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엄마 없는 아이: 니는 모르제, 그 사랑

차마 꺼내지 못한 한마디, 엄마

by 모모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엄마가 없던 나의 어린 시절, 내 곁이 딱 그랬다. 언니와 나를 지키기 위해 아빠와 할머니, 삼촌과 고모, 그리고 온 친척들이 기꺼이 그 '마을'이 되어주었다.


# 트럭에 실어 보낸 아련한 일탈


삼촌들과의 추억들이 머릿속을 날아다닌다.

그 기억들은 필름 카메라 필터를 입힌 듯 아련하고 뿌옇다.

어떤 것은 정지된 사진 컷이고, 어떤 것은 단 몇십 초의 짧은 영상이다.

꿈인지 현실인지 도통 알 수 없던 그 조각들은 40여 년이 흐른 뒤, 언니와의 대화를 통해 비로소 하나의 풍경으로 맞춰졌다.

그것은 분명한 현실이었다.


방학 때 할머니 댁에 가면 군을 제대하고 취업을 준비하던 막내 삼촌이 있었다.

기억 속 나는 삼촌 책상에 앉아 머리카락을 돌돌 말며 다리를 대롱대롱 흔들고 있다.

바닥에 누운 삼촌과 학교 친구나 선생님 이야기를 하며 키득거리다 우리가 지루해질 때쯤, 삼촌은 우리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할머니는 담배창고 내 관사에 사셨는데 마당이 무척 넓었다. 삼촌은 그 넓은 마당에서 우리를 트럭에 태워주었다. 대부분은 마당을 뱅글뱅글 도는 정도였지만, 아주 가끔 시내 구경을 시켜줄 때면 아무도 몰래 벌이는 그 일탈이 그렇게 짜릿하고 재밌을 수 없었다.


셋째 삼촌한테 들키기라도 하면, 막내 삼촌은 혼이 났고, 다 큰 어른이 더 큰 어른한테 혼나 쩔쩔매는 모습이 짠하면서도 웃겨서 몰래 키득거렸다.


막내 삼촌에게 약속이라도 생기면 우리는 폭풍 잔소리를 쏟아냈고, 그 빈자리는 무뚝뚝하지만 자상한 셋째 삼촌이 채우곤 했다. 재미없는 삼촌 옆에서 언니와 바닥을 뒹굴며 막내 삼촌을 기다리던 그날들.

정체 모를 그 시간들이 이토록 오래 남은 건 아마도 그 속에 머물던 온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내 아이들 중 유독 나를 닮은 둘째가 아장아장 걸을 무렵, 그 모습을 보던 셋째 삼촌이 무심하게 말했다.


"쟈는 진짜 모모 어렸을 때랑 똑같네. 우리 모모가 진짜 음청 귀여웠거든. 내 평생 니만큼 귀여븐 아는 본 적이 없다. 니는 모르제?"


무뚝뚝한 입에서 나온 그 한마디에 가슴 저 밑바닥에서 무언가 울컥 치밀어 올랐다.

고맙고도 미안해 눈물이 찔끔 났다.

내가 뭐라고, 해준 것도 없는 나에게 그들은 그토록 지독한 정성과 사랑을 쏟았는지.


하지만 그 말 한마디에 마음의 부채가 조금은 덜어졌다.

'그분들에게도 나와 함께한 시간이 연민이 아닌 행복이었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안도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세계에서 나 역시 사랑받아 마땅한, 아주 예쁜 조각이었음을 처음으로 인정받은 기분이었다.


# 비누 거품으로 배운 엄마의 촉감


막내 고모네 집에는 나보다 한두 살 어린 사촌 동생들이 있었다.

잠들기 전 고모가 동생들을 욕실로 불렀고, 나도 따라가 봤다.

고모는 동생들 목에 수건을 걸고 손에 비누 거품을 내어 얼굴을 닦아주었다. 뽀득뽀득.


부러웠다.

나는 움직이지 않고 동생들의 세수를 마칠 때까지 그 풍경을 지켜보고 서 있었다.

넋을 잃고 쳐다보던 내 텅 빈 눈빛을 고모는 읽었던 것 같다.

동생들을 다 씻긴 고모가 나를 불렀다.

더 다정하지도, 거칠지도 않게.

딱 제 아이들을 대할 때와 똑같은 말투로.


"자, 이제 모모도 이리 와. 세수하자!"


내 목에도 수건이 둘러지고, 몽글몽글한 비누 거품이 얼굴을 문질렀다.

눈을 꼭 감고 있으니, 고모 손의 촉감이 더 선명하게 느껴졌다.

내 볼을 스치는 고모 손바닥이 너무 보들보들했다.

세상에서 이렇게 보드라운 촉감은 처음 느끼는 것 같았다.

내가 상상해 본 적도 없는 가장 따뜻하고 보드라운 감촉.

나는 아직도 그날의 고모 손의 촉감을 잊지 못한다.


'정말 보드랍다. 엄마 손은 이런 느낌이구나.'


그날 이후 나에게 '엄마 손 = 보들보들'이라는 공식이 각인됐다.

내 아이들의 세수를 시켜 줄 때면 어김없이 그 시절의 내가 떠올랐다.


"엄마가 세수시켜 주니 좋지? 근데 엄마 손도 보들보들해?"

"응! 너~무 보들보들해"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은 배시시 웃으며 대답했다.



# 나를 외롭지 않게 한 작은 보호자들


친가와 외가를 통틀어 나는 늘 막내급이었다. 어디를 가든 사촌 언니 오빠들이 넘쳤다. 서너 살에서 여덟 살 정도 차이 나던 그들도 결국 아이였을 텐데, 사촌들은 우리만 가면 온 동네를 누비며 지극정성으로 놀아주었다. 덕분에 나는 귀여움을 듬뿍 받으며 외로울 틈 없이 그 시절을 보냈다.

나의 호시절이었다.


선하디 선한 사람들 속에서 나는 마음껏 울고, 화내고, 웃었다.

엄마의 빈자리를 메워준 그들의 사랑 덕분에 불안과 두려움은 서서히 걷혔고, 나는 평범하고 안정적인 아이로 자라났다.

마음이 안정을 찾기 시작하자, 그제야 주변이 보이기 시작했다.

엄마 손을 잡고 가는 친구들, 엄마에게 혼나 심통이 난 아이들...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세상은 온통 '엄마' 천지였다.


어느 하굣길, 용기 내어 속으로 불러봤다.

'어... 엄.... 마.. 아..'

'어.. 엄마..'

'엄. 마'


입 밖으로 내뱉어보고 싶어 허공을 향해 입술을 달싹였지만, 차마 목구멍 밖으로 나오지는 못했다.

목구멍이 간질간질하기만 했다.


세상은 온통 '엄마'천지였지만, 차마 부를 수도 없었던 그 한마디.

이름을 마음속 깊이 다시 묻은 채 시간은 또 흘렀다.


그리고, 그렇게 불러보고 싶었던 '엄마'.

간절하게 원했던 그 '엄마'가,

내 앞에 나타났다.


나에게도 드디어 엄마가 생겼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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