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엄마 없는 아이: 울음이 멎을 때까지

by 모모

조각난 기억들 사이로 나를 지켜낸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린다.

이제 할머니 이야기를 꺼낼 차례다.


할머니... 나의 할머니.


생각만 해도 눈물부터 차오르는 나의 할머니 말이다.


엄마 없던 그 시절을 나는 곧잘 '해맑았다', '행복했다'라고 말하곤 하지만, 어찌 하루아침에 엄마와 생이별을 한 아이들이 아무렇지 않게 살 수 있었을까. 돌이켜보면 언니와 나는 각자 다른 방식으로 분리불안을 겪으며 그 상처를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었다.


나의 방식은 그칠 줄 모르는 울음과 떼, 그리고 고집이었다.


잘 놀다가도 무언가 수가 틀리면, 그때부터 나는 미친 듯이, 정말 말 그대로 '미친 듯이' 울부짖으며 떼를 썼다. 그 누구도 말릴 수가 없었다.


엄마가 되어보니 알 것 같다.

그렇게 막무가내로 고집을 부리는 아이를 바라볼 때, 속이 얼마나 터지고 울화가 치미는지 말이다.


하지만 고맙게도 그 시절, 무턱대고 소리를 지르며 우는 내게 화를 내거나 그만 울라고 몰아치는 사람이 없었다. 다들 그저 기다려 주었다, 내 울음이 그칠 때까지.


당시 우리의 주 양육자는 할머니였다.


할머니는 감정 표현에 서툰 시골의 투박한 분이셨다. 아빠와 삼촌, 고모들 기억 속의 할머니는 호랑이처럼 무섭고 다가가기 힘든 엄마였다고 한다.

그런 할머니가 엄마 잃은 손녀딸들에게는 당신만의 방식대로 마음을 온전히 내보여 주셨고, 우리를 품어 주셨다.


할머니와 함께 병원에 갔던 날이 기억난다.


감기였는지 예방접종이었는지 모르겠으나, 진료실에서 간호사가 내 소매를 걷어 올렸다.

주사를 맞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자마자 나는 그 '미친 울음'을 터뜨렸다.

나를 붙들려던 의사와 간호사를 뿌리치고 진료실을 탈출해, 2층부터 1층까지 울부짖으며 도망치기 시작했다.

뒤에서 "죄송합니다" 사과하는 할머니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렸고, 할머니는 나를 잡기 위해 뛰기 시작하셨다.


1층 현관에 도착해서야 나는 멈춰 섰다.

차마 문을 열고 도로로 나갈 용기까지는 없었던 모양이다.

궁지에 몰린 쥐처럼 1층 벽에 딱 붙어 주사를 맞지 않겠다고 소리를 지르며 울었다

할머니는 나를 쫓아 뛰어오느라 쌕쌕거리는 가뿐 숨을 몰아쉬며 그저 나를 지켜보셨다.

그리고 내 울음이 잦아들 때까지 가만히 안아 주셨다.


"다음에 다시 오면 된다. 집에 가자." 할머니는 그렇게 나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땐 몰랐다.

호랑이 같던 할머니의 성정에 그 울부짖는 아이를 기다려주는 마음이 어떤 것이었는지,

그 무뚝뚝한 할머니가 손녀를 안아준다는 게 얼마나 큰 사랑이었는지를.


당시 우리는 경기도 북부에 살았다. 방학이면 할머니는 우리를 데리고 경북의 작은 도시인 당신의 댁으로 가곤 하셨다. 교통편이 좋지 않던 그 시절, 할머니는 두 손녀를 데리고 짐까지 들고 이동하셔야 했으니 택시만큼 편한 게 없었을 터였다.


문제는 내게 '택시 거부증'이 있었다는 것이다.

엄마가 택시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는 말을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나는 한참 동안 택시를 타지 못했다.

할머니가 겨우 잡아 세운 택시를, 나는 문을 붙잡고 안 타겠다고 울부짖으며 버텼다. 택시 기사는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그럴 때마다 할머니는 구구절절 우리 속사정을 이야기하셨다.


"얼마 전에 얘 엄마가 택시 사고로 죽어서 그래요. 무서워서 이러는 거니까 잠시만요..."


나는 우리의 속사정이 타인에게 생중계되는 게 싫어 더 악에 받쳐 울었다. 그렇게 몇 대의 택시를 그냥 보내고 나서야, 나는 힘이 빠져 겨우 택시에 올라탔다.


얼마나 힘드셨을까. 얼마나 지치셨을까.

하지만 그때도 할머니는 그 고단한 상황을 묵묵히 기다려 주셨다.


여자아이 머리를 묶는 법도, 어떤 옷이 예쁜지도 몰랐던 할머니는 '엄마 없는 티'가 나면 안 된다며 우리를 늘 깨끗하게 단장시키셨다. 머리를 예쁘게 묶기 위해 혼자 연습하시고, 엄마가 전에 우리를 어떻게 입혔는지 떠올리며 옷을 골라 입히셨다는 걸 나중에야 언니에게 전해 들었다.


국민학교 1학년, 첫 소풍날이었다.

당시에는 엄마들이 소풍을 따라갔었고, 당연히 내 곁에는 할머니가 있었다.

선생님 구령에 맞춰 친구들과 줄을 맞춰 걸으면서도 나는 두리번거리며 할머니를 찾았다.

친구들의 젊고 예쁜 엄마들 사이로, 정갈하게 빗어 넘긴 쪽진 머리의 할머니가 보였다.

할머니도 목을 길게 빼고 나를 찾고 계셨다.

동그란 할머니의 머리 모양을 보는데 왠지 웃음이 났다.

우리 할머니가 참 귀엽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할머니가 있어 참 든든했던 것도 같다.

손맛 좋은 할머니가 젊은 엄마들에게 뒤질세라 켜켜이 싸 오신 도시락은 또 얼마나 맛있었는지.


할머니는 그렇게 당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정성과 사랑, 그리고 인내로 우리를 키워내셨다.


나는 그런 할머니의 사랑을 한동안 잊고 살았다.


할머니는 돌아가시기 전 치매를 앓으셨다.

마지막 해에는 할머니가 엄마에게 소리를 지르기도 하셨다. 그저 병 때문이었을 텐데, 그 모습을 지켜보기 힘들었던 나는 집에 내려갈 때마다 할머니에게 왜 그러느냐며 같이 소리를 치곤 했다.


못된 것.


살면서 시간을 돌리고 싶은 몇 안 되는 순간이다.

나도 할머니가 진정될 때까지 기다려줬어야 했다. 할머니가 내게 그러셨던 것처럼.


지금도 나는 할머니의 음식을 잊지 못한다.

다시는 먹을 수 없는 된장찌개와 고디국(경상도식 다슬기국), 콩잎김치와 물김치.

냉장고를 열면 언제나 그 자리에 있던 할머니의 반찬들

늘 별거 없다며 내어주시던 그 투박한 상차림이 그립다.


내가 이제 할머니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기도하는 것뿐이다.

할머니가 천국에서 사랑하는 이들과 좋아하는 현철아저씨 노래 흥얼거리며 행복하시길.

나의 미안함과 고마움, 그리고 말로 다 못 할 이 그리움이 할머니에게 꼭 전달되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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