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끝까지 눈을 감았다.
국민학교 1학년 2학기에 들어설 무렵, 나에게도 엄마가 생겼다.
지금의 엄마가 오기 전, 한두 명의 낯선 여자 어른이 우리 집을 다녀갔다.
당시 아빠에겐 아빠의 아내보다 우리들의 엄마를 만나는 것이 가장 중요했을 터였다.
여자 어른이 오기 전, 할머니는 우리를 최대한 정성껏 곱게 단장시켰다.
그녀들이 가고 나면, 할머니와 아빠는 우리에게 여자 어른들이 어떤지 물었다.
나는 늘 말했다.
"무시무시한 마녀 같아!"
그러다 '우리 엄마'를 만났다.
천사같이 예쁜 얼굴로 천사처럼 다정한 웃음을 짓는.
처음부터 나는 좋았다. 그랬던 것 같다.
부끄러워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아빠 다리 뒤에 숨어 온몸을 꽈배기처럼 벨벨 꼬고 헤벌쭉 웃고만 있었다.
할머니와 아빠는 또 우리에게 물었다.
"너무 좋아. 천사 같아!"
엄마가 엄마가 되고 난 후, 엄마는 자기 전 우리에게 동화책을 늘 읽어주셨다.
미술학원을 하셨던 엄마는 아이들과 함께 지내서 그런지 동화책도 엄청 재미있게 읽어주셨다.
엄마를 사이에 두고, 언니와 나는 양쪽 옆에 누워 엄마가 읽어주는 책을 들으며 잠이 들었다.
그날도 나는 책 읽어주는 엄마 목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이 들었다.
그리고 꿈을 꿨다.
꿈에서도 엄마는 책을 읽어주고 계셨다.
그 순간, 갑자기 문 쪽에서 눈이 부시게 밝은 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너무 밝은 빛에 눈도 제대로 못 뜨며 문 쪽을 바라보았다.
그 문 앞에는 엄마, 나를 낳아준 엄마가 눈부시게 하얀 옷을 입고 서 있었다.
그리고 팔을 벌리고 다정하게 나를 불렀다.
"모모야, 이리 와"
나는 너무 무서웠다. 아주 찰나의 순간 고민을 했던 것 같다. 그러곤 내 옆에서 책을 읽어주는 엄마 팔을 꼭 끌어안으며 말했다.
"싫어! 우. 리. 엄. 마. 는 여깄어"
여전히 눈부시게 밝은 빛에 파묻힌 엄마는 조금 슬픈 표정을 지었던가. 그랬던 것 같다.
엄마는 그렇게 빛과 함께 나타나 나와 언니를 한참이나 바라보다 사라졌다. 눈부시던 빛도 감쪽같이 자취를 감추고, 방 안은 다시 깊은 어둠이 되었다.
지금도 눈이 부시게 빛나던 빛과 엄마가 나를 부르던 모습 그리고 실망하는 듯한 표정을 잊지 못한다.
나는 한참 동안 미안했다.
내가 엄마를 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밝은 빛과 눈부시게 하얀 옷이라니, 엄마는 분명 천국에 가신 것이리라.
그때부터 난 엄마가 하늘의 천사가 되어 나를 지켜준다고 생각했다.
나의 수호천사.
삶이 버거워 신의 힘이 간절히 필요한 순간, 하지만 염치는 없어서 기도도 못하겠는 그런 순간.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징징댄다.
'우와 진짜 해도 해도 너무 하는 거 아니야~ 내가 차마 기도는 못하겠는데, 엄마는 나한테 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 제발 나 좀 도와주라고'
# 가정환경조사- 나 엄마 있거든!
그렇게 두 명의 엄마를 가슴에 품고 나는 국민학교 2학년이 되었다. 그 시절엔 가정환경조사 같은 것을 공개적으로 했다.
'집에 전화기 있는 사람 손!' 뭐 이런 식.
그 항목엔 부모님에 관한 것도 있었다.
선생님은 반 아이들에게 눈을 감으라고 하셨다.
분명히 눈을 감으라고!
"엄마 없는 사람. 돌아가신 분, 손!"
선생님의 목소리는 무심했고, 아이들의 눈초리는 따가웠다. 아이들은 쑥덕인다.
"모모 엄마 돌아가셨잖아. 왜 손 안 들어?"
"쟤 이제 엄마 있대."
난 아랑곳하지 않고 그저 가만히 있는다.
'칫, 나 엄마 있거든!' 속으로 생각할 뿐이다.
선생님은 또 이어서 물으신다.
"새엄마인 사람, 손!"
올 것이 왔다.
애들은 술렁인다.
"모모도 손 들어야지"
짝꿍은 나를 팔꿈치로 툭 치기까지 한다
"야 너 손 들어야지, 너네 엄마 새엄마자나"
'괜찮아. 내가 모르는 셈 치면 돼. 내가 더 어렸을 때 엄마가 왔으면, 나는 새엄마인 줄도 몰랐을 테니까'
나는 끝까지 손을 들지 않았다. 눈도 뜨지 않았다.
선생님은 왜 눈을 뜨고 있는 아이들을 그냥 두시는 건지, 그게 불만이었을 뿐.
쉬는 시간까지 술렁이는 그 친구들에게 한마디 대꾸도 하지 않고 꼿꼿이 지나갔다.
'나는 모르는 일이야!'라고 스스로에게 되뇌며.
그 어린 나는, 엄마가 생겨서 그저 좋았다.
후에 엄마가 그랬다.
언니는 엄마를 경계하고 까칠해서 적응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지만, 나는 처음부터 엄마한테 촥 감기며 안겼다고. 그렇게 스스럼없이 다가와 웃었단다 나는.
난, 정말 좋았으니까.
그토록 간절하게 부르고 싶은 엄마라는 말을, 못 부를 이유가 없었다.
엄마는 참 이쁘고 세련됐었다.
엄마를 보고 나면 모두들 물었다.
"너네 엄마 진짜 예쁘시다. 너는 엄마 안 닮았구나"
내 가정사를 밝히지 않았으니, 나를 당연히 엄마 친딸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모두 한결같이 말했다.
"난 아빠 닮았어."
다행히도 나는 정말 아빠를 닮았다.
엄마가 있어 그저 좋았던 그 시절.
차라리 그렇게 좋아하지 말걸.
서로가 친 모녀관계가 아니라는 것을 자연스레
받아들였다면, 그랬다면 훗날 상처를 덜 받았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가끔 그런 생각을 해본다.
안태희 작가의 글 〈너무 가까워서 상처받는 관계들에 대하여〉에서 말하듯, 관계라는 것이 너무 가까우면 서로의 가시에 찔려 버리고 만다.
부모 자식 사이에도 적당한 거리가 있어야 하는 법이다. 서로의 가시에 찔려 아파하지 않을 만큼의 거리.
어쩌면 우리에게 정말 필요했던 건, 그 '적당한 거리'였는지도 모르겠다.
누구의 잘못이 아닐 수도 있다.
우리가 다르다는 것을 받아들이기만 했다면 말이다.
하지만 훗날의 상처가 어찌 곪아갔든, 그 시절의 나는 진심으로 행복했다.
나는 지금, 그런 엄마가 고맙고 짠하고 또 밉다.
[함께 읽은 글] 안태희 작가 브런치〈너무 가까워서 상처받는 관계들에 대하여〉 https://brunch.co.kr/@krpec/8