣고 뽑으려 안간힘을 쓴다. 그러다 검은 머리카락이 같이 뽑히기라도 하면,
아저씨는 “어! 검은 머리 뽑았네. 10원 깔게!”라며 나를 놀리고, 나는 억울해서 재잘재잘 항의를 한다.
아저씨는 나를 보며 크게 웃곤, 나를 안아 무릎 비행기를 태워주며 토라진 나를 달래줬다.
아저씨가 휴가를 가게 되면 다른 아저씨가 대타로 오곤 했고, 대타 아저씨와 난 늘 실랑이를 했다. 분리불안이 도지며 그 '미친 울음'과 떼가 시작되는 거다.
그날도 나는 대타 아저씨에게 어김없이 생떼를 부렸다. 할머니도 안 계시고 아빠도 늦던 저녁, 고작 스물한두 살이었을 그 대타 아저씨는 나를 감당하지 못했다. 욱하는 마음에 나에게 소리를 지르고 화를 냈다. 나는 더 악을 쓰며 울었다.
그 아수라장 속에 휴가 중이던 ‘나의 아저씨’에게 전화가 왔다. 아저씨는 휴가 갈 때마다 내가 걱정되어 전화를 했던 것 같다. 여느 때 같으면, 아빠나 할머니가 전화를 받고 '모모 잘 있으니, 걱정 말고 휴가 즐기고 오라'고 했겠지만, 그날은 아무도 없으니 언니가 전화를 받았다.
수화기 너머의 전쟁 같은 우리 상황을 알아차린 아저씨는 나를 바꾸라고 했다.
그 다정한 목소리에 나는 서러움이 폭발했고, 대타아저씨가 나에게 얼마나 화를 내고 소리쳤는지 울며불며 이르기 시작했다.
“모모야, 아저씨가 지금은 늦어서 갈 수가 없어. 아저씨가 내일 아침에 바로 갈 거니까, 오늘 하루만 잘 자고 있어. 알았지?”
아저씨는 대타 아저씨와도 통화를 나누었고, 씩씩거리던 그 아저씨는 밖으로 나가 화를 식히고 돌아왔다. 나는 울다 지쳐 잠이 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나의 아저씨'가 정말로 돌아왔다. 자신의 소중한 휴가를 반납한 채로.
어느 저녁, 아저씨와 언니와 함께 버스를 타고 외출하던 길도 기억난다.
버스정류장으로 내려가던 길, 아저씨는 프로 야구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그날 처음 알게 됐다. 야구라는 걸.
버스를 탈 땐, 버스비를 조금이라도 아껴보려고 아저씨는 8살인 나를 7살이라고 속여 말했는데, 당시 국민학교 1학년임을 너무 뿌듯해하던 나는 눈치 없이 버스안내양 언니에게 당당히 외쳤다.
“아니에요! 저 8살, 1학년이에요!”
아저씨는 민망해하며 결국 내 버스비를 내야 했다.
돌아오는 길, 언니와 아저씨는 “눈치도 없다”며 나를 구박했고, 나는 "거짓말은 나쁜 거다"라며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그렇게 우리는 으르렁거리다 깔깔거리며 언덕길을 올랐다.
나는 가끔, 그 길이 그립다. 밤하늘은 이미 어두워졌고, 우리는 아저씨의 큰 손을 하나씩 나누어 잡은 채 그 오르막길을 걷고 있다. 재잘재잘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누며 걷던 그 밤의 온기. 한 번쯤 다시 그 길을 가보고 싶다. 그 길은 여전히 그대로일까.
아저씨와 다시 연락이 닿은 건 중학교 1~2학년쯤.
집으로 전화가 왔다. 수소문해 아빠와는 이미 연락을 했고, 우리와 통화를 하려고 집으로 전화를 하신 거다.
사춘기 소녀가 된 나는 데면데면하게 인사를 나눴다. 그때, 아저씨가 말했다.
“아저씨도 딸이 있거든. 아저씨 딸 이름이 뭔지 알아?”
내 이름이었다. 나랑 똑같은 이름. 가슴 한구석이 찌릿했다.
아저씨가 나를 잊지 않았다는 것이 묘하게 힘이 됐다.
아저씨 삶에도 내가 꽤 소중했구나~하는 안도감도 들고.
시간은 또 흘러, 내가 결혼을 하고 아이 셋을 낳은 뒤, 우린 다시 연락이 닿았다.
그 후로 종종 카톡으로 안부를 묻곤 한다.
아저씨는 아빠와 할머니와는 다른 방식으로 우리를 웃게 해 줬고, 우리 앞에 작은 세상을 열어줬다.
그 덕에 나의 그 시절은 지루하지 않았다.
어린 청년이었던, 나의 아저씨.
그 이름을 떠올리면 아직도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진다.
오늘은, 오랜만에 안부 메시지를 보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